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마음을 읽는 자들- 아이들의 시선에서 시작

배움보다 먼저 도착한 마음

by 미스리

2023년 미국 텍사스의 Bridge City High School의 한 교감 선생님이 이른 아침, 아직 아무도 도착하지 않은 건물 전체를 돌며 두 손을 들어 기도하는 영상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빈 교실, 텅 빈 복도, 고요한 카페테리아와 체육관…학생들보다 먼저 도착한 그는, 그 공간마다 기도로 축복을 선포하며 새 학기를 준비한다. 그 장면을 보는 내내 전신에 전율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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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기도로 준비하는 교사가 존재한다면… 아직 이 세상에 소망은 있구나.’ 라는 생각이 마음 깊은 곳에서 피어올랐다.





나 역시 늘 학생들보다 한 시간 반쯤 일찍 학교에 도착하곤 했다.


인적 없는 복도, 아직 불이 켜지지 않은 교실들, 작은 발소리조차 크게 울리는 그 고요한 아침의 정적은 나만의 묵상을 허락해주는 소중한 특권이었다.


조용히 교실 문을 열고, 컴퓨터를 켜고, 그날의 수업 슬라이드를 점검한 뒤 잠시 눈을 감고 기도했다.

곧 쓰나미처럼 몰려올 아이들. 오늘은 어떤 강풍이 우리 반을 덮칠까, 어디로 몰아부칠까.


'하나님, 우리 반 아이들을 지켜주세요. 아이들의 안전을 지켜주시고, 그 마음을 만져주시고, 오늘 하루의 배움을 통해 지혜가 자라나게 해주세요.'


그리고 나는, 조용히 한 명씩 아이들의 자리에 앉아보았다. 교실 곳곳에 흩어진 그들만의 공간은,

각자의 취향과 성향, 그리고 마음의 방향이 반영된 작은 세계였다.


맨 뒤 소피아의 커다란 흔들 의자에 앉아본다. 그곳에 앉으면, 소피아가 세상을 바라보는 그 시선이 느껴진다. 세상을 향한 소피아의 눈빛이 나를 통과해 지나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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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옆 코너, 캐빈의 자리엔 “미스리와 캐빈”의 강박스러운 그림들과 수학 문제지들, 낙서투성이의 그의 세계가 있다. 그 낙서들 속에, 캐빈의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Kevin4.jpg 캐빈의 수학 문제지: 늘상 문제지 위에 미스리와 본인의 그림을 그려넣고 공부를 시작하는강박이 있다.


학급 도서관 옆 조이스의 공간. 처음 만났을 땐 책상 아래에 숨어 씨익 웃던 아이. 이젠 더 이상 숨지 않는다. 그녀의 자리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가득 찬 문제지로 채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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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한가운데, 올리버의 자리엔 언제나처럼 책상 위에 아무것도 없다. 정리와 질서를 중시하는 그 아이답다. 그의 청소에 대한 집념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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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상 가까이에 있는 앤드류의 자리. 벽엔 가족사진과, 수어로 만든 그림표가 붙어 있다. 그 공간은 앤드류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 담긴 작은 창이다.


교실 문 옆에 위치한 노엘의 자리. 항상 차분한 아이답게, 그의 정돈된 공간에는 고요한 정적이 흐른다. 흔들림 없는 연필, 반듯하게 놓인 책, 가지런히 정리된 물건들 사이로 노엘의 성격이 조용히 말 없이 드러난다. 노엘의 조용함 속에 어떤 단단함이 느껴지는 자리.


나는 아이들의 자리에 앉아 그들만의 시선으로 교실을 바라본다.

자리에 앉아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교실 중앙 스크린 앞에 선 내가 아니라,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비로소 보이는 교실. 어떤 아이는 벽만을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어떤 아이는 창밖 하늘에 시선을 던지며 멍하니 거리를 둔다. 누군가는 교실 전체를 바라봐야 안심하고, 누군가는 친구의 옆모습을 보며 안심하고, 또 어떤 아이는 조심스럽게 교사와의 거리를 가늠하며 앉아 있다. 그 자리엔 그 아이의 숨결과 침묵, 웃음과 눈물, 그리고 미처 말하지 못하는 유별나고 특별한 마음들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는 오늘도 조용히 기도한다.


“하나님, 이 작은 아이들의 마음에 큰 평안이 머물길. 그리고 제가 아이들의 특별한 마음을 읽는 교사가 되게 해주세요. 그들의 시선에서 시작하고 이해하는 교사가 되게 해주세요.”


곧, 아이들이 문을 열고 교실로 들어올 것이다.

위태롭지만 안전한 곳,

불완전하지만 사랑스러운 곳,

예측불허 강풍이 있지만 다이나믹한 곳.

우리의 교실로.




6개월 동안 연재해온 두 권의 시리즈를 이제 마무리하려고 한다. 미국 공립 초등학교에서 특수교육 교사로 근무한 지 어느덧 6년째, 이 글은 그 중 첫 2년의 기록을 담고 있다.


불꽃처럼 이글이글 뜨겁기만 했던 1년 차,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듯 일렁일렁 위태롭던 2년 차


그 시간들을 버티고, 지나오고, 성장할 수 있었던 건 함께였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우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내 학급 보조교사 수잔. 특수교육계에서 20년 넘게 일해온 베테랑이자, 자폐 자녀를 둔 부모인 수잔에게서, 교과서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던 수많은 실전의 기술을 배웠다.


내가 무너질 듯 지쳐 있을 때면, 수잔은 말없이 도시락을 내밀었다. 새벽에 직접 싸온 따뜻한 도시락에 그녀의 마음의 온기를 담아 전하던 손길. 큼지막한 딸기가 가득한 상자, 내가 좋아했던 홀푸드 빵을 건네며 조용히 등을 토닥이던 그녀의 따스한 손길.


나는 그녀의 도시락과 음식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수없이 울었다. 그녀는 위로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전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언어치료사 개비. 강압적이고 험했던 2시간의 Individualized Education Program (IEP) 회의가 끝난 뒤, 부모가 떠난 자리에 홀로 남아 엉엉 울던 내게, 그저 조용히 시선을 건넸던 그녀는 다음 날, 꽃 한다발을 건네며 가만히 안아주었다.


IEP(Individualized Education Program) 미팅은, 미국에서 장애 학생이 개별화된 맞춤 교육을 받기 위해 열리는 공식적인 교육 회의이다. 이 회의는 연 1회 이상 반드시 열려야 하며, 학생의 필요나 변화에 따라 추가로 소집되기도 한다. 참석자는 보통 학생의 부모, 특수교육 교사, 일반학급 교사, 학교 관리자 (교장 혹은 교감), 그리고 경우에 따라 부모가 고용한 변호사나 교육 대리인 (advocate)이다. IEP 미팅에서는 학생의 현재 학업 및 행동 상태, 평가 결과, 필요한 서비스, 그리고 교육적 목표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결정한다. 이는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실질적이고 실현 가능한 교육 접근을 보장하기 위한 핵심 절차이다.


아직 모든 것이 낯설고, 부족하고, 흔들리던 나를 말없이 믿어주고 함께 걸어준 이들 덕분에 나는 버틸 수 있었고, 해낼 수 있었다.


2년의 시간을 마친 후, 나는 새로운 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지금은 Preschool Special Education Teacher (미취학 아동 특수교육 교사)로 일하고 있다.


어느덧 6년 차가 된 나는, 이제 팀 리더가 되었고, 1년 차 초보 교사들의 멘토가 되어 그들을 돕고, 이끌고 있다. 처음엔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시작했던 내가, 이젠 누군가의 시작을 함께하는 사람이 되었다.


교실은 여전히 매일 새롭고, 아이들은 여전히 예측할 수 없지만, 나는 이제 안다. 사랑은 가르침보다 먼저 오고, 믿음은 말보다 깊다는 것을. 수잔의 도시락, 개비의 꽃, 그리고 그들과 함께한 모든 시간이 나를 교사로 만들었다.


이젠 나도 누군가의 수잔이, 개비가 되어, 또 다른 초보 교사의 옆에 서 있으려 한다.


그들도 언젠가, 특별한 마음을 읽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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