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과 폭우가 갈마드는 여름 내내 나는 뒷모습에 사로잡혀 있었다. 누구라도 만났다가 헤어지면 멀어질 때까지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길을 걷다가 누군가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오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상태인지 상상하는 버릇이 생겼다. 뒷모습에 대한 관심은 나 자신에게도 예외가 아니어서 외출 준비라도 할 때는 몸을 최대한 비틀어 거울 속에 비친 뒷모습을 살폈다. 그러면서도 내가 감추거나 꾸밀 수 없는 나의 뒷모습이 지나치게 정직하지 않기를 바랐다. 책상 앞에 앉아있는 아이의 뒷모습, 비에 쓰러진 토마토 가지를 지지대에 묶고 있는 남편의 뒷모습, 창가에 올라앉아 나무 사이를 옮겨 뛰는 물까치를 바라보는 고양이의 뒷모습을 너무 오래 바라보지 않도록 주의했다. 그들이 말하지 않은 것을 지나치게 많이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서점에 먼저 도착한 친구가 책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어떤 책인지 골똘히 들여다보고 있는 그이의 뒷모습에 나도 모르게 멈칫했다. 만날 때마다 마주 보고 앉거나 나란히 걸으면서 시간을 보내곤 하다가 느닷없이 맞닥뜨린 친구의 뒷모습이 낯설었다. 마주 앉아서 그녀가 짓던 표정과 손놀림이 사라진 뒷모습은 소박하고 정직했다. 집중하고 있는 그녀의 등에서 진지함이 배어 나왔다. 등에도 표정이 있구나 싶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인사를 건넸더니 환하게 웃는다. 방금 전 그녀의 뒷모습에서는 발견하지 못한 웃음이었다. 먹고 마시고 말하고 한숨 쉬고 웃고 우는 내내 나의 뒷모습이 궁금했던 날이었다. 어떤 모습으로 보이고 싶다 한들 그저 있는 대로 보일 수밖에 없는 그 모습이 진짜 나라는 생각에 움찔했다. 돌아와서 옷을 갈아입다가 내다본 창밖에는 푸르고 싱싱한 잎들이 무성한 덩굴이 있었다. 호박이었다. 내가 뒷모습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 호박 때문이었다.
윗집 아주머니가 호박을 심었다. 아침 햇살을 온몸으로 받고 있는 호박잎들을 보는 뜻밖의 즐거움이 생겼다. 윗집 마당 끄트머리에 심은 호박은 지주 삼아 묶어둔 줄을 타고 자랐다. 처음 호박꽃이 피었을 때는 내 마당에서 벌어진 일처럼 기특하고 어여뻐서 한참을 보면서 감탄을 했다. 호박은 내 쪽으로도 무성하게 자랐지만 우리 집은 윗집 아주머니가 보는 방향의 맞은편 아래쪽에 있었으므로 나는 호박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격이었다. 호박꽃은 며칠 건너 한 두 송이가 새로 피었는데 그중 몇몇은 손가락만 한 호박을 단 것도 있었다. 호박이 아이 손바닥만큼 자랐을 때쯤 슬그머니 걱정이 생겼다. 호박이 나의 창문에서는 잘 보이지만 윗집에서는 잘 보이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덩굴 사이를 잘 살펴야 발견할 수 있을 터, 나는 윗집 부인이 그 호박을 제때 거두지 못할까 애가 탔다. 며칠 동안 아침마다 호박이 여전히 달려있는지 궁금해서 눈을 뜨자마자 아, 호박 하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커튼을 열어젖히기도 했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호박은 마트에서 파는 정도의 크기가 되면 어김없이 사라졌다. 내가 창문에 코를 박고 호박을 지켜보는 것처럼 윗집 사람들도 호박덩굴 살피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게 틀림없었다. 손가락만 한 호박을 단 호박꽃이 피었다가 시들면 그 자리에서 호박이 무럭무럭 자랐다. 호박이 제법 여러 개 자라는 동안 계절은 여름이 되었다. 장마에 산사태가 염려된다는 안내문자가 연이어 왔다. 밤새 비가 내린 다음날 아침에도 호박덩굴은 무사했다. 젖은 호박잎들은 무심하고 말간 얼굴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순진해 보이는 호박이 아름답기까지 했다. 내 마당 구석에 자라는 호박이 밤새 폭우에 시달려 덩굴이 주저앉고 이파리가 찢어지고 땅에 떨어져 뒹구는 것과는 정반대였다. 누구 탓을 할 것도, 약 오를 일도 아닌 걸 알면서도 '다행이다'와 '분하다'를 오가는 기분이 한여름 요란한 날씨만큼 변덕스러웠다.
비가 그치자 안내문자의 내용이 바뀌었다. 야외활동을 자제하고 온열질환을 주의하라는 문자가 하루에도 몇 번씩 도착했다. 해가 기우는 시간이 되어도 마당의 열기가 도무지 가라앉지 앉아서 토마토와 오이, 호박 같은 식물들이 걱정이 되었지만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잠깐 나가서 들여다볼라치면 잎은 시들하고 미처 익지 않은 토마토가 뜨끈했다. 그 잠깐 동안에도 머릿속에 땀방울이 맺혔다. 폭염경보가 내린 지 며칠이 지났을까. 무심코 창밖의 호박덩굴을 바라보다가 누렇게 변해버린 호박잎들을 발견했다. 지난 저녁까지만 해도 싱싱하던 잎들이 순식간에 모래색깔로 변해버린 것이었다. 형태는 변하지 않았으나 그건 더 이상 호박잎이 아니었다. 밤새 머리가 센다더니 태양빛이 얼마나 뜨거웠으면 저리 되었을까 안타까웠다. 그러나 호박은 모래빛깔의 잎들과 초록 물감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잎들을 동시에 달고 태연했다. 중간중간 꽃도 피어 있었다. 윗집 여자는 호박잎 일부가 그렇게 변해버린 걸 모르는 것일까. 하긴 호박에게도 보이는 것과는 다른 뒷모습이 있다는 걸 알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도무지 예측을 할 수 없는 날씨가 이어졌다. 이른 더위와 폭우, 경험해보지 못한 폭염이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폭우 예보가 다시 내려졌다. 사람도 식물도 늘어져있던 터라 피해만 없다면 세찬 비 정도야 싶었다. 오후부터 구름이 끼기 시작하더니 금세 하늘이 무거워졌다. 평소처럼 의자에 앉아 호박덩굴에 눈길을 주었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호박잎들이 축 처져있었다. 더위에 시들 겨를도 없어 싱싱했을 때의 모양 그대로 타버린 호박잎들이 비 내리기 전의 습기를 빨아들였는지 형체를 잃고 넝마처럼 늘어져있었다. 손을 대면 부서져버릴 것처럼 타버린 잎들이 용케도 매달려있더니 갑자기 끓는 물에 삶아진 것처럼 후줄근해진 호박잎에서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을 윗집 아주머니가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내가 내 뒷모습을 어찌할 수 없고 또 바라볼 수도 없다는 사실이 때로는 위로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처럼 곤혹스러운 게 있을까.
계절은 그러나 정확했다. 어김없이 가을이 왔고 고비를 넘긴 호박덩굴은 서리가 내릴 즈음 사라졌다. 바지런한 윗집 여자가 넉걷이를 서두른 모양새다. 나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창 밖을 바라본다. 호박이 자라던 자리에 지금은 눈이 쌓여있다. 언제나처럼 눈은 모든 것을 덮고 겨울마당은 눈 아래 숨어서 몰래 바쁘다. 뒷모습이 의지의 세계가 아니라 그저 존재하는 세계의 표상이라면 이 겨울 눈 덮인 숲의 작은 나무처럼 살아도 좋으리라. 앞 뒤 가릴 것 없이 드러낸 맨 몸으로 날개같은 가지를 쳐들고서 말이다. 간혹 눈이 내려 쌓이면 안 보이는 만큼 더 높이, 더 멀리, 더 자유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