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면 맛있어진다
세상에는 선수들이 많다. 얼마 전 엄마 아빠와 조립식 주택을 짓는 대표를 만났다. 아빠가 대표와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가장자리에 앉아있었다. 대표는 과연 대표였다. 전문가였다. 아빠도 선수였다. 빠삭했다. 선수들의 대화. 나는 옆에 앉아 나도 전문가이고 싶다고 생각했다. 선수가 되고 싶다고. 삼십 년 넘게 사는 동안 나는 무엇의 선수가 되었나.
우리 카페 앞 사장님은 빈티지의 선수다. 지난달부터 다니기 시작한 필라테스의 원장님은 몸의 선수다. 그녀들은 어떤 물건이나 몸을 보면 딱 안다. 사이즈 나온다. 그녀들은 자기 바닥을 갖고 있다. 나는 문창과를 나왔고 카페를 하지만 글쎄 글의 선수라거나 커피의 선수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침에 필라테스를 다녀와서 일기를 쓰다가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척추 하나하나 분절하듯이. 척추 사이사이를 늘려주면서. 등을 말면서 올라가거나 굴리며 내려올 때 자주 하는 말이다. 나는 몸을 쓰는 데 하수다. 하지만 하루를 분절하는 데는, 하루 사이사이를 누르고 늘리는 데는 선수다. 나는 일기의 선수다. 나는 하루를 분절할 수 있다. 촘촘하게, 하염없이. 일기를 웬종일 쓰다가 지칠 때도 있다. 질질 끈 일기는 봉지를 열어둔 과자처럼 눅눅해진다는 걸 알 정도로.
대학 때 한 선배는 평생 일기만 써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등단을 하고 싶었다. 본격적이고 진지한 글을 쓰고 싶었다. 일기로 충분하다니. 시도 소설도 쓰지 않고 겨우겨우 일기를 쓰는 요즘 그 말이 종종 떠오른다. 일기를 시나 소설보다 못하게 느끼지 않는다. 다 일기에서 태어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내게 있어 일기를 쓴다는 것은 삶의 텍스처를 만지는 일이다. 화면처럼 훑고 마는 게 아니라 한 올 한 올 질감을 느끼는 것. 텍스처. 이 한 단어에 사물이 오븐 속 빵처럼 부푼다. 영화에서 한 사물을 비추면 그 사물이 매력적이고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듯이. 무엇보다 일기를 쓰면 사는 기분이 난다. 살 때는 살 뿐. 잘 모른다. 휙 지나간다. 쓰며 알게 된다. 하루를 채에 치면서.
나는 일기의 삼삼함이 좋다. 대개 그저 그런 날들을 다루는 것이. 지금 베이글을 먹고 있는데 일상은 이 베이글 같다. 심심하지만 씹다 보면 은은한 단맛이 올라온다. 꼭꼭 안 씹으면 별맛 없다는 것도 그렇고. 혹 하루가 싱겁더라도 내게는 비장의 크림치즈가 있다. 일기. 일상에 글맛 바르기. 쓰면 맛있어진다.
오늘의 한 템포 뒤에서, 어제를 아코디언처럼 연주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