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나요.
나는 잘 지내요.
잘 지낸다고 말하는게 맞겠죠? 어느 정도는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다고 할게요.
뭐라고 불러야할지 모르겠네요. 나에게 이미 당신은 이름을 잃었으니, 그저 잘 지내냐는 말로 시작했어요.
당신은 잘 지내고 있나요.
당신과 함께한 시간들은 짧기도 하고 길기도 했어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 많이도 울고, 웃었네요. 시간을 돌이킬 수는 없지만 혹 돌이킬 수 있게 된다해도 난 당연하게 그 시간들을 선택할 것 같네요. 그 때의 시간과 웃음, 눈물방울 그리고 생각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됐으니까요.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롯이 나를 위해 똑같은 선택을 할거에요. 나는 예전과 많이 달라졌어요. 이제는 나에게 내가 가장 중요해요. 나를 뒤로하고 보냈던 수 많은 시간들과 선택들이 알려줬죠. 내가 가장 소중하다는걸. 무엇보다 중요한건 나라는걸.
나를 잊었을까요? 아마도 그렇겠죠.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세상은 무섭게 변하잖아요. 나를 잃고 분명, 많은 일들이 있었겠죠. 그리고 그것들이 나를 지웠을거에요. 어쩌면 나도 그럴 수 있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난 잊고싶지 않았어요. 당신이 나에게서 잃은건 이름 뿐, 그 시간 속의 공기와 숨소리와 함께 나눈 생각들까지 모조리 생생하게 남아있어요. 그리고 어떤 때는 그런 것들이 날 살아가게하기도 해요. 의미를 잃은 이름이지만 나에게 와서 하나의 이름이 되어줬던거, 고마워요. 의미를 잃었다고 해서 그 시간들을 모조리 부정할 수는 없으니까요. 내가 나로써 살아갈 수 있게 해준건 나를 지나친 당신들의 그 숱한 이름들이에요.
여전히 내게 남아있는 이름들은 점점 더 소중해지고 있어요. 아마 당신이 떠나지 않았다면 당신의 이름도 날이 갈수록 빛이 났을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이름을 잃게 된 데에는 분명한 이유와 이야기가 있겠죠.
살아온 날들에 묻힌 무수한 이름들과 살아갈 날들에 마주할 무한한 이름들이 나를 만들어요. 우리는 하나의 이름을 갖고 태어나지만 삶을 떠나는 순간에는 아마 하나의 이름이 아닐거에요. 그때의 나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내 이름을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 때의 나를 사람들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한없이 미운 이름들과
소중히도 고운 이름들을 간직하며
나는 지금도 살아갑니다.
앞으로도 그럴거고요.
나에게 와준, 와줄 모든 이름들에게.
이름 잃은 당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