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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하게 Feb 29. 2024

나는 왜 자꾸 먹으려 하는가

조급함으로 막힌 길은 영 뚫리지 않는다. 조급함을 만든 것이 스스로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무엇에 쫓기는지 알지 못한채 그저 쫓기기만 한다. 그러다 보면 또 막다른 골목으로 쫓겨 담벼락을 엉금거리며, 벽돌에 손이 찢기는 줄도 모르고 넘어간다. 그리고는 한참을, 한동안을 뛰고 또 뛴다.


아마도 내가 쫓기는 그 길 위에 내가 찾으려 하는 것들은 없을거다. 하늘을 보다, 담벼락에 놓인 작은 개미를 보다, 누군가 땅에 흘린 몇개의 꽃잎들을 보다 그렇게 느긋이 모든 것들을 누리며 지나는 곳에 있을거다. 내가 찾는게 뭐든. 


풀리지 않는 문제에, 점점 막혀오는 가슴에, 어찌할 줄 모르는 몸의 상태가 되면 늘 음식을 찾는 이유는 뭘까, 생각해봤다. 지구상의 모든 동물들은 살기 위해서 먹는다. 죽을 때가 다 되면 곡기를 끊는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반대는 뭘까. 살기 위해서는 뭐든 먹는다는 말이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고,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문제를 직면하면 순간적으로 음식을 찾는다. 문득 어김없이 배도 고프지 않은 채 냉장고 문을 벌컥 열다 느꼈다. 

'아, 내가 살고싶어 하는구나. 지금 죽을 것 같이 느껴지는거구나.' 

나는 죽을 것 같이 답답했던거고, 살기 위해 뭐라도 먹으려 했던 거다. 너무나 본능적이고 무지해보였지만서도 한 편으로는 울컥 스스로에게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속상하고 한번 더 미안했다. 


세상을 얻은 것 같이 기쁜 순간도, 그저 감은 눈이 다시는 떠지지 않길 바라는 순간도 결국은 모두 지나간다. 단지 기쁜 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자꾸만 자꾸만 숨고싶은 순간은 꽤 오래도록 머물기 때문에 모두가 조금은 더 고통스러울 뿐이다. 

많이 성장하고 많이 깨닳았다 느끼는 이 순간에도 어쩌면 답답한 속내가 혀 끝까지 치고 올라와 모쪼록 키보드에 잔뜩 뱉어냈다. 곧 다시 좋은 순간들이 오고, 반드시 다시 올 속상한 시간들에 이 글을 보고 다시 올라가길. 다시 어깨를 펴고 묵은 숨을 내쉬고 손을 탈탈 털고 발을 탕!탕! 구르며 앞으로 나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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