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집으로 돌아왔다. 119구급차를 타고 급박하게 떠난 뒤. 두 번의 가을과 두 번의 겨울을 보내고 두 번째 봄날인 오늘 퇴원을 했다.
지나간 날들이 스쳐 지나간다. 자그마치 1년 반이라는 세월이 하루도 잊히지 않고 옹이처럼
기억 속에 굳어져 있다. 힘들고 지친 날들이었다. 하지만
'모든 건 다 지나간다'
우리의 시간에도 비로소 봄빛이 물들기 시작했다.
.
퇴원하기 전, 주말에 외박신청을 하여 집에서의 적응기간을 가졌지만 다음 날이면 병원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면서 늘 안타까웠다. 이제 더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지 않아도 된다
어제 하루는 무척 분주했다. 집 안팎을 치우고 남편을 위한 반찬을 만들고 오늘 아침에는 남대문 꽃시장으로 꽃을 사러 갔다. 병을 이겨내고 돌아오는 남편에게 한아름 꽃을 안겨주고 싶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새벽시장의 생기다. 꽃들이 뿜어대는 향기와 사고파는 사람들의 실랑이가 활력이 넘친다. 멈춰져 있던 세상이 다시 움직이는 느낌이다.
노란색 프리지어와 보랏빛 튤립을 샀다. 장사가 안 돼서 싸게 드리는 거라는 상인의 투정도 버스 안에서는 전화 목소리 좀 줄여달라고 승객에게 말하는 기사님의 짜증 섞인 목소리에도 너그러워진다.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이지...
그동안 수고해 준 간호사와 치료사, 남편을 도와준 간병인을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하고 딸과 함께 병원으로 갔다.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남편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남편의 퇴원을 기뻐해주는 사람들, 늘 남편의 건강을 체크해 주던 간호사는 이런 헤어짐이 일상이었을 텐데도 무척 서운해하였다. 하긴 마지막 인사를 나누면서는 나도 마음이 뭉클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성당에 들러 감사기도를 드렸다. 때마침 마주친 신부님께서는 남편에게 안수기도를 해 주셨다. 남편의 회복을 기적이라 말하는 사람들, 간절한 나의 기도에 신이 응답하셨음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동안 내가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가족과 형제,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함께 걱정하며 위로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함께...라는 의미가 이토록 감사할 줄 몰랐다. 이제는 모두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 줄 시간이다.
맨 먼저 가장 의지가 되었던 동생에게 기쁜 소식을 알렸다. 기쁜 소식은 한순간에 퍼져 여기저기서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온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견뎌낼 수 없었던 지난 날들, 글을 통해 위로하고 함께 걱정을 해주신 브런치의 독자와 작가님들께도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다.
앞집 담장 위 산수유나무에
노란 꽃망울이 맺혀있는 걸 오늘 처음 보았다.
기쁜소식을 꽃봉투에 담아 보내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