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편의 보호자다
D+21
오늘은 남편이 기관지 절제술을 하는 날이다. 산소호흡기를 제거하고 자가 호흡을 할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쁜 일이지만 남편의 경우 기관지 절제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침 일찍 병원에 와서 대기 중이다 전신마취를 해야 되기 때문에 보호자 승인이 필요하다고 한다.
저렇게 지친 몸에 전신 마취라니...
오전 아홉 시, 남편은 수술실로 들어갔다. 이 시간이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에게는 피를 말리는 시간이다. 모두들 전광판을 바라보며 수술실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들을 상상하고 있다.
남편의 이름옆에 '수술 중'이라는 글이 떴다. 나는 전광판을 바라보며 무사히 수술을 마칠 수 있도록 기도를 했다. 한 시간 남짓 지났을까? 전광판에서 남편의 이름이 사라졌다. 다른 환자들은 수술을 마치면 곧바로 '회복실'에 이름이 뜨는데 남편만은 예외였다. 잠깐사이 불길한 생각과 함께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때였다. 수술실 간호원이 남편의 이름을 부르며 보호자를 찾는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중환자실에서 수술실로 온 환자는 회복실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중환자실로 내려가는 거라는 걸 그때야 알았다.
중환자실에서 아직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한 남편을 만났다.
그동안 얼굴에 반쯤이나 덮여 저 있던 산소 호흡기가 말끔히 벗겨졌다. 마른 얼굴에 광대뼈가 오롯이 드러나 보인다. 그 아래로 목에 꽂힌 관이 보였다.
남편의 목소리를 앗아간 기다란 관을 보며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이 너무나 슬펐다.
담당의사는 염려했던 이변이 생기지 않고 수술을 마쳐서 다행이라고 하였다. 긴장과 초조가 극도로 심해진 나는 쓰러질 것 같았다. 곁에 있는 아들은 오히려 나를 더 걱정한다.
'보호자'라는 말이 이 처럼 중한 무게감을 주는 말인지 몰랐다.
D+22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참 위대한 명언이다. 어제의 긴장감과 달리 오늘 바라본 남편의 모습은 편안했다.
자음 모음 판으로 티브이 오락프로그램을 말하여 알아듣는데 십 분이 걸렸다.
남편과 함께 즐겨보던 프로였는데 바보같이 못 알아들었던 거다. 중환자실에서는 의식이 있는 환자가 무료하지 않게 TV를 틀어 준다. 즐겨보는 프로그램을 물어서 당구와 골프게임이라고 했는데 집중력을 요구하는 프로는 보기가 싫었나 보다 그나저나 오락프로를 틀어달라고 할 정도면 위험한 시기는 지난 게 아닐까?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전처럼 무겁지 않았다.
어제 담당의사는 폐렴과 열이 소멸되면 입원실에서 치료를 받아도 된다고 하셨다. 중환자실에서 입원실로 간다는 건 그만큼 중한 상태를 벗어났다는 뜻도 있다. 하지만 그동안 간호사가 전담했던 일들을 입원실에서는 간병인이 해야 한다
딸아이가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지만 간병인을 구하는 일이 쉽지가 않다. 뭐든 처음 겪는 우리에겐 하나도 쉬운 일이 없다. 목소리를 잃고 눈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남편. 표정 하나로 뮐 원하는지 상태가 어떤지 나만큼 아는 사람은 없다. 간병인이 쉽게 구해지지 않으면 우선 나라도 하겠다고 했다 뭔들 못하리...
어떤 일이든 남편이 겪은 고통에 비하면 우주의 먼지밖에 되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