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의 노란 리본

by 연희동 김작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창 밖으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지붕이 보였다. 프로방스 여행을 마치고 이곳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여정의 마무리를 하기로 한 우리 부부는 어젯밤 늦게 아비뇽에서 TGV를 타고 이곳에 도착했다.


스페인은 가우디를 지 않고는 어떤 할 수 없다. 도시 어디에나 가우디로 인한, 가우디에 의한 가우디의 건축물이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가장 첫 번째 작품은 아직도 미완성인 채 여전히 짓고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다.


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옆에 있는 에어 비 앤 비를 숙소로 정한 일은 참 잘한 일이었다. 햇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성당의 모습은 이곳에 있는 일주일 동안 물리도록 바라봐도 좋을 창밖 풍경이다.


도시 민박으로 이 집을 정했을 때 사진에 소개된 창문 밖 풍경이 이렇게 가까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밤중이었지만 수월하게 숙소를 찾을 수 있었던 것도 어디에서나 보이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첨탑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맨 먼저 우리의 발이 되어 줄 자전거를 빌렸다. 이곳의 도로는 일방통행이 많았다. 내렸던 곳의 건너편에서 타면 돌아오게 되는 우리나라 도로교통 방식과 다르기 때문에 초행길에 버스를 이용하기는 조금 복잡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전거 도로가 잘 만들어져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기가 너무나 편리했다.


아침에는 사그라다 파밀리에 성당이 모닝 인사를 하고 조식은 구엘공원의 탁 트인 정원에서 먹는 여행을 꿈꿔본 적이 있으신가요? 어느 여행사의 광고 문구가 아니다. 바로 이번 여행의 마지막 도시인 바르셀로나에서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럭셔리한 여행이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발이 되어준 자전거를 빌리면서 가능해졌다.


매일 아침 나는 커피와 함께 설탕을 듬뿍 묻힌 추로스를 준비해서 자전거 앞 소쿠리에 싣고 구엘공원의 언덕길을 올라갔다. 시내의 정경이 한눈에 보이는 언덕에 위치한 구엘공원은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기에는 조금 힘들었지만 가우디의 상상력이 듬뿍 담긴 기다란 타일 벤치에 앉아서 마시는 한 잔의 커피 맛을 위해서라면 충분한 가치가 있는 고생이었다.


구엘공원에서 마시는 모닝커피(타일 색깔에 맞춰 커피잔도 샀다는...,)


자전거를 타고 바르셀로나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며 가우디의 자취를 찾아다니는 여행은 걷는 것보다 편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보다 빨라서 좋았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해 질 녘 창문으로 깊숙이 들어오는 햇빛이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과하여 비칠 때가 가장 아름답다. 어떤 건축물을 마주 하였을 때 웅장하거나 아름답거나 정교하다는 표현을 하는데 파밀리아 성당은 자연 속에 들어온 것 같다.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 마치 정글 숲 속에 들어온 것 같은 성당의 내부는 우뚝 솟은 종려나무 기둥과 낙하산처럼 널찍한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듯한 예수 성상이 기존의 근엄하기만 한 성당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성당 외벽을 장식한 벽면의 파사도는 한 권의 성경책을 그대로 읽어 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 질 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모습


십 년 전 내가 여행을 왔을 때,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내부 공사 중이었다. 지금은 거의 완공이 된 내부를 보며 또다시 십 년 후에는 어떤 모습으로 지어졌을까?를 상상해 보았다.


시내에 있는 까사밀라와 까사 바트요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빌라다. 까사는 스페인어로 집이라는 뜻이고 밀라와 바트요는 집주인의 이름이다.

최고의 건축가가 지은 집에서 살았던 밀라와 바트요 씨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예쁜 집 구경하기가 취미인 나에게 이 아름다운 빌라를 구경할 수 있는 시간은 최고의 취미활동이었다.


가우디의 건축에서는 직선을 찾을 수 없다. 직선의 합으로 곡선을 그렸다. 그래서 부드럽고 온화해 보인다. 까사밀라 건물을 지을 때 가우디는 참 행복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굴뚝은 장난감 병정의 모자를 씌워 주어야겠어”


“옥상으로 올라가는 천장은 고래의 배 속처럼 보이게 하고 싶어”


“계단은 달팽이처럼, 현관문 잡이에는 라일락 꽃잎을 달 거야, 베란다 창 살은 매머드의 뼈로 장식해야겠군”


집 안 여기저기에서 마치 어린아이들이 놀이를 하듯 즐기면서 일을 한 흔적이 보인다. 반나절 동안을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가우디라는 사람에게 빠져들었다.


나의 아들은 건축을 전공하고 지금 설계를 하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 나는 사업가로서 자질을 갖추기를 원했다. 인맥관리 경영철학 사회성 등, 그때 즐겁게 일하라는 말을 빠트렸다. 자신의 일을 즐겁게 하는 사람은 이렇게 바라보는 이도 즐겁게 한다.


작은 소품 하나에도 가우디의 멋스러움이 묻어있다


스페인도 국민들 간에 갈등이 있는 듯하다.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카탈루니아 자치정부와 이를 제지하는 스페인 중앙정부의 불협화음이 지속되고 있다.


거리에는 한 무더기 사람들이 냄비 등 집기들을 두드리며 시위를 하고 도심의 건물마다 노란 리본이 걸려있다. 세월호 침몰을 애도하며 우리들이 가슴에 하나씩 달고 다녔던 노란 리본과 똑같은 모양의 리본이지만 이곳의 리본은 우리의 추모의식과는 의미가 다르다. 집집마다 또는 건물마다 붙여놓은 노란 리본은 바르셀로나(카탈루니아) 시민들이 스페인으로부터 분리 독립되기를 희망하는 요구의 표현이라고 한다.


내가 머물었던 도시민박집주인은 시내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요리사였다. 휴일 저녁에 자신이 손수 만든 요리로 우리와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식사 중에 분리독립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자신들이 내는 세금으로 스페인의 다른 도시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며 하루빨리 분리독립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르셀로나의 시민들도 대부분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따라주던 토마토 주스가 잔에 넘치는 것도 모른 채 흥분하고 있었다.


남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수많은 예술인들의 흔적을 보았다. 그 들이 남긴 예술작품은 단지 자신들의 생에서 마무리된 것이 아니라 후손들의 삶까지 영향을 주었다. 나아가서는 그 도시가 계속 유지될 수 있는 영향력까지도 갖고 있었다.


이곳 바르셀로나도 건축가 가우디가 먹여 살린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다. 일 년 내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나 구엘공원, 까사 바트요와 까사밀라. 그 밖에도 금잔화가 그려진 타일로 마감한 개인 주택 까사 비센스와 까사 깔밧등.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작품들은 그가 죽고 난 후 지금 까지, 또는 앞으로도 영원히 바르셀로나의 보물이며 그들 삶을 이어 줄 재산이 될 것이다.


가우디 역시 카탈루니아에서 탄생한 최고의 건축가다. 한 사람의 예술가가 자신의 민족에게 부를 가져다주고 있다. 하지만 자연을 사랑하고 부드러운 선을 지향한 가우디의 마음을 헤아려 보지 않을 수 없다.


가우디는 살아생전에 쌍빠 우 병원에 있는 환자들이 성당의 첨탑이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서 병원 건물을 45도쯤 틀어지게 만들어 달라고 제안했다고 한다. 이 한마디 말 만으로도 나는 가우디의 인간적인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살아있었다면 시내 곳곳에 걸린 노란 리본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대부분 사람들은 부랑자처럼 길 위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 가우디를 연민한다. 하지만 그가 만든 건축물을 만지고 걷고 바라보면서 내가 만난 가우디는 절대로 안타까운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무척이나 행복한 고뇌를 하며 자신의 인생을 눈금처럼 정확하게 계산하고 즐겁게 완성하며 살았던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토니오 가우디,

그의 예술정신을 나는 사랑한다.

가우디를 향한 나의 사랑은 카탈루니아 독립을 외치는 사람들과는 결이 다른 사랑이다.



마지막 여행을 마치면서 에어비엔비 주인의 초상화를 그려서 액자에 걸어두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