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달과 6펜스 by 서머싯 몸
스트릭랜드. 나는 궁금해요. 왜 유명하고 추앙받는 예술가들은 모조리 그들이 숨을 거두고 한참 지나야 그 가치가 빛을 발하는 걸까요? 혹은 그들이 숨을 쉴 때 왜 그들은 당장이라도 숨을 끊고 싶을 정도의 가난 혹은 우울에 휩싸여있어야 했을까요. 생전에는 몇 안 되는 사람들에게만 평가를 받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흐, 예술로 승화되긴 했으나 그에게는 너무나 잔혹하고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을 가족사를 가진 뭉크. 당신의 삶은 마치 폴 고갱의 삶을 엿보는 듯했어요. 힘든 삶을 살아갔더군요 당신. 현실과 이상에 치이면서 그렇게요.
누군가는 당신을 보면 책임감이 없다며 혀를 찰지 몰라요. 저도 처음 당신을 읽었을 때는 그런 생각을 했으니까요. 당신만 바라보고 있는 두 명의 자식과 아내를 두고 당신은 떠났죠.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오직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그렇죠? 차라리 당신이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세상에 태어났다면 훨씬 좋을 뻔했어요. 제가 살고 있는 세상 속 사람들은 점점 더 스스로를 위해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결혼이라는 것도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도 모두 선택이 되어가고 있죠. 이혼도 훨씬 쉬워졌어요. 어차피 한 번뿐인 세상이고, 그렇다면 본인을 위해서만 사는 게 후회 없는 삶일지 모르겠다는 생각 때문일 거예요. 적어도 저는 그래요. 들어보니 어때요 지금 이 세상에서 다시 한번 살아보고 싶어 졌나요? 그렇다고 해서 사는 게 예전 당신이 살던 때보다 쉬워졌다고 말할 수는 없겠네요. 각자가 살아남기 위해서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어쩌면 당신이 살았던 그 세상과 비슷하게 사람들은 각자가 하고 싶은 것들을 뒤로하고 현실을 살아가죠. 그리고 그 현실이 그들의 인생이 되고요. 말이 많이 샜네요.
붉은 수염을 가진 스트릭랜드. 그 누가 당신에게 뭐라고 할 수 있겠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사람들은 누구나 당신같이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저만해도 그러니까요. 그런데 하고 싶은 일들을 다 하면서 살아가기에 세상은 너무 빠르고 바쁘게 움직이죠. 잠시라도 한 눈을 팔거나 숨을 돌리면 내가 걷던 세상이 저만치 앞서 뛰어가 있기도 해요. 그러니 정작 먹고살기 위해서는 꿈을 이루기 위한 길보다 잘 곳을 찾고 먹을 것을 사기 위한 길을 걸어가야 해요. 현실에 쫓기며 길을 걷다 보면 그 길이 내가 걷고 싶었던 길이 아님을 깨닫게 되고 길을 잃은 건 아닌지 하고 뒤돌아봐도 이미 꿈을 이루기 위한 길은 저 멀리 점처럼 보이죠. 그런데 스트릭랜드. 아마 당신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갈래 길은 늘 곁에 있는 걸 지도 몰라요. 단지 현실을 걷고 있는 발걸음을 그곳으로 옮기기 두렵고 또 현실을 뒤로하기 벅찬 거죠. 당신은 남들의 시선과 미래에 대한 현실적인 걱정들을 모두 뒤로하고 꿈을 향한 길에 발을 디딘 거고요. 멋져요 스트릭랜드. 그리고 그 용기와 대담함이 조금은 부럽기도 하네요. 물론 당신이 뒤로한 당신의 아내와 자식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저도 이기적인 한 인간일 뿐이니까요. 내가 이루지 못한 걸 이룬 이들을 동경하며 살아가죠. 동경할 이들이 있다는 건 제가 살아가는 데에 큰 원동력이기도 하니까요.
저도 꿈이 있어요. 언젠가는 제가 쓴 글들이 다른 사람들을 위로했으면 해요, 제 글이 그들 삶의 원동력이 되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쥐톨만 한 힘이라도 되어주길. 무너질 듯 힘든 어느 날에 일으켜 세워주는 손 같은 존재이길, 하고 바라죠. 그게 제 꿈이에요. 지금의 저처럼 같은 꿈을 사는 사람이 저를 보면서 ‘아 나도 할 수 있겠구나’했으면 해요. 아직까지는 이 꿈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언젠가는 꼭 이루고 싶네요. 스트릭랜드 당신처럼요.
붉은 수염의 큰 덩치 스트릭랜드. 당신은 비록 거친 움막 속에서 나병에 걸려 생을 마감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당신이 하고 싶던걸 이루고 눈을 감았다고 생각해요. 숨을 거두기 전 당신이 살던 그곳에 마지막 당신의 안에 있는 그 모든 예술과 삶과 스트릭랜드 자체를 그려놓았으니까요. 그리고는 당신이 살던 그곳을 마지막 아내 아타에게 모조리 불태워달라고 했겠죠. 그 모든 게 사라질 때까지 곁을 지키고 있어 달라고 하기도 했고요. 원하던 전부를 이뤘으니 말이에요. 아- 얼마나 멋진 삶의 끝인가요. 당신만큼은 아니더라도 저도 이 세상에 제 글 하나쯤은 남겨놓고 이 세상을 떠나고 싶어요. 한번 사는 세상인데 그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렇지 않나요? 당신처럼은 아니더라도 저도 남들 눈 의식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살도록 할게요.
아- 안쓰럽기도 했지만 찬란했던 스트릭랜드. 당신의 삶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현실에 부딪혀 꿈을 그저 꿈으로 남겨두고 싶은 순간이 올 때마다 당신을 떠올리게 될 것 같아요. 오늘도 저는 한 발짝, 꿈으로 가는 길로 발을 디뎠어요. 그 길에 스트릭랜드 당신이 함께해줘서 고맙고 그러네요. 그럼 이만 줄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