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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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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Nov 17. 2021

천년을 살아야 할 수 있는 말


나무 앞에서 경건해진 적이 있었다. 얼마 전 울릉도에 갔을 때, 그곳에서 수령 2000년이 된 우리나라 최고령 나무인 향나무를 보았다. 도동항의 벼랑 끝에서 거센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있는 향나무는 키가 제대로 자라지도 못한 채 늙어버렸다.

나무가 서 있는 곳은 너무나 척박한 환경이었다. 수직으로 깎인 기암절벽 위, 온통 바위 투성이인 그곳은 아래에서 올려다보기에도 힘들 만큼 험난한 곳이었다. 

2000년이나 되는 긴 세월을 고통과 고난 속에서 살았을 나무를 바라보면서 늙은 향나무 주변에 후광이 비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

''고통은 받아들이면 된단다''


나무의 몸은 작고 야위고 가냘프지만  마음에 와서 닿은 울림은 그 어떤  소리보다도 컸다.

                                                                                            

                                                            

가을이 끝나갈 무렵, 용문사 경전 입구에서 수령 천백 살이 된 은행나무를 보았다. 이 거대한 나무는 누런 가사를 입고 온 몸에 염주처럼 주렁주렁 열매를 매달고 서서 자신을 찾아온 중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나무를 보는 순간 마치 경륜이 높으신 노스님을 뵙는 듯한 위엄이 느껴졌다.

발아래에 깔린 노란 은행잎이 카펫처럼 푸근하였다.


용문사 은행나무 아래 황금빛 카펫



중생은 어찌하여 슬픈 얼굴인고?


나이 듦이 슬프고

품을 떠난 빈 둥지가 허전하고

다시는 볼 수 없는 것들이 그립습니다


천 백번의 잎을 틔우고

천 백번의 열매를  품고

천 백번의 단풍이 들고

천 백번의 이별을 하면서

어찌 견뎌냈는지요


익은 열매는 품을 떠나는 게 진리이며

새 잎은 잎이 진 자리에서 돋는다.


어디선가 들어봄 직한 말이었다. 그렇다 도동항 절벽 위에 서있는 2000년 된 향나무가 내게 울림을 주었던 말이다


''받아들여라''


잊으려고 애를 쓰면 더욱 그리워지고 품으려고 애쓰면 더욱 달아나려고 몸부림 칠 것이다.


''그대로  두어라''


그러니  그대로 두어라 아파하지도 슬퍼하지도 말아라 너도 자연의 일부이니 자연처럼 살면 된다.


부처님은 석가모니 한 분인 줄만 알았는데 세상에는 수많은 부처가 계시다고 한다. 그중에 이렇게 나무의 형상으로 오시는 부처님도 계시는가 보다.

누구는 일문일답이 아니고 자문자답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천년을 살아 숨 쉬는 나무 아래에 서 보면 안다. 그냥 우러르고 바라보았을 뿐인데 마음으로 스며든다. 천년을 살아야 할 수 있는 말이 들린다.


살아계시는 부모님께는 일 배의 절을 하고 돌아가신 부모님께는 이 배, 부처님께는 삼 배의 절을 올린다고 한다.

용문사 은행나무를 향해 세 번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누구나 천년을 살면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천백 살 용문산 은행나무와 수령 이천 살의  울릉도 향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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