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 문을 열어 보니 공기가 참 맑더라
- 으음,
스물아홉의 나는 다른 트렌드에는 뒤쳐졌을지 몰라도
퇴사 트렌드의 선구자였음에는 분명하군.
지난 글을 뒤적이며 민망함에 왠지 몸을 배배 꼬아 본다.
모자란 내 글을 구독해 주고 댓글을 달아줬던 상냥한 분들은 여전히 브런치를 읽고 있을까.
나는 다시는 회사를 안 다닐 것처럼 글을 썼었지만
3년 반이 지나는 사이 좀 다른 형태의 규모와 직무로 몇 개 회사를 더 거쳤고, 쉽게 터놓기 민망한 사연들이 차곡차곡 쌓인 만큼 인생의 어떤 부분은 날카롭게 깎여 나가고
어떤 부분은 조약돌처럼 둥글둥글 윤이 나는 모습으로 변해갔다.
아쉽게도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기대만큼 현명해지거나 성숙해진 것은 아니었다.
첫 직장 퇴사 후에 방향을 쉽게 찾지 못했던 나는
여러 방면으로 도전을 한 만큼 실패와 우여곡절도 많았고,
되새기면 쉬이 목이 메일 것 같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어떤 순간에는 이상할 정도로 행복이 지척이 와 있는 것 같았는데, 실제로는 그 시점에서 영영 추락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갖은 고생과 풍파를 겪고 나서야
행복이 저만치서 ’나 좀 늦었지?’라며 머쓱한 얼굴로 찾아오더라.
그러한 삶의 분기점들을 지나 묘한 인연으로
스스로를 문지기라고 부르는 사람의 연락을 받게 되었다.
문지기는 내가 태어나서 듣도 보도 못한 사업을 하고 있는 독특한 사람이었다.
무슨 사업인고 하니,
자기 집으로 사람들을 불러서 노는 걸 중개해주는 사업.
이름하여 "남의 집 프로젝트"였다.
수줍게 그 집 문을 두드려 보니
사람들이 참 예쁘고, 공기도 참 맑더라.
무엇보다 풀과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고
열매도 주렁주렁 열려서
밭을 경작하는 사람뿐 아니라
세상 모두가 나누어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집이었다.
그래서 나는 남의집으로 가서
남의집을 쑥쑥 키울
나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로 했다.
어제까지 남의 집이었던 여기에는 이제
남의집이 우리 집이 된 문지기도 있고, 마루도 있고, 시소도 있고, 정원도 있고, 나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