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 열 번째 편지(릴케)

by 민선미

1908년 성탄절 다음 날에...

파리에서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의 마지막인 열 번째 편지이다. 아홉 번째 편지에 이어 4년 만에 보내는 편지이다. 지난 4년간 릴케는 <신시집>을 출간하고 강연 여행을 다니며 바쁘게 살았다. 1904년에 <말테의 수기>를 쓰기 시작했고 1908년에 집필을 완성하며 <신시집 별권>까지 출간했다.

열 번째 편지는 카푸스씨의 멋진 편지를 받고 감동받은 내용을 서두에 꺼낸다. 카푸스씨가 전한 소식이 현실적이고도 말로 표현할 만한 것들에 대해 이제 과거를 되찾은 것을 무척 축하해 주었다.

릴케는 그동안 쉼 없이 작업에 몰두했다며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일들조차 처리하지 못하고 문득문득 당신을 생각했다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쓸쓸한 요새 안에 조용히 그 고요는 크기를 측정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소란스러움과 움직임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고 그 모든 것이 먼바다까지도 다가와 소리를 울려준다고 한다.

내 마음에 쓸쓸한 고요를 그 크기는 얼마나 될지 가늠해 보았다. 그 속에서 요란하고 소란스러운 잡음들이 바다까지 소리를 울려준다니 정말 놀라웠다.






당신께 바랄 것이 있다면 다만,

큰 믿음과 끈질긴 인내심을 가지고 그 웅장한 고독이 당신에게 작용하도록 내버려도라는 것뿐입니다. 이제 그 고독은 아무리 몰아붙여도 당신에게 결코 떨어져 나가지 않을 겁니다. 그 고독은 앞으로도 당신이 체험하고 행할 모든 것들 속에 익명의 영향력이 되어 계속해서 그것을 묵묵히 결정적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중략) 이러한 모습은 우리 인생의 전환점마다 결정적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_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p.101






우리에게 작용하고, 우리를 때때로 자연의 위대한 것들 앞에 세워주는 상황들 속에 우리가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전부이다.

예술 역시 삶의 한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 우리가 매일 먹고 살아가는 일상이 예술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예술행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하루를 근사하게 살아야 했고 흥청망청 시간을 허비해서도 안된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아침, 점심, 저녁은 알 수 없는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가 던져준다. 이 선물을 감사히 받을지 고통스럽게 받을지는 내게 달려있다.

경험이 풍부할수록 지혜가 쌓이고 위험으로 빠질 상황을 극복해 내는 용기가 생긴다. 왜냐면 우리는 행복과 불행을 함께 일상에서 느끼며 고독했다가 충만했다가 하는 감정의 균형을 이젠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언제나 릴케는 자신을 우월하다고 자만하지도 않고 편지를 읽으면 세심하면서도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심오한 생각을 말한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하듯이 인생에 불어닥치는 역경들이 위기일 수도 기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이 모든 것들을 겪고 나면 나를 한층 강화시켜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독으로 해답을 찾은 릴케가 알려주듯이.




다운로드 (49).jpg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독일 작가, 정신분석자)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편지를 보면 젊은이들이 품게 되는 삶의 고민들을 풀 수 있는 하나의 보편적인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 편지글은 자신의 숱한 고민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한 그루의 푸른 소나무처럼 언제나 젊고 창조적이고 인생에 긍정적이었다.

릴케와 5년이 넘는 세월 동안 편지를 주고받은 젊은 시인인 프란츠 크사버 카푸스는 제1차 세계대전 때 종군기자로 활동하다 나중에는 통속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릴케가 직접 써놓은 <묘비명>을 남기고 마무리한다. 모순투성이의 모호한 묘비명을 남기고 떠났다.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그리고 많은 눈꺼풀 아래
누구의 것도 아닌
잠이 고픈 마음이여

_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묘비명(1927)



'고독'하면 라이너 마리아 릴케이듯이 고독에 대한 정의를 다시 떠올려 본다.



고독은 근본적으로 우리가
택하거나 버릴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님이
점점 더욱 뚜렷해집니다.

우리는 고독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마치 그렇지 않은 듯이
스스로를 속이고 행동할 뿐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_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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