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슬픈 방화수, 몬태그

세 번째. 화씨 451 by 레이 브래드버리

by 오롯하게

몬태그. 당신의 이야기 잘 들었어요. 당신이 사는 세상은 내가 직접 겪어보지 않았지만, 정말이지 끔찍하고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절대로 겪고 싶지 않은 세상이었어요. 눈물이 나더군요. 책을 읽는 것이 불법이 되는 세상이라니. 책을 태우는 방화수라는 직업이 생기다니. 나로서는 삶을 포기할 정도의 큰 파장이었을 거예요. 상상만 해도 아찔해요. 책을 읽는 건 나의 퀘렌시아거든요. 그래서 나는 당신이 너무나도 안타까웠어요. 당신도 책을 사랑한다는 걸, 책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너무 필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잖아요. 하지만 태워야만 하는 당신의 삶이 슬펐어요. 아참, 당신 옆집에 살던 클라리세도 마찬가지였죠. 또 클라리세를 보면서 속이 상했지만 한편으로는 한 줄기 빛 같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아- 책을 태워야만 하는 당신은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었나요. 아니, 어쩌다 방화수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건가요. 당신도 책이 좋아서, 책을 읽는 것이 불법이 되어버린 세상 속에서도 한 권 두 권 책을 품 안에 숨겨 집으로 돌아왔잖아요. 얼마나, 얼마나 읽고 싶었을까요. 당신의 세상을 살아보진 못했지만 상상만으로도 당신이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을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아니, 아닐까요. 어쩌면 하나도 알지 못할지도 모르죠.


몬태그. 무려 60년이나 전에 살던 당신의 세상이 지금 2021년과 완벽히 똑같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비슷해요. 제가 지금 사는 세상 속 이야기들을 들으면 어쩌면 당신은 조금 더 슬퍼할지도 모르겠네요. 방화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거실 사방에 붙어있는 티비들과 대화를 하는 당신의 아내 밀드레드와 같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그리고 그보다 더한 일들도 많이 생겨났죠. 제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세상은 정말 놀라우면서도 무서워요. 텔레비전으로는 볼 수 없는 것들이 없을 정도고, 컴퓨터를 통해 전해지는 셀 수도 없는 정보와 이야기와 왜곡된 사실, 누군가를 향한 모함과 진실들이 넘쳐나고 있죠. 그리고 모두가 하나씩은 꼭 가지고 다니는 휴대폰은 스마트폰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스마트폰으로도 못할 게 없어요. 너무나 많은 것들을 한 손 안에서 해결하고 알아보고 즐길 수 있다 보니 사람들은 그 네모난 것 안에 빠져 살죠. 저도 마찬가지예요. 얼마 전 문득. 그런 저를 발견하고 이러다가는 정말 그 작은 네모난 세상에 내 삶을 낭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당신의 아내 밀드레드처럼요. 방화수는 없지만 책 보다 네모난 세상에 있는 재미있고 혹은 지나치게 자극적인 것들에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죠. 물론 좋은 점도 있어요. 한 손 안에서 많은 일들을 해결하는 것이 가능해지다 보니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죠. 간편하고요. 하지만 그 시간을 온전히 효율적으로 보내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아마도요. 그리고 그보다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고 울고 웃고, 그런 시간들을 더 원해요. 그런 게 진짜 삶이니까요.


나도 알아요. 책은 결코 없어져서는 안 된다는 걸요. 실제로 지금 2021년에도 많은 출판업과 인쇄업자들이 점점 더 힘든 시간을 보내고는 있지만 그건 단지 책을 e-book 그러니까 전자책의 형태로 변형해서이기도 하죠.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종이로 읽는 책이 좋아요. 훨씬 더 책을 잘 느낄 수 있거든요. 스마트폰 속 메신저로 친구와 나누는 채팅보다, 마주하고 깔깔대며 웃는 대화가 그 시간을 더 잘 채워줄 수 있듯 말이에요.

어쩌면 당신의 세상 속에서 책을 읽는 것을 불법으로 만들어버리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책이 우리에게 주는 것들이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 아닐까요? 책을 읽고 나면 우리는 세상을 더 다양한 시각으로 보고, 생각하고 또 변화시킬 수 있죠. 지금 내가 몬태그 당신의 세상을 알게 된 것처럼 내가 직접 살아보지 못한 세상을 조금이나마 겪어볼 수 있고 지금의 세상과 비교해보며 생각할 수 있겠죠. 무엇이 잘 되어가고 있고 무엇이 잘못되어가고 있는지. 아마 당신의 세상 속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의 시각과 생각들이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래서는 안된다는 걸 나도, 당신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늘 일직선으로 뻗어나갈 수는 없지만 적어도 뒷걸음질쳐선 안된다는 걸요. 나도 당신도, 우리들이 각자 살아가고 있는 세상도.


네모나고 작은 세상 속에 점점 갇혀가는 나를 꺼내려고 해요. 지금 온 세상을 뒤덮고 있는 전염병 때문에 예전처럼 많은 사람들을 만나 얼굴을 맞대고 삶을 나누기는 조금 어려워졌지만, 책을 통해 당신을 알게 되고, 당신의 세상을 엿볼 수 있었듯 앞으로도 다양한 책들을 통해서 내가 살아보지 못할 세상들 속에 머물다 나오는 시간을 늘리려고요. 그러다 보면 내가 사는 세상을 더 다양한 색으로 칠해나갈 수 있겠죠. 당신이 미처 완성하지 못한 세상을 제가 예쁘게 색칠해볼게요. 다채로운 삶을 살아보도록 할게요. 몬태그. 당신이 그 시작이 된 것 같아 고마워요. 꼭 그렇게, 다채롭게 살고 싶어요. 슬픈 방화수 몬태그, 당신은 이제 없지만 어딘가 당신이 존재하는 그곳에서는 당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그런 세상 속이길 바랄게요. 당신도 나도,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