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내어놓았던 의자를 다시 들여놓았다. 방이 좁아서 답답하단 이유로 옮긴 것이었는데 역시 온몸이 파묻히는 의자가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 옷걸이를 문 뒤로 감추고 그 자리에 의자를 들여놓고 앉으니 창밖으로 건너편 산과 겨울 하늘이 보였다. 창이 커서 좋은 점이다. 오늘처럼 추운 밤에는 창에서 조금 떨어져 앉는 것이 좋겠다.
뱅쇼 데우기
해야 할 일들의 목록에서 일 년 내내 빠짐없이 등장한 건 아마도 책상정리일 것이다. 기껏해야 가로 2미터 남짓의 작은 공간인데 그게 그리도 어려울까.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것들을 보자면 삿포로에서 사온 오르골 상자, 잉크병이 두 개, 마른 라벤더가 담긴 유리 화병, 읽다 덮어둔 책 4권, 프라하 지도, 2017년 스타벅스 다이어리, 가방, 파우치, 스마트폰이 있다. 필통 대용의 작은 박스가 있음에도 만년필과 볼펜 서너 자루가 그대로 널려있고, 타고 있는 촛불, 성냥상자, 비타민이 든 플라스틱 약병, 티슈, 핸드크림, 향수, 컵 받침, 안경, 그리고 모니터와 자판이 있고 좀 전에 데워온 뱅쇼 한 잔이 있다. 그뿐인가 손이 닿지 않는 창가 쪽에는 맥북과 왜 거기 있는지 모르는 타월 두 장, 털실뭉치가 담긴 바구니까지 보인다. 책상만 제대로 정리해도 인생이 달라진다고 아이에게 매일 잔소리를 하지만 정작 그 잔소리는 내게 들려주어야 할 말이었음을 깨닫는다.
크리스마스 식탁을 준비하며
한 밤 자고 나면 새해다. 올해가 가기 전에 정리해야 할 것이 책상 하나라면, 책상 정리로 올 한 해가 정리된다면 그것도 참 싱겁다는 생각이 들지만 바로 다음 순간 그것 하나도 하지 못하는 이가 다른 누가 아니고 나 자신이라는 사실에 혼자 있음에도 얼굴이 붉어지고 만다. 다른 건 다 제쳐두고 욕심을 부려보자고 마음먹었던 한 해였다. 그게 어떤 욕심이었느냐고 묻는다면 그만 또 부끄러워진다. 욕심을 부려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그 욕심이 향하고자 하는 것, 혹은 도달하고 싶은 지점을 구체적으로 정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욕심을 부려야지 하는 마음만 먹으면 스스로에게, 나의 한 해에게 열심을 다할 줄 알았던 건 너무나 뻔뻔스러운 자기 기만에 직무유기였던 셈이다. 몸도 마음도 분주했으나 나와 나를 둘러싼 일상을 찬찬히 살펴서 헤진 곳을 꿰매고 구멍 난 곳을 메워 좀 반듯하게 세워보고 싶었던 욕심은 결국 채우지 못하고 말았다.
올해의 크리스마스 카드
참으로 신기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일 년이 어땠는지 잘게 조각을 내어 살펴보면 힘들다고 불평을 했던 날보다는 이만해서 다행이라며 안도했던 날들이 많았고 혼자 우울했던 날보다는 함께 즐거웠던 날들이 많았으며 걱정과 불안으로 숨고 싶었던 날보다는 기대와 설렘으로 내일을 기다렸던 날들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너그러운 사람, 다정한 이들이 있었다. 보고 싶고 궁금한 이들도 있었고 무조건 편을 들어준 고마운 이들도 있었다. 돌아보니 이렇게 좋았던 날들인데 내가 좀 더 자신을 챙겨서 스스로 흡족한 모양새를 만들지 못한 것이 더 아쉬운 것이다.
새해 달력과 뱅쇼
지금 바람이 산을 넘어갔어요.
서둘러 가느라 잠든 나무들을 깨웠나 봐요.
산이 우렁우렁하네요.
우린 창안에 있어서 다행이에요.
무섭지도 않고 춥지도 않잖아요.
나무들이 조용해졌어요.
다시 잠이 들었나 봐요.
이런 시간이 저는 참 좋아요.
행복하다고 할까요.
그래요.
애썼어요.
말하지 않아도 열심인 거 알아요.
새해에도 우리 이렇게 지내도록 해봐요.
물론 복도 많이 받으셔야죠.
건강하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