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빛이 정말 가요?
옆 가게 이모가 싸주신 김밥은 완벽했다. 종종 싫어하는 야채를 빼고 먹는데 이 김밥에는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김밥! 바빠서 하나씩 빼먹으면서 일했다. 설거지하는데 동생이 하나 입에 넣어 줬다. 완벽한 밸런스! 밸런스란 이런 것이군.
며칠 전 일본에 워킹홀리데이를 갔던 이모 아들이 돌아왔다. 이모의 김밥은 언제나 꽤 맛있지만 돌아온 아들을 위한 김밥은 정말 맛있었다. 사랑을 담아서 맛있는 걸까? 사랑을 담는다는 건 두루뭉술한 소리 같지만 이모는 이렇게 말했다. 달걀도 파를 넣어서 들기름으로 부쳤다고. 아마 다른 재료들도 공수해온 좋은 것으로 여러 단계를 거쳐 조리했을 것이다. 평소보다 품을 들여서 말이다. 그러니까 사랑을 담는다는 건 식용유 뒤에서 들기름을 꺼내고 달걀을 부치기 전에 파를 다져 넣는 것 같은 구체적인 일인 것이다. 사랑은 맛났다.
제임스 설터의 <가벼운 나날>을 다 읽었다. 사는 게 무서워지는 소설이다. 오늘처럼 평화로운 날엔 더욱.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거울 속 나는 아직 젊다. 가족들과 크고 좋은 차를 타고 대학병원에 간다. 채혈실의 한 젊은 여자는 한눈에 봐도 암 환자다. 나는 그녀가 일어난 자리에 앉아서 피를 뽑는다. 나의 혹은 작고 심각하지 않다.
순식간에 채혈을 마치고 가족들과 한정식을 먹으러 간다. 오리훈제와 보리굴비, 단호박 죽과 찰밥, 나물들. 담백하고 맛있는 음식들. 방동 저수지를 지날 때면 엄마 아빠는 지존파 이야기를 한다. 어떤 이야기들은 반복되고 다시 듣고 떠든다. 나는 저수지라는 단어가 별로 좋지 않다고 말한다. 엄마가 자기도 싫다고 말한다. 두 번 가지는 않을 카페에서 그저 그런 커피를 마시며 떠든다. 아빠 어제오늘 왜 이렇게 머리가 다코야키 같지? 하면서.
진료는 금방 끝난다. 젊은 여자 교수는 차분하고 친절하다. 집에 가면 우리의 사랑스러운 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다들 짧은 낮잠을 자거나 쉰다. 나가서 저녁을 먹는다. 마트에서 장을 본다. 아직 다들 젊고 모여 살고 돈돈 하지만 먹고 마시고 장 보는 돈에 구애받지 않는다. 개는 신나게 까불다 내 곁에서 곤히 잔다. 삶의 정오다. 빛이 길게 드러누운. 빛 가장자리에 있을지언정 빛 밖에 있는 사람은 없다. 소설이 시리다. 이 빛이 정말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