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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산을 가리지 않는다

이하 시인의 대표작 10선 ㅡ 월간 모던포엠 초대작

저의 대표작으로 독자들이 '산은 산을 가리지 않는다'를 꼽습니다. 시상과 메모를 10년 정도 품다가 설악에 들면서 완성했지요.
30년이 되어 다시 그 풍경을 만났습니다.

발표하고 세간에 회자되었을 때 어느 독자 분의 생생한 체험에 잇댄 감상글이 아직도 인상에 남습니다.

"2002년에 내가 맡은 여러 가지 일들 중에서 가장 큰일은 교회일과 자모회일이었다. 맡기 전까지는 잘 몰랐는데 맡고 나서 부딪혀오는 여러 가지 문제들, 특히 대인관계는 나를 힘들게 했다. 사람들과의 원만하지 못한 관계는 나를 자꾸 위축시켰고, 내가 문제가 있어서일까,내가 무얼 잘못해서 그럴까....

아무리 생각해도 난 잘못 한 것이 없는데 왜 그 사람과 만나면 부딪혀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많아지는 건 생각 밖에 없었고 말을 줄여가면서 내 맘을 돌아보게 되었다

결국 드디어 나는 심각하게 사람들과의 관계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소외? 왕따! 이런 느낌이 왕따라고 하는 건가보다. 뭔가 영 불편하고 찝찝해서 도대체가 개운치가 않았다.
친한 친구가 충고로 해준 말도 서운하게 들렸고 확실하지 않은 기분 나쁜 감정이 나를 우울하게 했고 밤잠을 설치게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시를 만났다.
ㅡ ​산은 산을 가리지 않는다/이하(李夏)

문득 만난 이 시가 나를 위로해주었고 나를 편안하게 해주었다.

산은 산을 가리지 않는다....
비킬 뿐!

아! 내가 너무 앞서가려 했구나. 산처럼 비킬 줄도 알아야 하는데 .....낮은 데로 낮추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구나. 소리가 묻어나지 않았어야 했는데 내 목소리가 너무 컸구나.
앞은 앉고 뒤는 서야 했는데 앞이나 뒤나 서려고 만 했구나....크면 큰대로 빛깔을 덜었어야 했는데 내 빛깔만 나타내려 했구나. 그저 그 자리에 있어서 한결 같은 사람이 되었어야 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구나. 산은 산을 밀어내 지 않는다고 했는데 나는 나보다 더 능력 있는 사람을 밀어내고 싶어 했구나. 무성한 제 그림자를 담글 때면 건넛산이 잠길 어귀를 비어둔다 했는데 나는 나 혼자 차지하려 했었구나. 때로 겹친 어깨가 부딪힐 때도 조금씩 비켜 앉는 그 산의 지혜로움과 넓은 마음들이 내 마음을 때렸다.

그것은 교만하고 높아만 지고 싶어 했던 내게 주는 회초리였다. 상처 입은 내 마음과 좁았던 내 마음이 가지고 싶어했으나 가지지 못했던
너그러움을 매를 맞고서야 얻었다면 틀린 생각일까?

내가 하는 영업도 사실은 사람과의 관계형성이 성패를 좌우한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어디에서건 인간관계를 잘 쌓아 스스로 아파하지도 말고 남을 아프게 하지도 말일이다.

우리 모두 산처럼 인간관계에서도 가리지 않고 밀어내지도 않고 조금씩 비켜 앉아
우리의 삶이 더 따뜻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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