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30주년 기념으로 페루행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지인을 통하여 애플망고가 유명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그에게 망고 농장을 소개해 달라고 했었다. 복숭아와 포도농사를 짓고 있기에 망고 농사는 어떻게 짓는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우리나라와 페루 사이에 FTA가 체결되어 있다고 하니 그들의 농사법이 궁금했다.
망고 농장을 찾아가는 길은 쉽지는 않았다. 리마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소도시까지는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공항에 도착하자 한적한 시골이라 그런지 수도인 리마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외국인이 거의 없는 거리에서 남편과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주목받아야 했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마주치면 큰 체구와 왕방울만 한 눈으로 우릴 쳐다봤다. 내가 웃으면 따라 웃었고 내가 무표정이면 똑 같이 표정 없는 얼굴로 바라봤다. 신작로의 먼지는 풀풀 날렸고 적도 지방의 햇살에 숨이 턱턱 막혀왔다.
우린 약속 시간보다 일찍 망고 선별장에 도착했다. 농장 대표를 찾아왔다고 하자 수위는 사각 철창문으로 얼굴만 빠끔히 내밀고는 기다리라고 했다. 그늘도 없는 땡볕에서 한참을 기다리고 있으니 손짓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그에게 여권을 맡기고 안으로 들어갔다.
선별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수백 명이나 되었다. 경제가 붕괴된 베네수엘라에서 넘어온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망고 선별작업과 박스작업, 검역과 파렛 점검 등을 파트로 나눠서 일을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수출될 망고라고 했다. 그들은 눈으로는 우리를 힐끔거리면서 손으로는 느긋하게 일하고 있었다. ‘빨리빨리’ 일 하라는 우리 문화에 비췄을 때 답답한 생각이 들었지만 오히려 그런 분위기가 내게는 편하게 다가왔다.
농장 주인을 따라 망고가 심어져 있는 밭으로 옮겨갔다. 애플망고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붉으락푸르락 매달려 있는 모습이 등불을 매달아 놓은 것 같았다. 끝없이 펼쳐진 농장은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더위에 지친 나는 망고나무 그늘 아래에 주저앉고 말았다.
주인은 제일 굵고 맛있게 보이는 망고를 따서 내게 내밀었다. 손으로 다 받을 수 없어서 티셔츠로 앞치마를 만들어 움켜잡았다. 망고를 받자 내 얼굴에 생기가 돋아났다. 노란 망고는 먹어봤지만 애플망고는 처음 봤다.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이라며 기회가 되면 꼭 먹어보라던 친구가 생각났다. 당장이라도 깎아서 맛보고 싶었다.
그 순간, 한국에 있는 가족이 생각났다. 복숭아와 포도 농사짓는 지인들도 눈에 아른거렸다. 날마다 나의 일터로 오는 사람들과 평소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도 나눠 먹고 싶었다. 이렇게 귀한 것을 혼자 먹기엔 아까웠다. 바쁜 일정이기도 했거니와 칼이 없어서 맛을 보지 못한 망고는 여행이 끝나는 날까지 여행 가방 속에서 잠자고 있었다.
인천 공항에 도착한 후 체크인을 하고 보안검색대를 통과한 다음 캐리어 회전 테이블 앞에서 가방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려도 가방은 나오지 않았고 같은 기내에 탑승했던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떠날 때였다. 저쪽에서 공항 직원이 나오더니 우리 보고 안쪽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눈에 익은 가방이 보였다. 직원이 가방을 열어 보라고 했다. 자크를 열자 은은한 망고 향기가 진동을 했다. 얌전히 있는 망고, 완전히 물러 터져서 흰 바지를 물들게 한 망고, 푸르죽죽해서 주름이 진 망고가 저마다의 향기와 색깔을 뽐내면서 난리법석을 떨고 있었다. 검역을 받지 않고는 들어올 수 없다며 직원은 쓰레기 통으로 망고를 내 던졌다. 너무나 아깝고 속상했다.
여행을 다녀온 지 일 년이 되었다. 시간은 쏜살처럼 지나갔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렸지만 페루를 여행했던 사진을 꺼내보면서 우울한 마음을 삭였다. 맛도 보지 못하고 쓰레기통으로 모두 들어간 애플망고가 사진 속에서 먹음직스럽게 빛을 내고 있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니까 따뜻하다 못해 뜨겁게 햇볕이 내리쬐는 그곳이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다. 검역을 받지 못하고 내버려진 망고를 아들은 나 보다 더 아까워했다.
어느 날 아들이 페루에서 망고를 주문했다. 망고 농장 주인의 아들을 소개해 줬더니 어느새 저희들끼리 친구가 되었다. 망고를 한 개도 아니고 한 박스도 아니고 한 파렛트를 주문했다. 층층이 쌓인 애플망고는 나를 따뜻한 페루의 퓨우라 농장으로 데려다주었다. 아들에게 어쩌자고 이렇게 많이 주문했냐고 묻자 30주년 결혼 기념 선물이라고 했다. 나는 기가 막혔다. 아무리 선물이라고 하지만 이 많은 망고를 나눠먹는 것도 한계가 있는데 어쩌자고. 하지만 마음이 바뀌었다. 생각지도 못한 것을 아들이 해 주었지만 나는 곧바로 행동으로 움직였다. 평소에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 이웃들, 친구들, 글벗들을 한 분 한 분씩 떠올리면서 망고를 보냈다.
망고를 받은 분들이 연락이 왔다. 그윽한 향기와 쫀득한 맛이 그만이라며 잘 먹겠다고 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여동생한테서 연락이 왔다. 망고가 심줄이 나 있는 것도 있고 덜 익은 게 있다며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덜 익은 것은 숙성해서 먹으면 되는데 심줄은 왜 있는지 나도 몰랐다.
망고 껍질은 멀쩡했다. 그런데 어쩌나. 겉이 싱싱한 망고였는데 속이 뭉그러진 망고를 가까운 분들에게 선물로 보냈으니. 그렇다고 망고가 어땠는지 물어볼 수도 없고.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서 온 귀한 것이라고 선물로 보내 놓고 맛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애면글면 하게 했던 적은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