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마음으로부터 바라는 것을 찾게 된다면 우리 집 뒷마당보다 더 멀리 가진 않을 거예요 왜냐면 거기에 없다면 처음부터 잃어버린 게 아니었을 거니까요
_라이먼 프랭크 바움(오즈의 마법사) 중에서 _ -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계절의 프로방스는 어느 곳이나 싱그러운 풍경이었다. 양귀비가 절정을 이룬 들판에는 라벤더가 열심히 꽃잎을 피울 준비를 하며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지구에도 오체가 있다면 이곳 프로방스는 지구의 겨드랑이쯤이 아닐까 생각한다. 따뜻하고 푸근하며 살짝 건들기만 하여도 간지러운 미소가 번질 것 같은 프로방스의 수줍은 풍경들, 나만 은밀하게 감춰두고 보고 싶은 정경이 곳곳에 있었다.
살면서 한 번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다. 그 결정의 옳고 그름은 훗날 살아가면서 천천히 알게 된다.
여행을 하는동안 이곳을 오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곳에 가지 않고도 볼 수는 있지만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느낄 수 없는 것들이 매일매일 차고 넘쳤기 때문이다.
바닷가에 널린 수많은 돌멩이들 중에서도 나에게 의미 있는 자갈이 있듯이 매일이 새로운 여행 중에 소중한 것들을 발견했다. 그 첫 번째 보물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니스의 민박집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거의 내 아이 또래의 젊은이들이었다.
여행이라는게 참 신기하다. 여행자라는 동질감 하나로 세대차이의 벽이 허물어지고 스스럼없이 울타리를 열어 준다. 저녁이면 모여서 와인 한잔으로 친구가 되었고 대화가 무르익으면 우리는 모두 환자처럼 자신의 환부를 드러냈다.
직장생활의 환멸. 인간관계의 갈등, 불안한 미래 등, 나는 그들의 고민을 통해 내 아이들을 바라보았고 그들을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상대편에 서서 생각하는 것,
이런 소중한 경험과 깨달음은 여행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여행을 함께 하면서 인생의 동반자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생긴 것 또한 여행이 준 귀한 선물이다
결혼생활이 40년쯤 넘어서면 부부는 오랜 친구가 된다. 사이좋은 친구가 되기도 하고 무덤덤한 친구가 되기도 한다. 서로에게 지루함을 느낄 때쯤의 우리는 여행 후 꽤 두터운 우정을 쌓은 부부가 되어 돌아왔다.
여행 중에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서 혼자서 보낸 두 시간이 있었다. 낯선 곳에서 혼자 있었던 두 시간 동안 나는 남편의 부재가 얼마나 큰 두려움을 가져다주는지 알게 되었다.
이제는 늙어가는 일만 남아 있는 줄 알았는데 늙어가면서도 사람은 자라고 있었다.
여행은 인간의 영혼을 성장시키는 촉진제라는 생각이든다.
여행은 고난의 상처를 다스려 주기도 한다.
몬세라토를 가는 길에 배낭에 조개껍질을 매달고 있는 산티아고 순례자 부부를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자신들에게 닥친 커다란 상처를 이번 순례를 통해 치유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부부의 배낭 위에 하얗게 먼지가 쌓여있다. 아픈 여행처럼 보인다.
단지 즐기기 위해서만 여행을 떠나는 것은 아니었다.
여행 중에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셀 수 없이 많다. 아름다운 경치를 만났을 때와 위기를 무사히 넘겼을 때, 함께 고생하고 무언가를 이루어 냈을 때, 그리고 길 위에서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 순간에 느끼는 감동은 어마한 힘이 있다.
인생 또한 여행과 다를 게 없다.
살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극복하며서로를 의지하며 위기를 넘긴다.
이런 감동의 순간을 기억한다면 상처는 덧나지 않고 아픔을 잊게 할 수도 있겠다.
여행의 마지막 장소를 몬세라트 수도원으로 정한 것은 여행의 마무리를 감사의 미사로 마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몬세라토 수도원 성당의 미사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길게 늘어 선 사람들을 따라 검은 마리아 상(LA Moreneta) 앞으로 갔다.
우리의 여정에 도움을 준 사람들이 생각났다. 엄마 아빠가 여행을 떠난 뒤 보호자처럼 우리를 염려해 주던 아이들과. 길 위에서 만난 천사들, 이 여행을 혼자가 아닌 둘이 함께 할 수 있었음을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다.
스스로 만든 계획표대로 생활을 하고 방학을 마친 뿌듯함이라고 해야 할까? 인생에서 뭔가 하나를 이루어 낸 느낌이 든다
몬세라토 에스콜라니아 소년 합창단의 고운 선율이 울려왔다. 소년들의 아름다운 노래를 들으며 맑고 청명한 물속에 온몸을 담그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