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원래 그래

본심은 그게 아니란다

by 민선미


가끔 집에서 갓 지은 밥을 먹어야 한다는 내 고집으로 매번 새 밥을 지어 어느새 냉장고에 찬밥이 자꾸 굴러다녔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왜 당신은 찬밥만 먹냐면서 주말마다 찬밥처리로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김치볶음밥을 주문하곤 한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냉동 대패 삼겹살을 구워서 잘게 자르고, 익은 김치를 송송 썰어 넣은 김치볶음밥이 완성돼 갈 때쯤이면 둘째가 무슨 냄새냐면서 오늘 메뉴를 알아맞혔다. 가끔은 찬밥으로 해주는 게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다가도, 막상 뚝딱 만들어 내놓으면 아이들은 개눈 감추듯 먹어치우고, 그 모습이 또 음식 하는 사람의 보람이라는 걸 매번 느끼며 흐뭇했다.


“엄마가 해주는 김치볶음밥이 최고야.”


아이가 그렇게 말해주면,

나도 모르게 마음 한쪽이 따뜻해져

오늘도 찬밥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고기를 먼저 굽고, 썰어놓은 김치를 넣어 정성스레 볶고 있었다.




어제도 마음은 그랬다.

그런데 그 따스한 부엌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내 마음을 다른 곳으로 데려갔다.
내 등뒤 너머에서 아무렇지 않게 오가는 가족들의 말이 들렸다.


“엄마는 원래 그래.”
그 말이 이상하게도 기분 탓인지 쉽게 넘어가지 않고 유난히 크게 들렸다.
찬밥을 데워 김치볶음밥을 만드는 내 손끝이 잠시 멈출 만큼 곱씹게 되었다.

남편은 반박하지 않고 호응했다는 얘기인데 어딘지 모르게 배신감이 들었다.





아이들이 어릴 땐 나는 참 크게 보였던 존재였다. 아이들보다는 힘도 세고, 지켜주는 사람이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로잡아주는 어른이라고 자부했다. 그렇게 믿고 싶었고, 나도 그런 엄마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작아지고, 불완전함이 더 자주 드러나며, 그 틈을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보기 시작했다. 그게 어쩐지 서글펐다.


세월의 흐름을 인정하면서 아이들이 잘 자라준 대견함과 서운함이 한꺼번에 파도처럼 몰려왔다.


문제의 발단은 첫째가 시험기간임에도 하루 종일 잠을 자는 모습을 보고 방문을 열두 번도 열어다 닫기를 반복했다. 아직도 자나 싶다가 자는 모습을 보니 안쓰러워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왔다. 심지어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일부러 크게 인기척도 해보았다. 그렇게 여러 번 반복하기를 거듭할수록 남편은 남일을 보듯이 "그냥 주말이니까 푹 자게 내버려 둬요"라는 말이 서운하게 다가왔다. "나도 그렇게 하고 태연한 척하고 싶거든"이라며 대꾸했다.



나는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아들 방을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날락했다. 제 아무리 살금살금 문을 닫고 나왔어도 편치 않았겠다 싶었다. 그게 문제의 발단이었다. 알면서도 나는 시계를 보고 또 보며 한탄했다.

(아마 엄마라면 다 그럴 거라고 합리화까지 하면서)


그러다가 그 참을 인(忍) 자를 여러 번 되뇌며 그놈의 내 인내심은 한계가 짧았는지 결국 빛을 발하지 못하고 "왜 이렇게 잠만 자느냐"라고 잔소리부터 꺼내고 말았다. (대한민국 어머니들이 자식들에게 제일 많이 한다는 말인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잠이 오냐"라는 말을 나도 하고야 말았다. 조금만 더 참았어야 했는데 말이다.)


내 어린 시절의 시험기간이 겹쳐져 보였기 때문이다. '' 때문에 시험을 망치고 힘들었던 기억들 때문이다. 엄마에게 분명 부탁하고 잠시 잠들었는데 엄마가 안 깨워줬다고 속으로 원망하던 날들이 있었기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엄마가 내게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닐 텐데 엄마는 너그럽게 미소 지으면서 우리 딸이 너무 곤히 자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안 깨웠지라는 말이 겹쳐졌다.


두 마음이 늘 부딪혔지만, 결국 나는 ‘그래도 깨워줘야지’라는 생각에 기울었었다.

그때의 내가 지금 아이에게 투영되며 나는 또 큰 소리를 냈고, 그것이 남편에게는 ‘내 욕심’으로 보였고, 그 말은 또다시 내 마음을 다치게 했다. 신기하게도 둘째에게는 이런 감정이 그렇게 쉽게 올라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를 닮은 첫째에게만, 기질도 비슷하고, 마음결도 비슷한 그 아이에게만 나는 더 날카로워지고, 그 뒤에는 늘 같은 후회가 따라온다. 밤늦게까지 속이 뒤틀리고, 가슴을 두드리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였다. 어느새 베개로 흘러내리는 눈물. 찬밥으로 김치볶음밥을 만들던 조용한 부엌에서 이런 마음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나는 아이에게 미안했고, 아이를 사랑한 죄, 그 사랑이 때로는 엉뚱한 모습으로 튀어나오는 나 자신도 밉고 미안했다. 오늘의 기록은 어쩌면 그런 마음의 흔적이다.


나는 완벽한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고, 그럼에도 매일 다시 해보려 애쓰는 나를 조금은 이해하고 싶어서 남기는 기록이었다.




"엄마"라서,
"엄마"라는 이름 때문에,
내 이름 석자보다 더 앞서 불리는 어떤 역할 때문에
나는 종종 내가 누구였는지 잊어버린다.


그 이름은 따뜻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나조차도 나를 괴롭히는 또 다른 이성처럼 느껴진다.
아이를 위한 마음과 나를 위한 마음이 매번 충돌하는 그 틈에서
나는 아직도 흔들리고, 아직도 배우고 있는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원래 그랬던 것은 없었다.
처음부터 잘하는 엄마도,
늘 강한 엄마도,
한 번도 흔들리지 않는 엄마도 원래부터 있던 것이 아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오늘을 살아가며
어제보다 조금 더 알아가고,
내일을 향해 조금씩 변해가는
그냥 ‘살아 있는 사람’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