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s Purple Jul 12. 2016

어느 날의 셀프 상담 1 : 두통의 원인

중이 제 머리 깎는 셀프 상담, 그 첫 번째 이야기

원인 불명이었던 두통의 스위치를 드디어 찾아냈다. 나는 아무래도 스스로 불공정한 상황에 있다고 느끼거나, 더불어 그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할 때 머리가 아픈 것 같다. 후자가 좀 더 확실한 요인인데,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뤘거나 할 일이 너무 많다고 느껴도 종종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일종의 '행동 및 의무 저항증'이랄까.

그렇다. 퇴사를 했음에도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대학원 준비도 해야 하고, 2주밖에 남지 않은 자격증 공부도 해야 하고, 큰 맘먹고 등록한 영어학원 숙제와 복습도 열심히 해야 하고,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몸에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하고, 이제 들어오는 수입이 없기에 예전보다 금전관리도 더 철저히 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일이라는 핑곗거리가 없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더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된다.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기에 옷도 더 단정하게 입고 환경도 쾌적하게 유지하며, 깨끗하고 좋은 물건들을 쓰고 싶다.

이렇게 또다시 수많은 의무와 거기서 파생된 세세한 룰들로 스스로를 옭아매기 때문에 나는 다시 피로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리해서 죽도록 뛰어야 가까스로 해낼 만한 목표들을 설정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사는 나는 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스스로를 학대하는 것일까....

'일은 그만뒀지만, 그래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바쁘고 더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보세요, 건강도 지키면서 이만큼이나 해냈습니다. 회사 그만두길 잘했죠? 저 대단하지요?'라고 으쓱거리며 스스로와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아니면 잘하지 않으면 왠지 스스로 불안하기 때문에?

더 큰 문제는 이제 원인은 알게 되었지만 해결책을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 이상 일은 벌이지 말고, 제발 두 번 다시 이렇게 좀 살지 말자.




그대가 자꾸만 무리한 계획을 세우는 이유는 자존감의 기반이 튼튼하지 않기 때문이며, 그것을 인정과 성취에 기반한 자신감에서 찾기 때문이다.

그대 마음속 이상의 자아는 똑똑하고 예쁘고 착하고 성실하고 활동적인 사람인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그래도 조금만 더 노력하면 그 간극을 빠르게 줄일 수 있을 것만 같고, 그래서 마치 '자기 계발 중독자'처럼 스스로의 모든 것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성형 중독보다 더 안쓰럽다. 성형 중독은 얼굴이나 몸만 고치면 되지만 자기 계발 중독증일 경우 모든 걸 다 고쳐야 하니 말이다.


하나 위안을 해줄 게 있다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금씩 다 부족하다. 완벽한 사람은 흔치 않은데다 사실 별로 호감이 가지도 않는다. 그래서인지, 누군가 먼저 쓰지 않았던가. '사실 우리는 모두 다 별로다'라고....

그 말처럼 별로인 사람들이 별로인 일을 하다가 별일 없던 것처럼 세상 구경하다 떠나는 게 이치인데, 자꾸 뭔가 더 얹고 치장하려고 하니 스스로가 좀 버거울 수밖에 없다. 결국 그 스트레스가 신체로 전이되어 두통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제라도 쇼윈도의 바비인형 같은 마음속 이상적인 자아를 부숴 버리고, 현실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노력을 하기 바란다. 원래 세상에는 좀 떨어지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멀리 갈 것도 없이 그게 나인 걸 어떡하겠나. 다만 부족한 애일수록 격려하고 기운을 북돋아줘야 약간이라도 발전한다는 것 잊지 말자.

작가의 이전글 퇴사 후 행복감에 대한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