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치락뒤치락의 역사

터닝포인트 중독자

by 이아침

올해 쓴 일기를 죽 읽었다. 그야말로 엎치락뒤치락의 역사다.


나는 터닝포인트 중독자다. 늘 터닝포인트를 기다린다. 얼룩덜룩하고 별 볼 일 없는 과거를 뒤로하고 삶의 새 국면으로 들어서기를, 진짜 인생이 시작되기를. 그래서 새해를, 1일을, 월요일을, 아침을 사랑한다. 신년의 기운이 가시고 며칠 못가 시들시들하다 퍼지면 절기를 찾는다. 절기도 파티션이다. 눈을 크게 뜨고 자 오늘부터, 하고 선을 그을 곳을 노린다.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에 동그라미를 친다. 경칩에 정신 차리기. 그럴싸하다. 영차 기세 좋게 시작해서 완벽한 하루 이틀을 보내고 나면 뜨거운 기분도 식는다. 오래 앉아있기 힘든 탕은 뜨거운 탕도 차가운 탕도 아닌 미지근한 탕이다.


나는 완벽 강박이 있다. 언제나 제대로 잘 하고 싶어 한다. 그놈의 제대로 잘. 우리가 자주 하는 생각이나 행동은 뇌가 반복되는 경험을 강화하는 성질 때문에 그 생각이나 행동에 더 쉽게 빠지게 된다고 한다. 내 뇌에는 '내일부터 다시' 고속도로가 나있다. 좀 어수선하거나 붕 뜬 시간이 있으면 떨떠름해진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뛰고 온갖 부지런을 떨고 늦은 오후 즈음이면 바람 빠진 풍선처럼 된다.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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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짓을 아주 오래 해왔기 때문에 이 길은 광이 나게 닦여있다. 초고속이다. 내가 흐음, 하는 순간 사이렌처럼 나를 유혹한다. 마음에 안 들지? 내일부터 다시 해! 완벽한 날은 몰라도 완벽한 나날은 불가능하다. 김연아도 못 한다. 그런 식으론 누구도 무엇도 지속할 수 없다. 알고 있으면서 나는 전력질주하거나 멈춘다. 걷지를 못한다.

나는 일기마저도 잘 쓰고 싶어 한다. 알맹이가 있는 글을 쓰고 싶고, 빠짐없이 오해 없게 쓰고 싶어 한다. 나는 생각으로 보글보글 끓고 있다. 쓸 게 산더미다. 때로 산사태에 파묻힌다. 내 펜은 아주 무거워진다. 웬만해서 들 수 없다. 요즘은 사부작사부작하는 연습을 하려고 한다. 일기를 쓰면서 하루라는 작은 아령을 든다. 지치기 전에 멈춘다.


사는 게 쉽고 재밌다고 쓰고 얼마 못가 멜랑콜리가 슬금슬금 올라온다. 나는 숨죽이고 내 안에서 그게 고개를 드는지 온 감각을 집중한다. 어제도 야간 경비원처럼 손전등을 비추며 내 안을 훑었다. 어제는 아무것도 없었다. 유감스럽게도 오늘 저녁에는 뭔가 있다. 하지만 겨뤄볼 만하다. 요 며칠 흡족한 하루하루를 보낸 덕에 당장에 이 흐름을 버리진 못한다.


어쩌면 나는 만사 영점을 너무 높게 잡는지도 모른다. 인생은 기분 관리라는데 기분의 영점도 높다. 기분 좋음 상태가 0이면 기분 관리는 어려운 일이 된다. 기분 맷집이 약할 수밖에 없다. 나쁘지 않음이 0이면 한결 쉽다. 어수선한 상황이나 심드렁한 상태, 미적지근한 변화를 마이너스라고 보면 인생은 대체로 마이너스 영역에서 머물 거다.


남들의 하루도 꼬인다. 아침에 앞머리를 자르러 갔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선생님은 나와 다른 손님이 기다리고 있자 부랴부랴 문을 연다. 문에는 한 손님이 예약 시간을 바꿀 수 있는지 묻는 쪽지가 붙어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다음 타임 손님이 착오로 일찍 왔다. 미용사 하나에 손님 셋. 선생님은 숨 한번 못 돌리고 불만 켜고 정적 속에서 내 머리를 자른다. 누구의 하루나 뒤죽박죽이 될 수 있다. 하루의, 삶의 속성이다.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오늘은 다만 내일을 기다리는 날이다. 오늘은 어제의 내일이며 내일은 또 내일의 오늘 일뿐이다. 단 두 문장에 나의 숱한 결심과 포기가, 그게 뻘짓임이 압축되어 있다. 미래는 허상이다. 내일은 오지 않는다. 오늘 그리고 오늘뿐. 미지근한 탕 안에서 꿈틀대는 멜랑콜리를 주시하며 쓰는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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