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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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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Nov 20. 2021

아름다운 도전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간입니다. 늦게까지 국민가수라는 음악 경연프로를 보다가 그만 잠 시간을 놓쳐버렸네요.

문득 예술가는 그 재능을 타고나는가 아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가를 논하던 자리가 생각났니다. 왜? 하필 이 야심한 밤에...,


재능은 타고 나는 게 아니라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쪽에 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오해였음을 고백하기 위해 이렇게 한 밤중에 자판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일곱 살 꼬마가 무대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처음에는 앙증맞고 예쁜 어린아이가 어른들 틈에 끼어서 가요를 부르는 게 귀여워서 눈여겨봤지만 오늘 밤에는 폭포처럼 쏟아내는 기운찬 성량과 무대를 즐기는 아이의 재능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답니다.


왜 그런 것 있잖아요 어쨌든 대중의 인기가 많은  출연자는 기준에 조금 미치지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횟수까지는 출연시키는 방송사의 상업성,

거는 없지만 코로나 덕분에  안방에서만 교양을 쌓다 보니 시청자의 촉이라고 할까? 그 정도 눈치는 생기더라고요


마스터들에 의해 아이가 추가 합격되는 걸 보고 당연히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방송사의 전략일 거라고 생각했지요. 이쯤 되면 고백보다는 사과를 먼저 정중하게 해야 되겠군요.


아무튼 저는 오늘 밤 이 아이의 재능을 보고 천부적으로 타고난 소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제 겨우 일곱 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4단 고음까지 내지르는 건 노력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았지요. 그동안 '1퍼센트의 재능과 9퍼센트의 노력'이라는 말을 너무 믿고 살아온 것 같습니다.


이제 외손녀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얼마 전에 아이는 뮤지컬 배우 오디션에 응시를 했습니다. 양쪽 집안을 통틀어 아무리 뒤져봐도 예능인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는 집안에서 갑자기 뮤지컬 배우라니..., (혹시라도 이어받을 수도 있는 재능의 DNA가 없다는 말)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무렵, 가족이 함께 영국으로 여행을 갔더랍니다. 그곳에서 아이는 처음으로  뮤지컬 '마틸다'를 관람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였답니다. 뮤지컬에 꽂힌 게...,


1차 서류전형에 합격하고 2차 오디션을 았는데 놀랍게도 합격, 설마 했던 3차 오디션까지 합격을 했을 때는 어른들도 슬슬 동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다가 정말 뮤지컬 배우가 되는 거 아닌가?

점점 줄어드는 숫자에 고무되었지만 내색하지 못하고 끝까지 남아 주기만을 바랐답니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 오디션에서 아이의 노력은 물거품이 고 말았니다.

하고 싶었던 일의 문턱에서 좌절을 본 아이는 화장실에 들어가서 목이 쉬게 울고 나오더랍니다.


지금 우리 집에서는 뮤지컬의 ㅁ자도 꺼내지 않고 있습니다. 아이는 도전에서 탈락된 것을 실패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이에게 어떤 위로를 줘야 마음이 풀릴 수 있을까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

어떤 예술가가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실패를 딛고 일어서 성공해야만 실패에 의미가 있는 건 아니라는..,

실패의 의미는 실패를 통해 느꼈던 좌절감 내지는 상실감을 기억하며 때론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면서 지금에 도착한 사람들, 그들이 겪은 실패의 기억이 그 자체로 큰 의미가 된다고 합니다.

누구나 실패를 겪지 않고 성공하기를 바라지만 그렇게 운이 좋은 사람은 저 밑바닥에서 흔들리지 않게 지탱해 주는 단단한 그 무엇이 없다고 합니다.

실패를 통해 겪게 된 좌절감과 상실감은 무겁고 힘들지만 어떤 역경에도 흔들리지 않게 중심을 잡아 준다고 하지요.


화장실 안에서 실망과 허무를 쏟아내고 나온 손녀는 열한 살 아이답지 않게 바로 평정을 찾았다고 합니다.

어린 나이에 도전을 하는 것도 장하지만 남보다 이르게 실패를 체험하고 이겨내는 것은 그보다 더

장한일이라고 말해주고 싶니다.


늦은 밤 경연프로를 시청하면서 마음 한편이 묘해지더군요 그 길은 겨우 일곱 살짜리 어린아이가 걸어가기엔 너무나 험난한 길이라는 걸 알거든요 혹시  길에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게 되더라도( 그렇게 되지 않기를 진정으로 바라지만) 아이의 도전에 응원하고 박수를 보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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