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하'지 않고 '보'게 된 사연

by 설묵

종종 '여가시간에 무엇을 하시나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언제 어디서나 스몰 톡 주제로는 제격이다. 모임과 사람에 성격에 따라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는다. 혹은 운동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는 잘 이야기하지 않는, 그렇지만 진정한 나의 여가시간 활동은 다름 아닌 '게임'이다.


많은 또래 남자들처럼, 나 역시 학창 시절 내내 게임과 함께 했다. 10대~20대 많은 남성들에게 게임은 단순한 여가 할 동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친목을 위한 교양이며, 동시에 집단 내에서의 위치이기도 하다. 우리 때는 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 실력이 그랬고, 지금은 아마 리그오브레전드(이하 롤) 티어가 친구들 사이에서 모종의 권력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게임은 하는 문화이면서 동시에 보는 문화가 된 지 오래다. 처음으로 스타리그를 보게 된 것은 2001년이었는데, 그때부터 10년간 스타를, 이후에는 롤을 보는 것이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 중 하나였다. 임요환에서부터 페이커까지, 누군가에게는 스포츠 선수나 슈퍼히어로가 맡았을 '영웅'의 역할을 나에게는 프로게이머들이 대신해주었다.


게임을 하는 것과 보는 것 모두에게 빠져 있다가, 점점 하는 것을 멀리하게 된 시점은 20대 후반이 되고 나서다. 게임계에는 '마의 24세'라는 용어가 있다. 프로게이머들에게 주로 사용하는 말인데, 24세가 넘으면 컨트롤 같은 기본기가 점점 떨어지게 된다는 뜻이다. 프로스포츠 선수들에게 30대 후반에 찾아오는 이른바 '에이징 커브'와 같은 개념이다. 일반인 수준에서 이 말을 언급하는 게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나에게도 서서히 손이 굳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게다가, 황혼을 불태울 24~27세 시기에는 시험공부를 하느라 게임에 손도 대지 않았다. 인생에 있어서는 탁월한 선택이었지만, '겜생'에 한해서는 마지막 기회를 놓친 것이다. 시험이 끝나고, 입사를 하기 전 마지막으로 롤에 영혼을 불태웠지만, 몇 년 사이에 달라진 게임 메타와 퇴화해버린 피지컬을 극복할 수는 없었다. 더욱이 회사원이 되고 나서는 승부에서 지는 스트레스도 싫고, 심지어는 캐릭터를 조작하는 게 귀찮은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실제로 이 증상을 많은 직장인 게이머들이 겪고 있으며, 100% 유사한 상황은 아니지만 비슷한 의미로 쓰는 '게임 불감증'이라는 용어도 있다)


반대급부랄까, 점점 게임을 보는 것에 더 많은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시간이 되면 전체 경기를 보고, 부족하면 하이라이트를 챙겨보았다. 가끔은 상암 그리고 종로에 있는 경기장을 '직관'하기도 했다. 게임을 스포츠로 즐기는 일명 'E스포츠'는 컴퓨터 화면을 송출하기에 직관을 하더라도 모니터로 보아야 하기에 직관과 '집관'이 다를 바 없다. 그렇지만 야구나 축구가 그렇듯, 실제 경기를 하는 프로게이머들의 모습과, '하나 둘 셋 파이팅!'을 외치는 응원단의 열기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점은 분명한 차별점이다.


요즘은 주말 아침마다 눈을 뜨면 잽싸게 TV나 스마트폰을 켠다. 1년간 각 지역별 최고의 팀들이 모여, 세계 최강 팀을 가리는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이 미국에서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경기에서는 페이커가 이끄는 한국팀이 중국팀을 물리쳤는데, 그 덕에 5년 만에 한국 vs 한국의 결승전이 성사되었다. 지난 몇 년간 중국팀과 유럽팀들에게 고전을 면치 못했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E스포츠의 종주국으로써 위상을 높이게 되어 괜히 뿌듯하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종로 경기장에 갔을 때 보던 광경을 떠올려본다. 부모님과 아들이 함께 왔는데, 놀랍게도 아들이 원해서 온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아들을 데려 온 것이었다. 어떻게 알 수 있었냐면, 프로게임단 굿즈 샵에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셔츠를 바라보는 부모님을 아들이 말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 부모님이 게임 보는 것을 싫어하셔서, 주무실 때 몰래 거실로 나와 재방송을 봤었던 걸 생각하면 정말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사실 처음에 '여가시간에 무엇을 하시나요?'라는 질문에 게임을 본다고 대답하기 어려운 것은, 아직 이에 대한 인식이 곱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스스로도 자신감을 가지고, 조금 더 너그러워진 사회분위기에서 당당하게 '게임 봅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을 그날이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