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아름다운 그대, 도리언 그레이에게

첫번째.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by 오스카 와일드

by 오롯하게

아름다운 그대 도리언 그레이. 나는 당신이 상상하지도 못할 세기에 살고있는 한 사람이에요. 아, 당신이 상상하지도 못할거라 한 말에 당신을 무시하려던 의도는 없어요. 단지 내가 살고있는 세상 이야기를 들으면 당신이 믿지 못할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작고 판판한 유리속으로 세상의 모든 일들을 찾아낼 수 있죠. 물건도 살 수 있어요. 오늘 오후에 주문을 하면 내일 아침 당신의 집 앞으로 당신이 원하는 물건이 와있다면 믿겠어요? 내가 살고있는 이 세상을 당신도 함께 살아간다면 아마 당신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 만큼 유명해졌을거에요. 물론 당신이 살아갔던 세상 속에서도 당신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겠지만요. 그 손바닥만한 작은 유리속에 당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올린다면 정말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알 수 있었을거에요. 아름다운 여성들이 수 도 없이 당신에게 말을 걸어오겠죠. 그리고 유명한 스타가 되어서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도리언. 내가 살고 있는 세상속에서도 ‘미’는 큰 영향을 끼치지만 여전히 그게 좋지만은 않아요. 누군가는 시기를 하고 음해를 하고 또 그래서 아름다운 사람들이 목숨을 잃기도하죠. 이렇게 말하니 당신이 사라지고 한참이 지난 시대에 살고있는 지금 이 세상도 당신이 살았던 세상과 별반 다를게 없군요. 안타깝네요. 백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도 인간은 비슷하다는게. 게다가 올 해 초에는 아시아의 한 나라에서 전염병이 퍼져 온 세계가 카오스에요. 공기와 침으로 감염되는 전염병이라 모든 사람들이 입과 코를 막는 ‘마스크’를 써야만 밖을 나갈 수 있죠. 친구들과의 저녁식사, 당신이 즐겨가던 파티 이런것들은 꿈도 못 꿀 뿐더러 학생들은 집에서 가르침을 받고 일을 하는 사람들도 집에서 일을 해야만하죠. 숨을 쉬기 힘들어도 어쩔 수 없어요. 숨을 쉬기 힘들다고 마스크를 벗어버리면 영영 숨을 거두게 될 지도 모르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모두가 공포에 떨고있죠. 물론 아름답고 멋진 일들도 종종 일어나긴하지만, 그것들로 눈을 돌리기에는 어둠이 너무나 짙게 깔려있네요. 이렇게 말하면 내가 살고있는 세상이 조금은 그려질까요?


도리언. 나는 당신이 보고싶어요. 딱 한번쯤 당신을 볼 수 있다면 좋겠어요. 도대체 당신은 어떤 모습이길래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당신을 만지지못해 안달이었을까요.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많은 밤, 당신을 떠올리며 잠 못이루게 한건가요. 평생을 그림만 그려왔던 바질에게 그렇게 큰 영감을 준건가요. 나는 당신의 모습이 궁금하기만해요. 더군다나 당신은 죽음을 맞는 그 순간까지 영영 늙지 않았잖아요. 당신의 초상화가 당신을 대신해서 늙어줬으니까요. 대신 늙어줬다 뿐만인가요. 당신이 품고있는 악한 마음들, 어지럽고 더러운 생각들. 그 모든걸 그 초상화가 다 머금어줬죠.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신기하기만해요. 하지만 도리언. 만약 바질이 그려준 당신의 초상화가 당신을 대신하여 그 겉모습의 변화를 겪어주고 있다는 것을 당신의 진정한 친구였던 바질에게 말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다면 아마도 당신은 그렇게 추악해지지 않았을 거에요. 시빌 베인을 잃고나서는 그저 사랑을 잃은 평범함 남자들처럼 눈물을 흘렸을테고, 바질을 죽일 필요도 없었겠죠. 피부가 조금 검어지고 주름이 생겼을지언정 사람들은 그 모습까지도 아름답다 말해줬을거에요. 이제는 영영 알 수 없겠죠.


하지만 당신을 대신해 변해가는 당신의 초상화를 보면서요 도리언. 당신은 느꼈을거에요. 단순하게 당신의 외면만 늙고 보잘것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외면은 결국 당신이 만들어가는 것이었음을 말이에요. 당신의 생각과 당신이 품고다니는 그 마음들이 모조리 외면으로 드러난다는걸. 당신이 죽기 직전에 깨닳았겠죠. 아쉽지만. 아마 당신이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바질에게 털어놓았다면 아마 당신은 시빌베인을 잃은 사실을 되돌릴 수는 없었겠지만, 또 다른 여인과 사랑에 빠져 아름답게 살아갔을지도 몰라요. 날이 좋은 날 바질과 까페에 앉아 커피를 마셨겠죠. 그리고 당신은 당신이 죽기 전에 본 당신의 초상화 속 추악함보다 훨씬 아름답게 늙어갔을거구요. 확신할 순 없지만 당신이 선택했던 거짓말과 살인까지 저질렀던 추악한 삶보다는 나았을거에요. 적어도. 결국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에요.


도리언. 사람들은 왜 지나고서야 지나간 것에 대해 사무치도록 깨닫는 걸까요. 그냥 어떤 일이 발생하고 그 직후에 바로 그것의 소중함이나 중요성을 알게되면 참 좋을텐데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생각했어요. 사는건 사무치게 슬프다고. 인간에게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은 거의 지나고 나서야 아름답고 애틋하고 그럴듯해보이거든요. 그러니 도리언. 당신에게도 언젠가 다음이 있을테니 그 때는 그림속의 당신이 당신을 대신하도록 두지 말아요. 그냥 한번 아파보고 울어도보고 슬퍼하고 그러고나면 그것들이 아름다워진채로 당신의 기억속에 남아있을거에요. 그리고 그 아름다움들을 돌아보면서 그렇게 삶을 살아가겠죠. 그렇게 삶이 흘러가도록 둬보는것도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 살다보니 그런 것 같더라구요. 당신을 한번쯤은 보고싶어 펜을 잡은 편지가 너무 길어졌네요. 이만 줄여야겠어요. 그럼 저는 저의 삶을 흘려보내러 이만 가볼게요. 당신의 다음생도 꼭 흘러갈 수 있길 바라며, 2020년 어느 추운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