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마추픽추를 가기 위해서 길을 나섰다. 아마존까지 이어지는 우루밤바 강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는 기차에 올랐다. 전날 밤, 통나무 지붕 위로 줄기차게 소낙비를 퍼부어서 잠까지 설치게 하더니 저 깊고도 넓은 강물줄기를 만들었나 보다. 강물은 수량이 어마어마했고 물살도 세찼으며 그 물소리가 기차 안까지 들리는 듯 했다. 오른쪽으로는 밀림의 경치를, 왼쪽으로는 강물을 구경하다보니 기차는 어느새 도착지 역에 사람들을 부려놓고 가던 길로 사라졌다.
아구아스에서 내린 우리는 도로 옆 길가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마추픽추를 가기 위해서 마지막 관문으로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굽이굽이 몇 구비를 돌았다. 이런 산중에 뭐가 있을까, 한 구비 한 구비 돌 때마다 무엇이 있을까 의문이 가실지 않았다. 그 궁금증은 마흔이 넘어서 대학 생활하던 때로 돌아간다.
아카시아 향기가 그윽하던 봄날 교수님은 마추픽추 다녀오신 얘기를 들려주셨고 나는 상상 속의 그곳을 생각했었다. 인간이 만든 신비로운 유적과 자연 생태계가 보존되어 있는 소중한 유적지라고 하시면서 한 번쯤 꼭 가 보라고 추천해 주셨다. 그때부터였다. 상상속의 그곳을 여행하는 것이 버킷리스트의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갔던 것이다.
마추픽추 입구에 도착하니 허기가 느껴졌다. 새벽에 출발했던 우리는 기차와 버스를 번갈아 탔고 정오가 지나서야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느긋하게 점심을 먹고 커피까지 마셨다. 유명한 식당은 아닌 것 같았는데 음식 맛은 최고였다. 스테이크와 감자튀김 샐러드와 후식까지 나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그제야 주변의 산이며 강이며 굽이진 길까지 신비롭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입구에서 출발해 계단 몇 개를 올라가지 않아서 소낙비가 퍼부었다. 갑자기 구름마저 몰려와서 앞서가는 사람조차 보이지 않았다. 구름에 가린 마추픽추는 미지의 세계에 온 듯했고 비는 그칠 기미가 없었다. 처마 밑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빠른 속도로 구름이 바깥으로 움직였다. 그러더니 번개처럼 햇살이 솟아났다. 그 와중에 쌍무지개까지 뜬 마추픽추를 봤으니 행운을 잡은 셈이다. 그 신기한 모습에 한참동안 취해서 바라봤다. 마추픽추는 모든 날씨를 말없이 보여줬지만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마추픽추가 공중에 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돌담을 정교히 쌓은 것이며 일률적으로 피라미드 모양을 만든 것과 독특한 모양으로 뼈대를 세운 것이며 어느 것 하나 완벽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돌로 건축물을 세우고 돌 축대로 수없이 많은 층계의 계단식 밭을 만든 잉카인들의 흔적도 볼 수 있었다. 채석장과 제사를 지내던 신전과 감자와 옥수수를 기르던 경작지와 그리고 그들의 주거공간이 이 높은 곳에 숨어서 오랜 세월을 견뎠다니 저절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마추픽추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모든 건축물이 자연석을 이용한 특별한 가공 없이 지은 건물이었다. 철제 도구가 없었던 시대였지만 돌로 조각한 건축들은 그대로 보전되어 있었다. 이토록 대단한 도시를 지은 잉카인들은 흔적도 없었고, 무수히 많은 관광객이 그 자리를 빼곡하게 메우고 있었다.
교수님은 마추픽추 여행이 끝나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대단한 도시보다 신비로운 유적지 보다 더 큰 감동을 받은 것은 사람의 향기라고 하셨다. 우리가 눈을 크게 뜨고 숨을 죽이고 있자 한 마디 더 던졌다. 마추픽추 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뭔가 모를 충만하고 허전하고 섭섭했던 마음을 달래주던 것은 열두 살 안팎의 소년을 만난 것이라고 했다.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차창 밖에서 한 소년이 손을 흔들었고 여행객들은 차 안에서 손을 흔들며 작별을 나누었다고 한다. 한 굽이 한 굽이를 돌 때마다 소년은 지름길로 먼저 내려와 얼굴을 내밀었고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환호하면서 손을 흔들었다. 다섯 번 정도 작별 인사를 나누었는데 마지막 굽이에서 버스가 서자 먼저 와서 손을 흔들며 기다리고 있던 소년은 땀범벅이 된 얼굴로 버스에 올라타서는 굿바이 하는 마지막 인사를 했다.
박수 소리와 함께 관광객들은 앞다투어 주머니를 열었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헤어짐의 인사를 이렇듯 거창하게 나눈 적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고 했다. 마추픽추에 여행객으로 왔지만 마치 이곳에 오랫동안 살다가 멀리 떠나는 것처럼 소년에게 배웅을 받은 듯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그 감동의 여운이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고 그 곳을 떠 올리면 굿바이 소년이 먼저 떠오른다며 미소를 지으셨다.
그 강의를 듣고 십 수 년 만에 나는 마추픽추를 찾게 되었다. 이곳으로 여행을 준비할 때부터 한 굽이굽이 돌 때마다 소년을 떠올렸다. 하루에 몇 번씩이나 마추픽추를 오르내렸다고 하는데 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아무리 고개를 돌려도 소년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라도 나타날까 봐 자꾸만 고개가 좌우로 돌려졌다. 버스가 아구아스라는 산 아랫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끝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소년의 배웅을 받지 못했으니 마추픽추의 영원한 이방인으로 남아 있는 듯 아쉬움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