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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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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Oct 16. 2019

 이별은 그렇게 갑자기 찾아왔다

우리 집  현관 앞에는 빨간 자전거가 언제나 같은 자리에 놓여 있다. 지난 7년간 똑같은 풍경이었다. 오늘 남편은 그동안 내 애마였던 빨간 자전거를 차고 깊숙이 들여놓았다. 


우리 동네는 서울에서도 유일하게 지하철이 닿지 않는 동네다. 그래서 불편하고 그래서 조용하다.  나지막한 산들이 동네를 둘러싸고 있어서 마치 소쿠리에 담긴 동네처럼 보인다. 그 소쿠리의 중간쯤에 우리 집이 있다.


자전거는  나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동네 슈퍼마켓에 갈 때나. 강아지를 리고 근교 공원으로 산책을 갈 때,  매일 다니는 헬스장과  일주일에 두 번, 문화센터를 갈  때도 나는 자전거를  타고 갔다.

주말이면 남편과 함께 한강으로  라이딩을 가기도 했다.

요즘처럼 도로에 차가 많고 주차전쟁이 심할 때면  자전거가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다. 언덕 중간에  있는 우리 집에서 큰길까지 내려오는 동안에는 그야말로 눈 깜빡할 사이에  도착한다. 반대로 큰 길가에서 집으로 올라가는 길은 종아리에 힘을 주고 페달을 힘껏 돌려줘야 한다.


학교 앞을 지날 때면 앞을 가로막고 있는 학생들에게 ''피코 피코''라고 자전거 나라말로 비껴달라는 말을 하면 학생들은 알아듣고  곧잘 도로를 내 주기도 했다.

빨간 자전거와  나는 그렇게 친구처럼  한 몸이 되어 다녔다.

내가 볼일을  마치돌아올 때까지  길가에서 착하게 기다려주던 나의 애마와  뜻밖의 이별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내가 다니는 헬스장은 큰 길가에 있다. 그곳에서 운동을 하는 동안 내 빨간 자전거는 가로수 그늘 아래에서 차분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다.  러닝을  하는 동안에는 가끔 창가에서 눈을 마주치기도 한다.


바로 어제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언제나처럼  자전거를 타고  신호등을 막 건너려는데  신호등 불빛이   바뀌었다.

급하게 브레이크를 잡았다. 왼발이 땅에 닿고  오른발을 옮기려는 순간  균형을  잃고 넘어지고 말았다. 도로변 시멘트에 왼쪽 무릎을 부딪히며 주저앉았다..

지나가던 학생이 나보다 더 놀라서 달려와  부축해 주었다.


부끄러움과 좌절감이 동시에 밀려오고 걱정이 뒤따라온다. 지금 이 상황이 나의 모든 계획과 행동들을 주저앉히는 거나  아닌지... 당장 내일 있을 탁구게임과 오랜만에 캐나다에서 온 친구를 만날 약속은  이미 어그러진 것 같다.


순식간에 장애인이 되었다. 겨우 추스르고 자전거와 함께 집으로 오는 길은 조금 전과 달랐다.

골목길에 자동차 방지턱은  왜 그렇게 많은지, 여기저기  땜빵을 해서 울퉁불퉁한 길은 왜 그렇게 힘든지, 조금 전까지 자전거를 불끈 들여놓았던 우리 집 대문간이 그렇게  높았는지,

평범하게만 보였던 모든 것들이 모두 불편함 투성이었다.


어떻게 걸어서 집까지 왔는지, 집 앞 현관에서는 더 이상 걷지 못할 만큼 무릎이 아팠다.

놀라서 달려 나온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엑스레이 사진을  유심히 바라보던 의사 선생님의 눈길이  내 무릎에 머문다. 순간  석고를 하고 미라처럼 붕대를 칭칭 감은 내 다리를 상상했다.


''부은 상처로 봐서는 꽤 심한데  엑스레이 상으로는 이상이 없네요''


아~ 단단한 내 관절이여,   

그 순간  누구나에게  무조건 고마웠다. 하느님도, 의사 선생님도, 나를 부축해 준 학생도, 내 빨간 자전거 까지도...,


간단하게 소염제를 처방받고 병원을 나오면서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젊지 않은 나이에  자전거를 타는 내가 앞으로 생길 어떤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이번 사고가 생긴 건 아닐까.., 남편은 다시는 자전거 탈 생각은 하지도 말라며 으름장을 놓는다.

그래 , 이별의 아픔이라  생각하자


중학교 시절, 오빠들이 타는 자전거를 보고 나도 자전거를 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처음 자전거를 배우던 날, 오빠가 마냥 잡아주고 있는 줄 알고 신나게 달렸다.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난 뒤  그제야 내 앞에 서있는 오빠를 보고 나 혼자 달린 걸 알게 되었다. 자전거 타기의 시초였다.

그 후로 가끔 여행 중에 자전거를 빌려 탔다. 걸어 다니면서 행하는 것도 좋지만 자전거를 타고 골목을  누비는 여행은 더  즐거웠다.  지난해. 바르셀로나에서  일주일간은 자전거로만 계속 여행을 했었다. 자전거 전용도로와  자전거를 위한  교통신호가 있는 그 나라는 자전거들의 천국이었다.


우리 나라도 요즘 자전거 우선도로가 많이 생겼다. 전용이 아니라 우선이라는 표현이 좀 애매하지만  도로 표면에 그려진 자전거 그림을 보면  왠지 조금 당당해졌다.


7년 전. 작고 아담한 자전거를 장만한 이후로 지금까지 내 빨간 자전거와 나는 서로를  소중하게 지켜주었다.

서로 많이 아프지 않고 헤어지게 되어서 다행이다. 갑자기 찾아온 이별에 얼떨떨하고  있을 내 빨간 자전거, 그동안  나와 함께 지낸 추억이 녹슬지 않도록  가끔  닦아줄게 걱정 마,

봄이면 꽃을 실어다 주던 나의 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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