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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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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Oct 23. 2019

아프지 않은 이별의 신약은  아직 없는 걸까요?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이별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수많은 이별을 겪으며 살았다. 살아서 헤어지든 영원히 안녕을 고하든  이별은 슬프다. 이별의 후유증을 겪고 나면 언제나 나는 제제처럼 한 뼘씩 자라 있었다.


첫사랑과의 이별은 서로 인연이 아니었다는 체념으로 극복할 수 있었으나 내가 결혼하고 일 년 뒤에 돌아가신 아버지와 그 후 10년 후에 저 세상으로 가신 어머니와의 이별은 해가 갈수록 아픔이 더했다. 슬픔을 같이 나눠가질 수 있었던 형제들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이별의 슬픔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멀리 외국으로 이민을 떠난 친구들과의 이별은 언젠가는 만나게 될 거라는 희망으로 견딜 수 있었고 시부모님과의 영원한 이별은 이제는 우리가 이 집안을 이끌어 가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버티었다.


꽃이 떨어지면 열매가 맺듯이 이별의 아픔은 인간을 성숙하게 만들어 준다. 하지만 언제나 미완성인 인간은 세상에 이별을 고할 때까지 수많은 이별을 경험하며 아파하고 견뎌야 한다.


최근  한 달 사이에 무려 세 번의 이별을 겪었다. 각각 다른 이별 3종 세트가  상처가 낫기도 전에 다시 헤집어 놓아서 나는 지금 많이 아프다.


우리 웃세대인 부모님 세대의 마지막 분인 고모가  돌아 가셨다는 부음을 받은 것은 10월의 첫날 아침이었다. 나는 고모와 함께 지냈던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하루를 보냈다. 아름다운 추억을 생각하는 것도 이별을 극복하는 방법 중에 하나였다.


일주일 전 자전거를 타다가 다리를 다친 후로 더 이상 자전거를 탈 수 없게 되었다. 그동안  나와 함께했던 자전거와 이별을 할 때도 마음이 무거웠. 이별은 살아있는 것뿐 아니라 나와 세월을 같이 한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자전거와 나의 7년간의 우정을 글로 썼다. 슬플 때 소리 내어 실컷 울고 나면 마음이 리듯이 글도 조금은 위로가 된다


그리고  오늘, 언제인가는 올 줄 알았던 슬픈 이별을 맞이하게  되었다. 수없이 많은 이별을 하며 나름 극복하는 방법을 터득했지만 오늘의 이별은  견디기가 힘들다.


새벽에 남편이 나를 깨웠다.

''세찌가 떠난거 같아..., ''

세찌가 아픈 후로 남편은 세찌가 있는 2층에서 거의 생활을 했다. 낮에는 주로 내가 돌봤지만 밤에는 수시로 짖는 세찌를 남편이 돌봤기 때문이다.

어젯밤, 고통스러워하는 세찌에게 안정제를 먹이고 잠드는 걸  보고 내려온 게 마지막 인사였다.


며칠 전, 반가운 메일 한통을 받았다. 내가 브런치에 올린 글'치매에 걸린 강아지의 병상일지'를 읽은 독자가 보낸 편지였다.

대학병원에서 강아지의 치매치료약을 연구개발하는 연구원이셨던 그분은 세찌에게 치매치료 신약의 임상실험을 의뢰했다.

한 줄기 빛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임상실험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세찌의 건강상태는 좋지 않았다.


결국 세찌는 한 줌 흙으로 돌아갔다.

사람도 죽고 사는데..., 라는 말이 가장 슬픈 위로의  말이었다.  나에게 세찌는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활기차게 뛰어놀던 추억을 생각해봐도, 밤중에  일어나 글을 써봐도  슬픔은  줄어들지 않는다.

고통 없이 보내줄 걸 그랬나..., 자꾸만 죄책감이 든다.


세찌와의 이별을 나만 감당하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 우리 가족의 홈피에 세찌의 사진이 도배가 되었다.  아기 세찌부터 건강하게 뛰어다니던  젊은 날의 세찌, 아파하던 전 날의 모습까지...,

모두 세찌가 제일 좋아한  형이 올린 사진이다.

아침에 문득 들리던 음악이  세찌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같았단다.


It ain’t no use to sit and wonder why, babe

앉아서 궁금해하기만 하는 건 쓸데없는 짓이야, 베이비


It don’t matter, anyhow

상관은 없지, 어쨌든


An’ it ain’t no use to sit and wonder why, babe

그리고, 앉아서 궁금해하기만 하는 건 쓸데없는 짓이야, 베이비


If you don’t know by now

지금도 모른다면


When your rooster crows at the break of dawn

동틀 녘에 수탉이 울거든


Look out your window and I’ll be gone

창문 밖을 봐, 난 떠난 후일 테니


You’re the reason I’m trav’lin’ on

너는 내가 여행하는 이유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두 번 생각하지 마, 괜찮으니까


한 젊은이의 슬픔이 나에게는 아픔이었다. 가족들에게 위로만  받던  내가 위로하는 엄마가 되었다.


''우리 모두 아파하지 말자, 세찌가 우리에게 남기고 간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자 ''


그래도 이별은 아프다. 세찌와의 이별의 상처는 영원히 아물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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