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팔러 갑니다.

여행 중에 삼시 세끼

by 연희동 김작가


쌀이 떨어졌다. 여행 중에 쌀 팔러 가는 일이 우리에겐 참 재미있는 놀이처럼 즐겁다.

남편과 나는 텅 빈 쌀 봉투를 흔들며 우리들 삼식이처럼 너무 밥만 먹는 것 아니냐며 깔깔거리고 웃는다. 하루에 한 끼는 국과 밥을 먹어야 하는 남편의 한식 사랑은 해외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다.


이번 여행은 우리 두 사람만을 위한 맞춤 여행이기에 음식도 우리 입맛에 맞춰서 먹기로 했다. 우리 입맛에는 당연히 한식이 최고였고 그래서 식사를 자유롭게 해 먹을 수 있는 민박과 에어 비 엔비, 아파트 호텔을 예약했다. 이 곳에는 식기와 조리대가 있고 소금과 설탕 식초 같은 기본양념이 준비된 곳도 있어서 밥을 해 먹기에 전혀 불편이 없었다,


여행 중에 삼시 세끼를 다 챙겨 먹기는 힘들다. 그런데 우리 부부는 집에서와 마찬가지로 식사시간을 정확하게 챙겼다. 매일의 식단을 따로 기록했더라면 충분히 한 권의 책으로 만들고도 남을 만큼의 다채로운 식단이었다.

호텔에서 머무는 날을 제외하고 나는 매일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여행 오기 전 집에서는 귀찮아서 하기 싫었던 부엌일들이 이 곳에서는 왜 그렇게 재미있는 건지 그 또한 별일이다.


여행중에 만들어 먹은 음식은 간단한 레시피에 비하면 맛은 그럴듯하다. 밥이 뜸이 들기 시작하면 뚜껑을 열고 그 위에 양배추와 버섯을 얹어 놓으면 적당히 익은 나물밥이 된다. 이 것을 양념장에 비벼 먹으면 훌륭한 버섯비빔밥이 완성된다. 비빔밥은 양념장 맛이다. 비빔밥의 한수는 뭐니해도 마지막 한방울 떨어뜨리는 참기름이 있어야 한다. 그것도 순 진짜 우리나라 참기름, 참기름을 어떻게 가지고 다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아이들에게 약을 먹일 때 사용하는 물약 통은 밀폐가 잘되어서 내용물이 흐르지 않아 좋다. 딸이 알려준 꿀팁이다.

표고버섯과 송이버섯의 맛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송화 버섯을 넣어 만든 송화 버섯 볶음밥을 자주 만들어 먹었다. 마무리에 참기름 대신 트러플 기름을 살짝 떨어뜨리면 현지식이 된다. 미역국은 맑고 깔끔해서 볶음밥과 함께 먹으면 환상의 궁합이었다.

마른미역은 가볍고 부피가 나가지 않아서 가지고 다니기도 편했지만 국으로 끓이기에도 쉬었다. 물에 불린 뒤 참기름에 볶다가 물만 부어서 끓이면 손쉽고도 맛있는 국이 된다.

아침에 빵을 먹다가 어느 날 미역국을 만들어 먹은 뒤부터 우린 아침에도 밥을 먹게 되었다. 밤늦게 까지 와인을 마시고 잠자리에 든 날은 아침 해장국으로는 더 없이 좋았다.


유럽의 레스토랑은 점심시간이 짧다. 오후 한 시 이후가 되면 어김없는 브레이크 타임이라서 식사는 팔지 않고 대신 간단한 간식 정도만 팔기 때문에 배가 고프지 않아도 제 시간에 밥을 먹어야만 했다, 어느 날 점심을 먹으러 레스토랑을 들어갔는데 브레이크 타임에 걸렸다, 할 수 없이 소카 한 장과 커피로 점심을 대신해야만 했다.


그다음 날부터 김밥으로 도시락을 준비했다. 도시락을 준비해서 나간 날은 여유롭게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아무 때나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청양고추를 듬뿍 넣어 무친 매콤 달콤한 오징어 자반을 속재료로 넣은 김밥은 만들기도 쉽고 먹기도 쉬운 최고의 간편식이다. 햄버거를 손에 들고 다니며 먹는 현지인들처럼 언제라도 꺼내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여행자들이 손쉽게 해먹는 라면은 부피가 크고 건강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우리 여행에서는 준비하지 않았다. 대신 쌀뜨물에 캔 김치를 넣고 끓인 김칫국이 라면보다 더 끓이기 쉽고 맛도 좋았다.

김치야 말로 누구나 좋아하는 반찬이다.

비 오는 날, 니스의 민박집에서는 김치전을 만들어서 여행 온 젊은 친구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다. 독일에서 공부하다가 잠깐 이 곳으로 여행을 온 한 여학생은 김치전을 보고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우리는 쉽게 친해졌다,


여행 중에 그곳의 음식을 사 먹어 보는 것도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하루 세끼를 모두 사 먹게 된다면 우리의 통장보다도 우리의 위장이 더 부담이 될 것 같았다. 프랑스는 아무리 허름한 레스토랑이어도 음식은 모두 맛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소고기가 일품이었다.

현지식으로 해결한 저녁 식사로는 남편은 무조건 스테이크를 주문하고 나는 그 음식점에서 추천하는 음식을 시켰다. 하루에 한 끼 외식인 만큼 우리의 저녁 만찬상은 언제나 푸짐했다.


아침밥에 이어 점심 도시락까지 준비하다 보니 쌀은 금방 떨어진다. 1킬로그램이 들어 있는 쌀 한 봉투는 1.7 유로, 커피 한 잔보다도 싼 가격이었다. 시장이나 슈퍼에서 장을 보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이다.


생선은 깔끔하게 손질해 주고 커다란 생선도 먹을 만큼 잘라서 팔기 때문에 부담이 없었다. 쌀은 알맹이가 작은 것을 구입하면 우리가 평소 먹는 식감처럼 부드러운 밥이 되었다. 어느 나라나 식재료는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기 때문에 양념만 꼼꼼히 준비한다면 하루 한끼 식사는 만들어 먹을 수 있다.

현지인들처럼 시장에서 식재료를 구입하는 일도

즐거운 경험이다.

사먹는 음식은 비싸지만 식재료값은 너무나 저렴해서 자꾸만 내가 돈을 덜 냈나 계산하게 된다.

아비농에서는 삼겹살 300그램과 맥주 두 캔, 음료수. 한 병 애플 망고 한 개와 오이 상추를 샀는데도 우리 돈 만 원이 채 들지 않았다. 이 곳에서는 언제라도 누릴 수 있는 만원의 행복이다.


“쌀이 또 떨어졌네?”

“. 벌써?”


남편은 쌀을 팔러 나가고 나는 착한 아낙네처럼 남편을 기다린다.

만원의 행복


쌀 팔러 간 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