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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Nov 23. 2024

 길랑바레라는 병을 아십니까

 복권 당첨될 확률, 강남의 아파트에 당첨될 확률보다 더 높은 확률, 인구 십만 명 중 한 명에게 있을까 말까 한 불운이 나에게 닥쳤다. 지금  나는 지독한 악몽을 꾸고 있는 게 맞다. 그렇지 않고서야...

 

4주 전,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자치회관에서  주관하는  바자회에 나는 해외여행 중에 사 모은 소품들을 내놓을 예정이었다. 자치회관에서는 내 여행 수필집 "프로방스로 쌀팔러 간다"의 사인회를 위해 부스도 마련해 주었다. 그래서 더 일찍 잠을 깬 것 같다.


내가 눈을 뜨자 남편도 잠을 깼다. 화장실에 다녀와서 보니 남편이 침대아래 웅크리고 앉아있다.


"여보 나 좀 일으켜줘 봐"


어제저녁 잠들기 전, 남편은 이상하다리에 힘이 빠진다고 했다. 일주일 전 장염으로 고생을  한 라서 그러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무튼 잠을 자고 나서도 계속  같은 증상이 있으면 병원에 가보자고 했었


무서운 직감이 후려쳤다. 나 혼자서 아무리 손을 잡아끌어도 짝을 하지 않는다. 불현듯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시아버님도 둘째 시동생도 모두 뇌경색으로 쓰러진 적이 있기 때문이다.


119에 전화를 했다.

모두들 잠든 새벽에  쏜살같이 달려온 119,

구급차에 실려가는  동안 119 대원은 남편의 의식을 체크하고 병의 중함을 알기 위해 손과 다리등을 자주 올려보라고 했다. 빠른 시간에  응급실에 환자를 인수하는 목적뿐이 아니라  환자의 질환에 맞게 대체하려는 것 같았다.


집에서 가까운 상급종합병원인 S병원을 코앞에 두고도  갈 수가 없다. 의사들의 파업으로 인해 의식이 있는 환자는 아예 접수조차 받지 않는다며 다른 종합병원으로 연락을 취한다. 다행인지  외곽에 있는 c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였다. 


남편은 의식은 있으나 하체에 힘이 빠져 전혀 일어설 수가 없었다


응급실에 도착 후 곧바로 뇌와 척추의 CT와 MRI 촬영을 했다. 뇌와 척추에는 이상증세가  없었다. 당직 의사는 뇌경색은  아니라고 했지만 다행이라고  여기기에는 남편의 증세가 점점 더 악화되고 있었다. 다리부터 시작하여 상체 쪽으로 빠르게 굳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손도 마비가 되고 목이 굳어서 침이 넘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누가 봐도 심상치 않은 질환이 분명한데도 MRI로 본 진단결과만으로 남편의 상태는 입원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휴일이라 전공의의 진찰도 받을 수가 없다.


새벽 다섯 시에 병원에 도착하여서 한 일이라곤 뇌와 척추 MRI를 찍은 것뿐이다. 그나마 영상을 자세히 해독할 수 있는 교수님이 월요일에 오시니 정확한 내용은 그때야 알 수 있다고 한다.   대학병원 응급실에  근무하는 의사가 사지가 굳어가는 환자를 집으로 보내는 경우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주일 전 남편은 고열과 함께 심한 설사를 했다. 그때 동네병원에서  항생제를 투여받았고 그 안에는 아마 지사제도 있었을 것이다. 설사는 바로 그쳤지만 그 후 사흘간 변비가 왔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병은 설사를 수반한다고 했다.


시간은  어느덧 오후 네시, 무려 열한 시간을 아무 처치도 없이 남편의 팔과 다리는 굳어가고 있었다.


병원에서 환자는 어쩔 수 없는 '을'이다. MRI촬영비와 검사비등 백사십여 만원이나 되는 거금의 돈을 납부하고도  사지가 굳은 남편은 고객명단에 오를 수 없는 환자가 되어 사설 엠브런스를 타고 다시 집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새벽에 집을 나설 때와 달리 하루사이에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있는 남편의 모습,  갑자기 수족을 못쓰는 아버지의 모습에 놀란 딸과 사위가 119에 연락하여 재차 새벽에 갔던 C대학병원으로 다시 갔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위급한 환자를 모시고 길에서 허비한 시간이 너무나 안타깝다.


아침에 남편을 진료한  의사가 아닌 새로운  당직의사를 만났다. 당직의사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병명을 간과한 것 같았다. 몹시 서두르며 신경과전문의가 있는 병원을 수색하였다. 그렇게 다시 사설 엠브런스를 타고 지금의  E대학병원  응급실로 오게 되었다. 그때가 밤 열 시였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때 바로 자신의 병원에 입원을 시키지 않았는지 그것도 궁금하다.


응급실에서 남편은 곧바로 등에서 척수액을 뽑았다. 얼마나 다급한 환자였으면 아직 환자복으로 환복 할 여유도 없이  허리에서 놔 척수액을 뽑았을까, 집에서 입고 온 츄리닝  차림의 남편은 허리의 통증을 느끼지 못하였고 그때까지 어눌하지만 대화는 가능하였다.


 뇌척수액을 빼고 난 후 여섯 시간은 부동자세로 움직이지 말고 누워있어야 된다. 자칫 움직이면 심한 두통으로 인해 환자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남편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하지만 이미 남편은 움직일 수 조차 없게 온몸이 굳어 있었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남편을 쓰러뜨린 병명이 '길랑바레 증후군'이란  알았다.


*길랑바레 증후군*

면역계가 신경의 보호막을 손상시켜 전신을 마비시키는 무서운 병. 인구 십만 명 중에 0.8 명꼴로 생긴다.

 

네이버가 알려준 무서운 내용이다


어떤 병이든 증상을 처음 느꼈을 때 빠른 치료를 하면 회복도 빠르다. 특히나 '길랑바레 증후군'은 특이한 병 이기는 하나 불치병은 아니다. 시간을 지체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으며  뒤늦게  치료하면 환자의 고통이 그만큼 배가 되는 병이다. 만약 새벽 다섯 시에 도착한 병원에서  남편을 진료한 응급실담당 여의사가 이 병의 독특한 증상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  남편은 지금처럼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를 끼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누구를 원망할 겨를도 없다

숙련되지 않은 의사를 만난 것도 그날  우리의 불행 중 하나이니까,


지금 남편은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투병 중이다. 회복기가 길지만 합병증만 없으면 다시 걸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희망은 불행을 이겨낼 수 있는 에너지다.


어제까지만 해도 잔잔한 호수였다가 지금은 파도치는 바다 한가운데 놓여있는 나의 삶,

망을 붙들고 열심히 헤엄치면 어딘가에 닿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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