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졸업하지 못한 마음
님,
나의 님,
나의 일과를, 나의 정신을 사로잡고
나의 꿈 속까지 나타나
직장과 사생활의 경계를 온전히 무너뜨렸던,
함께한 2년을 온전히 지배했던 내 6학년 학생, 소피아.
늘 레깅스에 헐렁한 면티, 투박한 운동화를 즐겨 신던 소피아가 오늘은 새빨간 나시 원피스에 얇은 샌들을 신고 등교했다. 까치발 보행 때문에 늘 운동화를 신던 소피아가, 오늘만큼은 드레스에 맞춰 샌들을 신은 것이다. 샌들 사이로 여전히 까치발로 걷느라, 걸을 때마다 들썩이는 발뒤꿈치와 딱딱한 밑창이 시멘트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다.
자폐를 가진 아이들 중엔 감각 처리의 어려움으로 까치발로 걷는 경우가 있다.
소피아는 발레리나처럼 발끝으로 교실을 돌며 박수를 친다.
자기 자극 행동 (stimming)이라 불리는 이런 반복적 행위는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손을 퍼덕이며 흔들거나 떨기, 상체를 앞뒤로 움직이기, 박수치기, 뛰어가며 양쪽 벽을 치기, 같은 소리나 단어를 반복하기…불안한 감정을 진정시키거나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스스로를 강화하는 행동이다.
그때 교장이 교실에 들어와 말했다.
Sophia, congratulations on your graduation! I know you’ll be amazing during the ceremony!
Be sure to follow directions carefully when it’s your turn to go up front and receive your certificate!”
(소피아, 졸업을 축하해! 졸업식에서도 멋지게 해낼 거야. 앞으로 나가서 증서를 받을 차례가 되면, 안내를 잘 따라주렴.)
소피아는 무심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쇼파에 벌렁 누워 크게 웃으며, 양손과 양발을 동시에 마구 흔들어댄다. 보조교사 수잔이 이내 그녀의 다리를 담요로 덮어주었다.
우리 학교에 ‘자폐 학급’이 생긴 뒤, 첫 졸업생이 바로 소피아였다.
프리스쿨 2년, 킨더가든을 포함해 무려 10년을 이 학교에서 자란 소피아.
웃을 일도, 울 일도, 탈도 많았던 그 시간을 함께 한 교장에게도 이 졸업은 남다른 의미였으리라.
소피아가 화재경보기를 눌러 전교생이 대피했던 일,
쉬는 시간마다 도로로 탈출해 후문이 봉쇄되던 일,
교사들을 물기도, 맞기도 했던 일,
수돗꼭지를 뽑아 교실 공사를 하게 했던 일까지...
모두 그녀의 성장의 일부였다.
이윽고 교장의 목소리가 울린다.
Sophia (소피아)!
가족들의 환호가 터지고, 소피아는 또각또각 걸으며 앞으로 나아가 증서를 받았다. 자신이 주인공임을 아는 듯 환하게 웃는 얼굴.
비상상황에 대비해 문 옆에서 대기하던 내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그녀의 곁을 지켜온 보조교사 수잔의 눈에도 눈물이 가득했다. 우린 서로 눈을 마주치며, 참았던 눈물을 동시에 흘렸다.
수잔은 나보다 더 오랜 시간, 소피아의 삶을 함께한 사람이다. 기저귀를 찬 세 살 소피아를 처음 만났고, 4학년 때 첫 월경을 맞아 놀란 그녀를 엄마처럼 다독이며 함께했던 이도 수잔이었다.
졸업식이 끝나고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적막한 교실에 대비되는 소피아의 흥겨운 발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누군가의 "성장"이라는 말 속에는 수많은 인내와 기다림이 숨어 있음을.
오늘, 한 명의 아이가 더 큰 세상, 중학교로 가는 여정 안에 많은 이들의 사랑이 없었더라면 가능했을까? 그 여정의 한켠에 내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행복했다.
수잔과 나는 소피아의 졸업 선물로 운동화를 샀다. 우린 잠시 망설였다.
까치발 보행과 도주를 막기 위해 묵직한 등산화를 살까, 아니면 편안한 까치발 보행과 손쉬운 도주를 허락하는 쿠션 가득한 러닝화를 살까.
그 고민은 마치 알코올 중독자에게 휴대용 술병을 선물해야 할지 망설이는 마음과도 같았다.
결국 러닝화를 선택했다. 밝은 네온 노란색으로.
혹시 소피아가 도주하더라도, 그 눈부신 신발 덕분에 멀리서도 금세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졸업식이 끝난 뒤, 소피아에게 그 신발을 건넸다.
다음 날, 졸업 퍼레이드. 소피아가 우리가 선물한 운동화를 신고 등교했다.
어제보다 훨씬 편안해 보이는 까치발로 걸으며, 행복한 얼굴로 나를 향해 "미스리"를 외치며 달려오는 그녀의 모습에 만감이 교차했다.
6학년 전체가 행진을 시작했고, 소피아와 나는 가장 마지막 줄에 섰다.
복도를 가득 메운 환호, 박수, 웃음소리 속에서 소피아는 두 팔을 활짝 펴 하이파이브를 하며 크게 웃었다.
내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마스크 안쪽으로 눈물이 흘러내려 다행이었다.
그리고 인파 속의 소피아의 엄마...
눈물로 젖은 미소로 핸드폰을 들고 영상을 찍던 그녀에게 소피아가 다가가 하이파이브를 건넸다. 나 역시 하이파이브를 건넸다.
그 순간, 우리는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커다란 눈물을 함께 흘렸다.
퍼레이드가 끝난 후, 나는 텅 빈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 아직 바닥에는 종이 조각과 풍선 파편이 흩어져 있었다.
그 사이로 소피아의 네온 노란 운동화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내 눈에만 보이는 자국.
그 자국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이 선명한 네온 발자국을 기억할께. 그리고 네온 발자국을 보며 모두가 너를 찾을꺼야! 모두가 너와 함께 할꺼야!
교육은 교사가 아이의 발자국을 따라가며 배우는 일이라는 것을.
학생이 떠난 후, 특수교육자에게 남긴 그 발자국은 지워지지 않음을...
소피아는 졸업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때의 마음에서 졸업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