필리핀 피플 스파크에서 한 청년을 보았다. 타투를 하고 있는 청년이었다. 그의 모습은 남루했다. 짙은 초록색 긴팔 추리닝에 군청색의 반바지를 입고 슬리퍼를 신은 모습은 추리하기까지 했다. 곱슬머리에 옆머리를 어정쩡하게 땋은 모습 또한 너저분하기까지 했으나 어딘가 예술적 기질을 품고 있는 듯했다.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청년 앞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긴 머리카락은 검고 윤기가 반질거렸다. 청년은 여자의 머리카락을 오른쪽으로 넘기고 왼쪽 어깨선과 팔뚝에 밑그림을 그렸다. 그곳에 바늘로 찔러서 먹물을 입혔다. 어깨선에 나비를 그리고 글자도 새겨 넣었다. 그런 후 색채를 메워나갔다. 그 모습은 아주 진지했다. 나는 청년과 여자의 모습을 번갈아가며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림 그리기에 한참 몰두해 있던 청년이 고개를 들었다. 그림을 완성한 청년의 얼굴에 맺힌 땀방울이 빛났다. 그 땀방울은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 모습 같아서 아름답게 보였다. 여자의 어깨와 팔뚝에 그려져 있던 나비들이 나풀거리는 것 같았다. 여자가 움직일 때마다 나비들은 어깨와 팔 주변을 맴돌면서 살아서 움직였다. 몸에 타투 하는 모습을 처음 본 나는 너무 신기해서 한참이나 바라봤다.
여자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데 청년이 다가왔다. 내 어깨에 그림을 그리겠냐고 손짓으로 말했다. 나는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내 옆의 일행에게도 그림을 그리겠냐고 물었지만 하나같이 손사래를 쳤다.
청년은 한국 사람들한테 유난히 관심을 보였다. 아마도 한류 열풍 때문인 것 같았다. 그는 우리 일행과 말을 섞더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의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잘 나가던 사업가였다. 필리핀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엄청난 부자였다고 자랑했다. 그 나라에서 부자 소리를 들으려면 어느 정도의 재산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나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청년의 할아버지는 새로운 일을 할 때마다 승승장구 했고 돈을 많이 모았다. 그 돈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땅을 사 모았고 집구석구석의 금고에는 현금과 금괴로 가득했다. 친인척 모두 할아버지로 하여금 특혜를 받고 살았다고 했다. 한 나라를 지배하던 힘센 권력이 바닥으로 떨어질 때쯤 미국으로 망명길에 오르면서 할아버지의 검은돈은 순식간에 몰락해져 갔다. 청년의 아버지에게 얼마 정도 넘겨졌던 재산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그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빚잔치를 하고 거리로 나 앉게 되면서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 청년은 길거리를 배회하면서 가난한 화가를 만났다. 그때부터 그림에 관심을 가졌고 화가의 꿈을 키웠다. 학교에는 제대로 다니지 못했지만 수년 동안 배를 곯아가면서도 그림에 몰두했다. 먹고살기 위해서 사람들의 어깨와 팔뚝과 허리와 다리 온몸에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그린 그림은 하루를 버틸 수 있는 돈을 받았고 그 덕분에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청년은 유명하지는 않지만 젊은 층에서는 알아주는 화가라고 엄지를 세우면서 자랑했다.
그러면서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얼마 전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이 함께 모여서 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단다. 병들어 있는 아버지와 날품팔이로 몇 푼 벌어 오는 어머니 그리고 여섯 명의 동생과 부대끼며 살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도 행복하다며 활짝 웃었다. 나는 먹고살 만한데도 욕심의 군더더기가 엉겨서 행복하다는 소릴 안 하고 산다. 이번 여행에서 만났던 화가 청년, 그는 하루 벌어 한두 끼 겨우 입에 풀칠하고 살면서도 티 없이 맑은 미소와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가 깔려있었다.
내 삶을 뒤돌아보면 내게도 쉬운 일은 오지 않았다. 어렵고 힘든 일만 돌아왔다. 하지만 늘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자고 나 스스로에게 다독였다. 일상으로 돌아오면 또다시 마음에 덧칠해진 욕심의 군더더기가 돋아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와 함께 했던 시간은 가족이 옆에 있는 자체만으로도 감사함을 느꼈던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