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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태영 Jul 30. 2017

황 이야기

황이 말짱 황 되지 않으려면

"됐고, 한국과 중국은 작물이나 비료 등 농사짓는 방법이 다르니 당신 얘기는 필요 없소"


 회의장에서 만난 중국의 한 업자는 제게 이렇게 면박을 주고 다른 데로 눈을 돌렸습니다. 저희 회사와 공동 투자를 하여 비료 공장을 운영하기로 했는데, 워낙 영업력이 약한 데다가 영업 조직조차 제대로 꾸리지 못해서 보다 못한 제가 영업 사원들을 만나서 얘기 좀 하게 해달라는 요청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나도 됐다. 토양과 물과 식물과 비료, 그리고 그 관리의 기본도 모르는 애들이 댈 수 있는 핑계라는 게 원래 뻔하다. 그러면 그동안 내가 한국에서 중국에 수출했던 비료는 뭐고, 당신들이 환장하는 외국산 비료는 중국용으로 따로 만든 거냐?'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회의 맥락상 굳이 필요하지 않은 발언이라 눌렀습니다.(쉬는 시간에라도 쏘아붙일걸 하는 생각이 간절하더군요. 중국어를 잘했더라면...... 중국에 갈 때마다 느끼지만, '중국어를 못해도 중국어 하는 사람을 고용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 어서 생각을 고치시길 바랍니다)


 문득 경기도 모 처에서 세미나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항상 그랬듯이 저는 직접적인 제품 홍보보다는 기본적인 양분의 종류와 운용 원리만 말씀드리면서, '옆 동네에서 진행한 시험 결과를 보니 이렇습디다... ' 식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세미나 후반부에 뒤에 서 계시던 어떤 농가가 갑자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시더군요. 


"아, 그딴 결과는 그 동네 얘기지, 여기는 거기와 달러. 어디서 약을 팔라고 그래?"


 대체로 업체들의 세미나에는 어디나 이렇게 경쟁사에서 친히 보내주시는 행동대장들이 계십니다. 듣는 순간엔 욱 했습니다만, 저 역시도 과거에는 '약 팔던 약장수'에 불과했기 때문에 행동대장 여부를 떠나 그분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자리에 나서는 대부분 업체 직원들은 그저 앞뒤없이 자기네 제품 좋다고만 말하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조용히 말씀드렸습니다.


 "예, 맞습니다. 물론 그 동네와 이 동네는 다르고, 이 동네에서도 선생님 밭과 옆의 분 밭과는 조금씩 다를 겁니다. 그러나 제가 장담하지만, 먼 거리에서 흙을 가져다가 객토를 하지 않았다면 선생님 밭의 pH와 EC가 지금 보여드리는 시험 밭의 상황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경작 환경 관리와 양분 운용 방법에 따른 효과이기 때문에,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분명 비슷한 효과가 나올 겁니다. 세미나가 끝나면 선생님 밭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기다려주세요" 


 그러고는 약속대로 그분 밭으로 가서 pH, EC를 측정해 드리면서 외국인 고문들과 함께 상담을 해드렸습니다. 물론 예상하시다시피 그분은 곧 저희 팬이 되셨고요.


 기업의 존재가치가 이윤창출에 있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만, 이렇게까지 농가들의 불신이 만연하게 된 것은 농업 기업 스스로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그 대표적인 케이스 중 하나가 황산칼륨이지요.


 황은 식물 영양에서 칼슘, 마그네슘과 같이 2차 요소로 분류되는 아주 중요한 성분입니다. 단백질의 필수 성분이고 엽록소 형성에도 관여합니다. 또한 조효소와 비타민의 구성성분이면서 메티오닌이나 시스테인 등 중요한 아미노산을 구성하는 원소이기도 합니다. 특히 양파, 마늘, 겨자 등의 매운 맛이나 매운 향에 필수적이지요.

 작물에서 황이 부족해지면 주로 상위 잎이나 새잎 등 새로운 조직에서 질소 결핍 비슷하게 옅은 녹색이나 노란색으로 변하게 됩니다. 심하면 성숙이 지연된다고도 하는데요, 그런데 말입니다.........


 혹시 황 결핍이라고 진단받거나 그 증상을 보신 적 있나요?


 이렇게 중요한 황이지만 식물의 필수 원소들 중 그 결핍을 매우 보기 힘든 원소가 황입니다. 그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이미 비료를 만드는 원료들 중 상당수가 황산과 결합한 상태이기 때문에 굳이 황을 따로 넣어줄 이유가 없거니와, 토양에서도 황 성분은 충분히 공급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들은(심지어 비료를 판매하는 분들 조차도!) 어떤 과실이든 그 맛과 향을 황 성분이 키워준다고 믿고 계시던데,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는 어디까지나 '매운 맛과 향'에 해당되는 얘기일 뿐입니다. 

 황이 딸기나 사과의 단 맛과 향을 키워주지는 않는다는 얘깁니다. 백보 양보해서 황이 어느 정도 그런 작용을 한다고 보더라도, 굳이 황 성분에 별도의 비용을 쓰시지 않아도 될 정도로 황은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서 작물에 충분히 공급됩니다. 오죽하면 비료관리법에 의한 표기사항에도 황 성분의 표기는 그 어디에도 언급되어있지 않을 정도니까요. 의심되시면 지금 가지고 계신 비료제품 뒷면 보세요. 표기사항에 황 함량이 있나요?


 오히려 이런 오해는 동절기 관주 재배하는 농가들에게서 문제를 발생시킵니다. 흔히들 사용하시는 관주용 비료의 칼륨 성분은 보통 염화칼륨, 질산칼륨, 황산칼륨 등의 원료로 제조됩니다만, 황산칼륨을 사용한 경우엔 그 용해도가 떨어져서 특히 온도가 매우 낮아지는 시기에는 점적 파이프를 막히게 하는 주원인 중 하나가 됩니다.  혹시라도 겨울철까지 황산칼륨 성분의 관주 비료 재고를 가지고 계신다면, 잘 두셨다가 그나마 상황이 나아지는 여름에 사용하시길 권해드립니다.


 황에 대한 관심은 최근 블루베리 농가들이 더 많으시지요? 블루베리가 산성 토양을 좋아하는 특성  때문에 그 조건을 맞추기 위해 '황이 토양의 pH를 낮추어 산성화 한다'는 내용만 믿고 고체 황이나 황가루를 사다가 이랑 위에 뿌리십니다. 그렇게 하면 pH가 바로 낮아지던가요? 남들 말만 믿지 마시고, 인터넷에서 토양 pH미터를 사다가 측정해 보시면 금방 답이 나옵니다. 봄에 날 풀린 후 황가루를 아무리 열심히 주셔도, 그 효과는 블루베리 수확할 시절에나 나올 겁니다.

토양 pH미터

  자, 왜 그러냐면 일단 S상태의 황은 토양에서 아무 역할을 안 합니다. 얘가 토양에서 뭔가 일을 내려면, 슈퍼맨이 공중전화 박스에서 안경을 벗고 옷을 갈아입어야 날듯이, 이 황이 수분과 미생물을 만나서 황산염(SO4-)으로 변신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식물이 흡수하여 양분 역할도 할 수 있고 블루베리 농가들이 원하는 대로 pH도 떨어뜨리는 거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 기간이 온도나 수분 조건에 따라 수개월에서 1년까지 걸린다네요.  그러니 날 풀리는 3월에 황가루를 뿌린 들 잘 풀려야 7~8월에나 분해될 텐데..... 블루베리 수확 끝나는 시기네요? 그나마도 땅 위에 널어놓는 수준이었다면 더 늦겠지요?


 그렇다고 가지고 계신 황 비료를 버릴 필요는 없고.... 아 이제는 감이 오신다고요? 그렇지요. 좀 늦지만 내년을 위해서라도 좀 느긋하게 마음먹고 사용하시면 되고요, 이왕이면 뿌린 후 흙을 덮어주면 좋겠지만 워낙 힘든 일이니 물이라도 뿌려주시면 미생물들의 활동이 좀 더 빨라지겠지요? 


 혹시나 이제부터 황이 아니더라도 pH를 조절할 자재를 찾는 분이시라면, 이왕이면 물에 잘 녹는 성분들로 하시는 것이 효과가 훨씬 빠릅니다. 게다가 블루베리 농가들은 대부분 점적 호스, 화살 점적기 등 점적관수 설비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이런 전문 관주 비료를 사용하시면 시간과 노동력이 훨씬 적게 들지요.


 황 이야기는 이렇게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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