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몸보신

by 배꽃

얼마 전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 복숭아밭에서 일을 하는데 습기를 머금은 솜처럼 내 몸은 자꾸만 축 처져갔다. 입맛이 없어지니 기운도 스르르 떨어졌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대상 포진이라고 했다. 잘 먹고 푹 쉬면 괜찮아진다고 했는데 바닥으로 떨어진 기력은 좀처럼 올라오지 않았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려던 참이었다. 이웃 농부가 일터로 왔다. 대상포진에는 영양식을 먹어야 한다며 붕어 한 마리를 내밀었다. 저수지 가장 자리에서 뜰채로 방금 낚았다는 붕어가 펄떡펄떡 뛰었다. 비늘도 떼지 말고 참기름을 달달 볶다가 찜 솥에 넣고 푹 고아 국물을 마시면 원기가 회복된다고 했다.

이튿날 일터로 나오면서 커다란 솥과 생강과 참기름 한 병을 가져왔다. 붕어를 한 솥 끓여서 먹으면 달아났던 힘이 되돌아올 것 같았다. 우람차고 힘센 붕어의 펄떡거리는 모습만으로도 기운이 솟아났다.

붕어를 한 찜통 푹 고아서 혼자 먹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일하느라 힘들어 보이는 남편에게 한 그릇 떠 주고 옆에 사는 친정 엄마에게도 한 그릇 드리고 싶었다. 잦은 출장에 일 스트레스를 받는 큰아들과 며칠 후 제대하는 작은아들도 한 그릇 먹이고 싶었다. 얼마 전 할머니가 저세상으로 떠나고 혼자된 이웃 할아버지도 생각났다. 여름부터 이듬해 봄까지 내 옆에서 일하느라 손과 발이 되어 주는 여동생도 한 그릇 먹이고 싶었다. 붕어를 한 찜통 푹 고아서 한 그릇씩 퍼줄 사람들을 생각하니 은근히 기분이 좋아졌다.

고무 함지박 속에 넣어둔 붕어를 꺼내려고 뚜껑을 열었다. 붕어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어제저녁 물속에서 붕어가 노니는 모습을 보고 퇴근을 했는데 밤새 없어졌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붕어가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농부와 나 둘뿐이었다. 붕어는 어디로 간 것일까. 몸보신하라고 붕어를 준 이웃 농부는 가져가지는 않았을 텐데.

길 건너 사는 할머니가 가져갔을까. 가끔 큰 개 한 마리를 끌고 우리 마당을 지나다녔는데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은 것은 아닐까. 아니면 붕어 혼자 자기가 태어난 삼정지로 건너가지는 않았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오리무중이었다.

다음날 일터에서 유리창으로 바깥을 무심코 내다보고 있었다. 그때 고양이 한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몸이 무거워서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꼭 넘어질 것 같았다. 저렇게 큰 고양이는 처음 봤다. 배는 남산만 한 고양이가 하품을 할 때면 포효하는 호랑이 같았다.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린 고양이와 나는 눈이 마주치자 머리끝이 쭈뼛쭈뼛 서면서 등줄기에 식은땀이 났다.

앞마당에 재어놓은 파렛트를 옮길 때였다. 청소를 하려고 빗자루로 상자를 쓸고 있는데 갓 태어난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보였다. 몸은 온통 양수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눈도 뜨지 못하고 걷는 것도 신통찮았다. 고무 함지박에 고양이를 옮기고 파렛트 하나를 위로 옮기는데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더 보이더니 무려 다섯 마리나 되었다.

어미 고양이가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에 새끼를 낳았는데 내가 청소를 시작하자 숨어서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청소를 끝낼 때까지 붕어를 담아 놓았던 함지박 속에 고양이를 보관해 놓았다. 고양이 다섯 마리는 서로 핥으며 앵앵거렸다. 배가 고파서 어미젖을 찾는 것 같았다. 청소를 끝내고 새끼 고양이를 제자리에 갖다 놓고 습식 사료와 물을 떠다 놓고 퇴근을 했다.

이튿날 아침 새끼 고양이용 사료를 한 포대 샀다. 고양이에게 주려고 앞마당으로 나갔다. 고양이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전날 놓고 간 음식도 먹지 않고 어디로 갔을까. 주변을 뒤져보았다. 쌓아 놓은 파렛트 몇 개를 들추어도 보이지 않았다. 앞마당과 뒷마당, 퇴비 더미와 농자재 쌓아놓은 곳을 다 뒤졌지만 흔적도 없었다. 눈도 뜨지 못하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새끼를 어미가 어디로 어떻게 데려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날 오후 이웃집 언니가 놀러 왔다. 나는 붕어가 없어진 얘기를 했다. 며칠 전 늦은 밤 고양이와 개들이 창고 앞에 모여서 시끄럽게 짖어대더란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그곳에 가 보니 고양이가 퍼덕거리는 붕어 한 마리를 옆에 놔두고 모여 있는 개를 향해 으르렁거렸단다.

나는 바로 뒤에 있는 창고로 달려갔다. 지게차를 세워놓았던 바퀴 옆에 생선 비늘 몇 개가 보였다. 그 옆에는 생선 꼬리가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아! 그때서야 나는 눈치를 챘다. 함지박속에 있던 붕어를 고양이가 창고까지 끌고 가서 잡아먹었다는 사실을.

내가 보신할 붕어를 어미 고양이가 대신 해치웠다. 혹시라도 내가 해코지할까 봐 어미 고양이는 새끼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숨었나 보다. 나는 비록 몸보신은 하지 못했지만 건강하게 태어난 새끼 고양이를 보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잠시 내게 왔다간 고양이들은 그 후로 한 번도 내 눈에 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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