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스코의 슬픈 역사

by 배꽃

마추픽추를 가기 위해서는 꼭 들러야 하는 곳이 있다. 쿠스코라는 도시다. 그곳은 해발 삼천 사백 미터의 고산지역에 있다. 한때는 세계의 배꼽이라 불릴 만큼 잘 나가는 도시였으며 잉카제국의 수도였다. 한 시대를 화려하고 풍요로울 만치 잉카제국은 잘 살았다.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비행기에 오를 때부터 그곳은 상상의 도시였고 궁금증이 일게 했다.


쿠스코는 스페인의 오랜 지배로 유럽을 느끼게 했지만 잉카문명과 고산지대라는 특징이 혼합되어서 유럽과는 다른 느낌의 건물과 풍기는 이미지가 눈에 띄었다. 잉카 제국이 건설한 아르마스 광장엔 찬란하거나 화려해서 눈에 띄는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스페인 침략자들이 잉카의 문명을 없애려고 도시를 무참히 부수고 그 위에 자신들이 가져온 문화를 덮어 씌워 유럽식 광장을 만들고 그 옆에는 성당을 세운 것이다.


자신들의 문화를 퍼뜨리고자 잉카의 건축물을 파괴하고 그 위에 지은 성당 안으로 지금은 페루 사람들이 평온하게 드나들고 있었다. 학창 시절 세계사를 공부하면서 스페인 사람들을 나는 엄청 미워했다. 교회는 다니지 않았지만 예수를 침략의 도구로 이용한 그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게 느껴졌다.


아르마스 광장에서 대성당을 바라보면서 위쪽 골목을 따라 걸었다. 평상적이고 일상적인 사람들의 느긋한 모습이 여유로워 보였다. 경사가 높았지만 현지인들은 높은 지대의 생활에 익숙한지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나는 느린 걸음으로 움직여도 조금씩 가슴이 벌렁거리고 숨이 찼다.


스페인이 남미에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지금의 페루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화려하거나 아름다운 건축 양식은 없었겠지만 그들 나름의 독특한 문화와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아마도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모습이 아니었을까.

페루에 도착해서 궁금한 게 있었다. 식당과 상점 백화점 아파트를 포함한 모든 건물은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대문은 늘 닫혀 있었고 식당도 유리로 된 곳은 찾아볼 수 없어서 어떤 음식을 만들어 파는지 알 수가 없었다.


1층과 지하는 대부분 주차장이었다. 차를 도로나 바깥에 세워 놓으면 유리창을 부수고 차 안에 있는 물건을 훔쳐갈 뿐만 아니라 차 부속품도 빼내 갈 정도로 위험하단다. 내가 등 뒤로 가방을 메고 다녔더니 앞으로 옮기라고 지나가는 한국인이 말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들른 적이 있었다. 여행 가방을 1층에 두고 식당이 있는 3층으로 올라갔더니 주인이 3층까지 들고 왔다. 조금만 방심해도 잃어버린다며 조심하라고 일렀다.


처음엔 그들의 독특한 문화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우리가 36년간 일본에 나라를 빼앗겨서 인간이하의 대우를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일본 사람들을 무작정 미워하는 마음처럼 페루 사람들도 스페인에 약탈을 당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모습은 감추고 속내를 바깥으로 보이지 않으려는 그들이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스페인의 지배에서 벗어 난 지도 오랜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페루 사람들은 여전히 그들의 말을 사용하고 그들이 즐겼던 음식을 먹고 있다. 언어와 음식뿐만이 아니다. 온통 스페인의 건축물이 즐비했다. 당 안으로 들어서자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유해가 보였다. 백골이 눈에 띄었다. 스페인이었던 그의 모습을 피하려고 나는 고개가 저절로 옆으로 돌려졌다.


잉카 석벽을 구경했다. 석벽은 공장에서 찍어낸 직소퍼즐을 맞춰 놓은 것처럼 섬세했다. 삼각형 사각형 오각형 곡선으로 이어진 퍼즐은 빈틈이 없었다. 돌과 돌 사이에 면도칼도 들어가지 않는다는 12각 돌을 보았다. 젓가락 사용으로 우리 선조의 섬세한 기술이 세계 어디 내놔도 최고이며 따라올 수 없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잉카의 석공들도 돌 다루는 솜씨가 만만치 않았다.


왕궁에 들어서면서 답답한 증세가 심해졌다. 천천히 걷는데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귀는 먹먹해지면서 호흡이 가팔랐다. 심장이 곤두박질치는가 싶더니 눈앞의 모든 물체들이 가물거렸다. 옆에서 걷는 남편이 괜찮냐 고 물었을 때만 해도 왕궁의 건축물이 선명하게 보였는데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스르르 주저앉고 말았다.


눈을 뜨니 산소호흡기가 꽂혀있었다. 눈이 다시 감겼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떴을 때는 현지인 간호사가 알코올로 내 얼굴을 닦고 있었다. 산소포화도가 70%까지 내려가서 생명에 위험한 상태였단다. 98% 이상 될 때까지 산소를 흡입하고서야 침대에서 내려왔다.


쿠스코에 가면 고산병에 걸리기 쉽다며 조심하라는 말을 들었지만 평소에 건강하다고 믿었던 터라 별 문제없다고 여겼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병에 걸리고 나니 머리끝이 쭈뼛 서면서 가슴이 먹먹했다. 꾸스코에 머물러 있는 3일 동안 따라다니던 고산병은 그곳을 떠나 페루의 수도 리마에 도착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머리가 맑아지면서 벌렁거리던 가슴도 제자리로 돌아왔다.


페루 사람들은 잉카제국의 역사를 자랑했다. 그 역사는 슬펐던 시대를 건너 지금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평온한 일상이 되었다. 꾸스코를 떠올릴 때면 스페인이 정복했던 페루의 슬픈 역사와 함께 잠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섰던 나의 추억을 말하는 곳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