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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자동문

나의 아저씨 친구

by 이아침

한 아저씨 손님이 있다. 몇 년 전 카페에 두어 번 오셨던 분. 올가을 오랜만에 뵀다. 아저씨들 특유의 무신경하고 거친 면이 없었다. 이를 쑤시며 말한다든지 문을 쾅 닫는다든지 하는. 행동도 말투도 사분사분했다. 한가한 시간이라서 둘뿐이었다. 카페의 책을 둘러보시더니 책을 좋아하냐고 물어보셨다. 책 읽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아름답다고 했다. 나는 손님과의 스몰 톡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데 점잖고 다정한 분이라 실눈을 뜨지 않아도 됐다.

알고 보니 손님은 작가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나도 문예창작학과를 나왔다고 말했다. 내가 문창과를 나와서 그런지 문창과라고 하면 썩 매력적이지 않다. 책을 읽는다고 하면 매력적이었다가 문창과를 나왔다고 하면 당연한 일 같고 더 잘 알아야 할 것 같다. 손님은 책을 읽는 것도 신기했는데 글을 쓰냐며 놀라워했다. 나는 그게 놀라운 일인가 싶긴 했다. 내가 쓰는 인간에 익숙해서 그런가.

손님은 빨간 차에서 책을 두 권 가져다주셨다. 하나는 희곡, 하나는 에세이였다. 나도 포스터를 본 적 있는 꽤 유명한 연극을 쓰신 분이었다. 스물 언저리에 버스를 기다리면서 무심코 봤던 포스터. 10년 뒤 내가 카페를 할 줄도 거기서 그 극작가를 만날 줄도 모른 채 말이다. 시간이란. 우연이란.

내가 쓰는 사람이라는 걸 안 뒤로 작가님은 나를 사장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작가님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일기 말고는 쓰는 게 없다고 해도 그랬다. 내게 호의와 호기심을 가져 주셨다. 그다음에 작가님이 오셨을 때는 함께 앉아서 수다를 떨었다. 카페쟁이 9년, 손님과 한자리에 앉아서 수다를 떤 건 처음이다. 심지어 카페 손님에게 이게 제 최대치인지 모르겠어요 같은 소리도 했다. 작가님도 자신의 콤플렉스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다.

우리는 서로를 열어 보여 주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에게 몽땅 털어놓을 때처럼. 못해도 20살 넘게 차이가 날 테고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도 못한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꼭 많이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닌 듯하다. 되려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나의 이미지가 굳어 있으면 속 이야기를 하기 어렵다. 우리는 서로 잘 모르고 그래서 자유롭다. 아이러니하게 진짜 내가 될 수 있다. 물론 앞서 중요한 건 마음이 열리는가다. 이건 자동문 앞에 서는 것과 비슷하다. 서 봐야 안다. 열리거나 열리지 않는다. 오래 간절하게 서 있는다고 열리지 않는다.

작가님의 글은 따듯했다. 나는 따듯하기만 한 글, 필터를 씌운 듯 세상을 뽀샤시하게 보정한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 필명이 윤슬일 거 같은 글. 작가님의 글은 무릎 담요처럼 따듯했다. 착착 접어 가방에 넣었다가 추우면 꺼낼 수 있는 담요. 열풍기가 아니라. 따듯한 이야기들 속에서 의지가 보였다. 세상이 마냥 따듯하고 부드러운 곳이 아니라는 걸 알아서 부러 따듯함을 발견하고 바라보려는 의지가. 도끼 같은 글은 아니었지만 무겁지 않아서 들고 다니기 좋고 종종 꺼내서 무릎을 덮었다. 그럼 한결 따듯해졌다.

작가님은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고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거듭 말씀하셨다. 내 글을 읽기도 전에 1호 팬을 하겠다고 했다. 글이 궁금하다며 포스트잇에 메일 주소를 적어 주고 가셨다. 나는 11월의 마지막 날에 예전에 쓴 동화와 소설, 에세이 몇 편을 보내드렸다.

열흘 뒤 작가님이 오셨다. 마침 마음을 다잡은 날이라 내 기운도 좋았다. 작가님은 교수라서 시험과 보충 수업으로 바빴다고 했다. 오고 싶었다고, 어서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씀하실 때 가쁜 마음이 느껴졌다. 작가님은 내 글이 점묘화 같다고 했다. 이 개성을 절대 버리지 말라고 하셨다. 내가 특별히 개성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좀 의외였지만 기분은 좋았다. 느끼고 생각하고 쓰는 일련의 방식은 목소리 같다. 내가 선택한 게 아니다. 아, 하고 소리를 내보니 이런 목소리였을 뿐.

글의 수준을 떠나 내 속을 뒤집어 까 보여 준 글이라 부끄럽기도 했는데 너무 좋게 말씀해 주셔서 울컥할 정도로 마음이 놓였다. 인정해 준다고 쓰고 안 해준다고 안 쓰는 것도 유치하고 사실 안 쓰고 살 순 없다고 생각하지만서도 타인의 인정이 필요했음을 실감했다. 요즘 내가 너무 무능력하게 느껴졌기에. 작가님은 빈말이 아니라면서 자기는 평론도 하기 때문에 그냥 그랬으면 굳이 이렇게까지 말하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극찬에는 나에 대한 호감도 작용했으리라 생각하지만 진심으로 좋게 읽으신 것도 느껴졌다. 몇 번을 읽었다고 하셔서 정말 감사하면서도 그 정도는 아닌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예전부터 과대평가되는 걸 경계했다. 누가 우리집이 좋다고 하면 대출이 껴있다고 말하고 누가 문장이 좋다고 하면 과잉일 때가 많다고 말했다. 그런데 스스로 과소평가할 바에는 차라리 과대평가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정확한 나, 절댓값 따위 없다면.

작가님은 함께 쓰는 상상도 했다고 하셨다. 내킬 때, 부담 없이, 재밌게. 나는 교환 일기가 떠올랐다. 우리가 한바닥에 글을 쓴다면 지면 나누기가 아니라 시너지가 있으면 좋겠다고. 30대와 50대가 비슷하다는 생각도 처음 했다. 작가님이 연거푸 공감이 간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30대와 50대는 꽤 닮았다. 젊음 쪽에서는 꼬리에, 늙음 쪽에서는 머리에 있다. 막 젊진 않지만 살 날은 많이 남았다.

나는 작가님께 이 지구상에서 절 제일 잘 아는 어른이세요 하고 말했다. 몇 달 전만 해도 모르고 살다가 신기한 일이다. 나를 평생 봐온 엄마 아빠는 나를 잘 알지만 부모는 내게도 있는 훌륭한 점에 대해선 어둡다. 이미 서로의 흠에 대해 너무 많이 알기에 서로를 남처럼 깨끗한 눈으로 보기 쉽지 않다. 남들 보는 만큼도 봐주기 어렵다. 속내를 보여주기도 어렵고.

작가님은 내게 어떻게 이렇게 솔직하게 썼냐고 물었다. 내가 특별히 솔직하게 신랄하게 쓴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뽀샤시 필터를 씌우진 않지만. 샅샅이 쓰려고 할 뿐. 작가님은 서른하나에 교수가 됐고 언제나 독자가 관객이 있는 글을 썼다고 한다. 아마 내가 가감 없이 쓸 수 있었던 건 내가 아무도 아니기 때문일 거다. 나는 어딘가에 있는 한 인간으로 썼다. 나는 자유롭다. 내겐 처신의 짐이 없다.

카페 인스타 계정에 글을 쓸 때는 나도 처신의 짐을 진다. 카페다움. 사장다움. 거짓을 쓰지는 않지만 많은 것들을 생략한다. 대단한 팔로워가 있는 게 아닌데도 그렇다. 이미 나를 아는 사람들이 있고 카페 이름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는 환해서 서늘하고 비린 마음의 무대는 못 된다. 내가 닉네임을 원한 것도 이 문제와 닿아있다. 작가님에게 이번 기회에 독자나 관객을 염두에 두지 않는 글을 써보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럼 작가님은 둥근 안경을 벗고 눈을 번뜩이며 도끼를 꺼낼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벼른 도끼를.

우리는 크리스마스가 있는 주 월요일에 브런치를 먹기로 했다. 저번에 언제 한번 밖에서 편하게 양껏 이야기 나누고 싶다고 하셨을 때는 좀 조심스러웠다. 어떤 관계가 보송보송하고 충분히 좋을 때 괜히 관계를 망칠까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손님이 계속 와서 이야기를 못다한 느낌이기도 했고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칭찬을 더 듣고 싶은 걸까? 내 글이 너무 좋다고 눈을 빛내며 말해주는 이의 이야기를 말이다. 그때는 작가님의 이야기도 많이 듣고 싶다. 나는 작가님께 오늘을, 12월 10일을 기억할 거라고 말했다. 그럴 것이다. 한 해의 막바지에 그 해 가장 특별한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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