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실패한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지금껏 살아오면서 나는 과연 몇 번의 실패를 했을까 떠올려 봤다. 그리고 나의 첫 번째 실수는 뭐였을까 궁금해졌다.
귀여웠던 나의 첫 번째 '실수'
생각하자마자 웃음이 나오는 내 기억 속 첫 번째 실수는 중학교 때였다. 아마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기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떤 과목의 시험을 보고 시간이 부족하여 OMR카드에 미처 답을 전부 표기하지 못했다. 종이 쳤는데도 답안지 마킹을 하지 못한 건 엄연히 나의 실수였는데, 세상이 꽤 호락호락하게 느껴졌는지 시험지와 답안지를 가지고 나가는 선생님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졌다. 이미 교실에서 나가 복도를 걸어가고 있는 선생님의 팔꿈치를 잡아끌며 엉엉 울었던 기억이다.
"선생님 제발요 제발 저 이거 진짜 다 풀었는데 체크만 할게요 제발요 진짜요 저 죽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큰 의미도 없는 시험에 답안지 마킹을 하게 해주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어렸던 내가 안쓰러울 뿐이다.
가벼웠던 실수를 입가심으로 지금까지 내 인생 가장 큰 실패로 경험되는 사건은 예고에 떨어졌던 사건이다. 어려서부터 미술을 하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아주 자연스럽게 예고입시에 몸을 던지게 됐다. 그것도 집 가까이 있는 예고도 아니었고 사촌언니가 진학했다는 이유만으로 무려 일산에서 분당으로 이사까지 하며. 어찌 되었든 사촌언니가 예고입시를 준비했던 미술학원을 그대로 다니게 되었는데 그게 또 집에서 버스로 40분이나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나의 엄마는 왜 그토록 나에게 미술을 시키고자 했던 것인지, 그 열정은 이해조차 하기 힘든 정도이다.
기억도 나질 않는 나의 첫 번째 '실패'
어찌 되었든 학교 수업이 끝나면 학교 앞에서 빨간 버스를 타고 40분을 달려 학원에 도착한다. 학원에서 낮부터 밤까지 그림을 그리고 학원 봉고차로 집에 내렸는데, 그 생활을 2년 동안 했고 방학에는 '특강'이라는 명목으로 몇백만 원씩 하는 학원비를 내고 아침, 점심, 저녁으로 내리 앉아 그림만 그리는 생활을 했다. 그리고 떨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특별하고 웃긴 에피소드인데, 그때는 혼자 드라마를 찍었다.
하필이면 내가 같이 미술을 하자고 꼬셨던 같은 학교 같은 반 친구는 나를 따라 학원도 가고 예고입시도 준비하게 되었는데, 발표 당일. 아직도 기억나는 토요일 ca시간이었다.
그 친구와 나의 예고합격 발표날이라는 걸 알았던 친구들은, 합격 발표를 확인하는 나와 그 친구옆에서 함께 손에 땀을 쥐며 기도해 줬는데 웬걸. 확인하러 접속한 예고 사이트에서 친구의 이름은 단번에 나왔는데 스크롤을 저 끝까지 내려도 내 이름은 찾을 수가 없었다. 중학교 때까지 범생이(?)로 살아온 내가 무슨 정신이었는지,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이 없다는 사실을 본 순간 학교도 끝나지 않았는데 바로 짐을 챙겨 학교 밖으로 나갔다. 그 작은 나는 어떤 마음이었을지 지금은 기억도 나질 않는다.
세상이 끝난 것 같았다. 드라마에서 시련을 당한 여주인공처럼 비틀거리며 학교 언덕을 내려갔고 그 누구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내가 사라졌고 집에서 나를 기다리던 엄마는 내가 오질 않자 무한한 걱정루프가 시작되었는데, 사실 범생이가 어딜 가겠는가. 그저 집이 좀 멀었고 울면서 비틀거리며 걸어가느라 조금 늦게 도착했던 것뿐이었다. 정신없이 안방에서 전화로 나를 찾는 엄마는 내가 집에 들어온 사실을 알지 못했고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컴퓨터방에 들어가 계속해서 예고 홈페이지 합격자명단 스크롤을 올리고 내리길 반복했다.
이뿐이겠는가.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한 실수는 넘치고 넘칠 것이다. 또 사람들이 흔히 '실패'라고 말하는 일들 또한 무수하게 많았을 것이다. 첫 번째 이직을 했을 때는 100개의 회사에 서류를 넣었고 면접은 고작 3개밖에 보지 못했었다. 그다음 이직 때도 50개의 회사에 서류를 넣었고 면접은 그나마 5개 정도 봤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실패'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내가 뒤를 돌아 나를 만들어온 점들을 다시 보면 난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은 모든 해냈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성공까지 가기 위한 멀고 험하고, 불편한 그 가시밭 길을 가기 싫은 마음을 '실패'라는 단어로 합리화하고 '포기'라는 단어로 삶에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실패는 없다. 그저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하차벨을 누르고 내리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삶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단순할 거다. 그러니 원하는 것만 생각하자. 원하는 목표, 원하는 지점만 생각하고 그 과정에 당신에게 들이닥칠 비바람 혹은 코를 간지럽히는 꽃가루들은 그저 재채기 한 번으로 털어내는 거다.
지름길은 없다. 그리고 실패도 없다. 그저 계속해나가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