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일곱 번째 편지

소네트 & 인습의 구조

by 민선미
SE-251a0288-9844-4242-b1f7-8eb276072804.png




일곱 번째 편지는 로마에서 1904년 5월 14일로 꽤 시간이 흘러간 후에 안부 편지를 쓴 내용이다.


카푸스씨가 보낸 "소네트(SONETT)"라는 시를 읽고 릴케의 칭찬이 실려있었다. 카푸스씨의 시가 아름답고 소박한 데다가 조용하고 단아한 형식미까지 갖추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또한 소네트의 시를 직접 필사한 것도 동봉했다. 카푸스씨가 보낸 자신이 남긴 작품을 남이 쓴 손글씨체로 다시 한번 읽어보는 것도 당신에게 중요하고도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다른 사람이 쓴 작품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시를 읽어보라고 했다. 내 글을 다른 사람이 낭독해 주는 것을 듣는 것도 새로웠기 때문에 나는 공감할 수 있었다.



20231108_095718.jpg
20231108_095723.jpg





일곱 번째 편지 내용에 대해서 감사한 부분이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당신은 당신이 고독을 깨고 바깥으로 나가고 싶은 소망이 당신의 가슴속에 존재한다는 사실로 인해 당혹해하지 말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와 같은 소망을 조용하고 신중하게 그리고 마치 하나의 도구로 사용한다면 당신의 고독은 드넓은 땅 위로 펼치는 일을 도와준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어려운 것을 향한다고 했다. 자연 속의 모든 존재들은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자라며 자신들을 방어하고 또 안으로부터 무슨 희생을 치르더라고 어떠한 저항에라도 맞서면서 그와 같은 고유성을 지키려고 한다.

고독하다는 것은 훌륭한 것이다. 고독은 어렵기 때문이다. 무언가가 어렵다는 것은 우리가 그 일을 해야 하는 이유가 되어야 한다.



사랑하는 것 역시 훌륭한 일이다. 왜냐면 사람은 어려우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람, 그것은 우리에게 부과된 과제 중에서 가장 힘든 과제인지 모른다. 최후의 과제이자 가장 힘든 과제가 사랑이다. 사랑이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강도 높고도 심오한 고독인 것이다. 무엇보다 사랑한다는 것은 전혀 융합이나 헌신 그리고 상대방과 하나가 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사랑은 개인이 성숙하기 위한,
자기 안에서 무엇이 되기 위한,
하나의 세계가 되기 위한,
즉 상대방을 위해 자체로서
하나의 세계가 되기 위한 숭고한 동기다.

사랑은 개인에게 주어지는
위대하고도 가혹한 도구다.






4348823_uploaded_6663970.jpg




사회적 통념은 온갖 형태의 피난처를 만들어 놓았다. 일반 오락들처럼 애정생활 역시 쉽고 값싸고 위험 없고 그리고 안전한 것으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상대방에게 자신을 내맡기며 고독하지 않게 사랑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있다. 그들은 과오의 압박을 느끼면서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삶에 적합하게 결실 있게 만들고자 한다. 왜냐면 내면의 본성, 사랑의 문제는 사회적 합의에 의해 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문제는 사람마다 각각 다른 사적인 문제로서 그때마다 새롭고 독특한 극히 개인적인 답변을 요구하는 게 문제다. (서로 상대방에게 자신을 내맡기고 서로의 경계를 짓지도 않고, 구별하지도 않게 된 그들) 자신들의 고유성을 지니지 못한 채 그들이 이미 막혀버린 고독의 깊은 곳으로부터 출구를 찾지 못한다.


사람들이 일찍이 하나로 합쳐진 불투명한 유대감을 기반으로 행동하는 곳에서 모든 행동이 인습적이다. 인습은 이를테면 결혼 같은 것이다. 아무리 평범한 것도 벗어나고자 하면 비도덕적이 되고 상대와의 얽힘이 모든 관계에서는 인습이 자리 잡게 된다.

헤어짐조차도 그런 인습적인 하나의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어려운 사랑을 위해 어떤 설명도 어떠한 해법도 어떠한 암시나 방법도 인식되지 못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것을 견뎌내면 진지한 진지성을 가려버리는 모든 쉽고 경박한 놀이에서 자신을 잃는 대신 앞으로 이러한 사랑을 짊어지고 가야 할 짐으로 받아들이면 성과가 있는 것이다.








글을 마치며


오랜만에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다시 펼쳤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금세 몇 개월 전에 읽었다고 그 감동이 사라졌다. 다시 그전에 발행한 글들을 읽어 보았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28세에 이 편지를 썼다는 사실을 다시 감탄하며 읽었다. 나는 28세에 뭐 했나를 떠올리며.

"소유하지 않는 사랑"의 개념을 처음으로 등장시킨 사람이다. "고독"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거의 동의어라고 한다.

여성을 남성을 위한 하나의 보충 물로 보는 사회적 인습을 파괴하려는 그의 여성해방의식의 차원에서 나왔는데 모든 외적인 방해물들이 많아 자신의 예술세계를 방어하려는 독특한 세계관이라고 칭했다.

릴케는 사랑하는 두 연인은 서로가 서로의 고독을 지켜주는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우리의 사랑은 두 개의 고독이 서로를 보호해 주고 서로의 경계를 그어놓고 서로에게 인사를 하는 사랑입니다." 그 결과 당시 여성이 사회적으로 당했던 차별에 진보적으로 변화했다.


참 릴케는 모순의 시인이 맞았다. 고독과 방랑의 수식어가 따라붙는 이유를 말이다. 릴케의 편지는 7천 통이 책의 형태로 출간되었다. 그가 남기고 간 2천 편이 넘는 시작품과 산문 작품을 만나봐야겠다. 편지를 인간들 사이에 가장 멋지고 풍요로운 교제 수단이라고 말한 그가 멋지다. 그동안 릴케의 일곱 번째 편지를 다시 포스팅하려고 읽으며 머리에 또다시 지진이 났다. 고뇌의 시간을 보내야 창작이 떠오른다는데 나는 그만 머리 좀 쉬러 가야겠다. 어려워도 읽고 나면 머리가 띵하면서도 중독성이 있다.

이전 06화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 여섯 번째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