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만 감고 있어도

나의 소중한 하루는 흘러갔다

by 민선미

눈 수술을 하고 여드레가 지나서야 앞이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겨우 딱 붙은 눈을 뜨긴 했지만 세상은 여전히 안개가 낀 듯 번져 보였다. 그럼에도 나는 습관처럼 책을 펼쳐 들었다. 필사노트와 메모장도 열어보았다. 그러나 글자는 또렷하게 잡히지 않았고 오래 바라볼 수도 없었다. 그제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 내게 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예전의 나라면 초조했을 것이다. 뒤처지는 것 같아 불안했을 것이고, 무엇이라도 해야 마음이 놓였을 것이다. 늘 읽고 쓰며 분주하게 살아왔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보이지 않으면 눈을 감았고, 아프면 누웠다.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잠에 들면 통증이 멀어졌다. 하루는 그렇게 조용히 흘러갔다.



처음에는 그런 내 모습이 낯설었다. 해뜨기 전의 고요한 시간부터 억척스럽게 책과 노트북을 붙들고 씨름하던 사람이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 보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가만히 있는 시간을 통과하며 나는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나는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속도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애써 붙잡지 않아도 시간은 흐르고 있었고, 그 사실이 이상하게도 나를 안심시켰다.


삶은 내가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나를 데리고 흘러간다는 것도 받아들이게 되었다.





눈물이 끊임없이 흐르는 것을 보고서야 나는 내가 고통에 참 무딘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건조한 눈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방치한 탓에 병은 더 악화됐다. 이제는 알 것 같다. 내 몸이 보내는 신호에 조금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느리게 인지했다. 더 이상 나를 혹사시키지 말자고 가슴에 새겼다, 이제는 나를 먼저 사랑해 주자고 조용히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대신 영화와 드라마를 오래 바라보았다.


고통을 잊기 위해서였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은 이야기에 기대어 숨을 고르는 시간이기도 했다. 사람은 힘들 때 본능적으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이야기는 우리를 버티게 하고, 조용히 건너가게 한다. 쓰지 못하는 동안에도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노트에 적지 못했을 뿐, 문장들은 머릿속에서 천천히 형태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글은 책상에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아이들도 나의 변화를 느끼는 눈치였다. 늘 분주하던 엄마가 하루 종일 누워 있으니 낯설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아무 말 없이 슬그머니 열린 방문을 살며시 닫아주었다. 그 조용한 배려 앞에서 나는 오래 눈을 감고 있었다. 설명할 필요 없는 마음이 그곳에 있었다.

돌아보니 나는 오래 버티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견뎌내고, 의미를 만들고, 희망을 붙잡으려 애써왔다. 그것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힘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르다. 견디려고 애쓰지 않고, 의미를 서둘러 만들지도 않는다. 그저 받아들였다.





멈춰야 하는 시간도 삶의 일부라는 것을, 속도가 느려진다고 해서 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산이 그 자리에 서서 계절을 견디듯 나 또한 내 자리에서 이 시간을 지나가고 있다. 단단함이란 어쩌면 버티는 힘이 아니라 흔들려도 부러지지 않는 상태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나 자신과 싸우지 않는다. 아픈 날은 아픈 대로, 쉬는 날은 쉬는 대로 놓아둔다. 그러자 마음 한가운데에 고요한 중심이 생겼다. 버티는 사람에서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어쩌면 나는 더 단단해진 것이 아니라 더 유연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눈을 감고 있는 동안에도 하루는 흘러갔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조금씩 깊어지고 있었다. 언젠가 다시 또렷한 시야로 책을 읽고 글을 쓰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문장은 이전과 같지 않을 것임을 안다. 강제로 느려졌던 시간들이 문장 사이에 고요히 스며들 것이기 때문이다.


멈춤은 공백이 아니라 삶이 나를 깊게 만드는 방식이라는 것을 비로소 몸으로 배웠다. 나는 오늘도 지나가는 시간을 조용히 건너고 있다.





사람이 어찌나 단순하고 모자란 지 남의 고통을 내가 몸소 느껴보고 나서야 그 고통을 가늠할 수 있으니 어찌 이렇게 미련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수술한 후 이삼일동안은 정말 말할 수 없는 고통으로 암수술을 마친 친구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친구는 얼마나 아팠을까 생각하니 더 따스하게 위로하지 못한 내가 한없이 작아 보였고 못났다는 생각뿐이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귀에 계속 맴돌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님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몸의 소리에 항상 귀 기울이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