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2022년 롤드컵 우승팀 DRX가 전한 감동

by 설묵

96년생, 데뷔 10년 차 프로게이머인 'DEFT' 김혁규 선수가 처음으로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에서 우승했다. 군문제로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그의 도전을 세상은 'Last dance'로 불렀지만, 결국 끝까지 그의 춤은 멈추지 않았다. 롤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각본 없는 드라마 그 자체였던 2022년 롤드컵. 부족한 필력으로나마 롤과 e스포츠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이 감동을 한 번 전달해보고 싶어,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일궈낸 DRX의 우승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




2022년 롤드컵 우승은 한국의 DRX라는 팀이 차지했다. DRX의 우승 과정은 그야말로 소년만화에 비견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항상 상대방보다 전력이 열세라고 취급받았지만, 결국 모든 평가를 뒤집은 것이다.


DRX의 2022년 주전 멤버는 '킹겐' '표식' '제카' '데프트' '베릴'이다. (롤 프로게이머들은 보통 이름이 아닌 ID로 부른다.) 객관적으로 최상위 전력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킹겐과 표식은 한국에서, 제카는 중국에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줬지만, 롤드컵 우승을 노리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앞서 소개한 10년 차 프로게이머 데프트와, 2년 연속으로 롤드컵 결승에 오르며 '롤 도사'라는 별명을 얻은 베릴은 각각 26,25세로, 기량 저하가 걱정되는 나이가 되었다. 특히 데프트는 '원거리 딜러'라는 포지션을 맡았는데, 5개의 포지션 중에서도 손 빠르기와 정교한 컨트롤이 강하게 요구된다. 그래서인지 21세가 넘는 원거리 딜러는 롤드컵에서 우승하지 못한다는 징크스까지 있을 정도였다.


한 편, 올해 한국에서는 4장의 롤드컵 진출권이 부여되었다. 1년간 스프링과 서머, 2번의 시즌을 치르고, 서머 시즌 우승팀과 두 시즌 합산 1위 팀이 롤드컵으로 직행한다. 남은 2개의 티켓은 합산 2~5위 4팀간 선발전을 통해 가렸다. DRX의 2022년 성적은 각각 5위, 6위로 합산 5위였다. 특히 선발전 직전에 선수들의 기량이 눈에 띄게 떨어져, 이들의 롤드컵 진출을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DRX는 베테랑들이 중심을 잡아주는 가운데, 미드 포지션인 '제카'의 활약으로 4번째 롤드컵 진출팀이 되었다.



어렵게 진출하긴 했지만, 여전히 그들이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컸다. 도박사들이 제시한 DRX의 우승 배당률은 41:1로, 8등에 불과했다. (참고로 1위 팀의 배당률은 3:1이었다) 게다가 16강에 곧바로 진출하는 다른 세 한국 팀과 달리, 4 시드로 진출한 DRX는 '플레이 인 스테이지'라고 불리는 최종 예선을 통과해야겠다. 2개 조로 진행된 플레이 인 스테이지에는 하필이면 중국과 유럽의 4 시드와 같은 조로 편성되었다. 2018년 이후로 국제대회에서 중국팀은 한국팀을 압도하였으며, 유럽도 한국 못지않은 성과를 내고 있었기에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나 DRX는 두 팀을 포함한 모든 팀에게 승리를 거두고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였다.


본선 16강에서 DRX를 기다리고 있던 팀은 유럽 1 시드 Rogue, 중국 2 시드 TES,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는 베트남 1 시드 GAM이었다. 특히 TES는 우승 후보로 손꼽히는 강력한 팀이었고, Rogue 역시 저력 있는 팀이었다. 그래서 한국 4팀 중 8강 진출이 가장 어려워 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DRX는 무너지지 않았다. Rogue, TES와 1승 1패를 주고받음과 동시에, GAM이 TES에게 한 경기를 승리하는 올해 최대의 이변이 일어났다. 때문에 TES가 탈락하고, DRX는 우여곡절 끝에 조 1위로 8강에 진출하게 되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TES의 탈락에 관심을 기울일 뿐, DRX가 더 나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대부분 회의적이었다.


8강 토너먼트에 진출한 DRX의 상대는 작년 롤드컵 우승팀이자 중국 3 시드 팀인 EDG였다. 작년보다는 주춤한 모습이었지만, 여전히 DRX보다는 강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좀 더 냉정히 말하면 8강에 진출한 팀 중 DRX에 대한 기대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는 5전 3 선승에서 가장 나오기 힘들다는, '패패승승승'이라는 짜릿한 역전승이었다. 특히 2경기에는 해설들이 '하늘이 DRX를 버렸다'라고 할 정도로, 일어나기 힘든 일이 발생하며 역전패를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멘털을 잡고 끝내 리버스 스윕을 달성하게 되었다.

(롤의 승리 목표는 적팀의 넥서스를 파괴하는 것인데, 억제기를 파괴한 상태에서만 넥서스를 파괴할 수 있다. 경기 중 EDG의 넥서스에 대한 마지막 공격이 들어가기 직전, 억제기가 부활하는 바람에 무적이 되어버리고 이후 DRX의 모든 선수들이 죽어버리며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https://youtube.com/clip/UgkxpFnvYY5YaAgs8RWNC7zSL1JasdCne8xr

(소리 주의)


본선 4강, 올 한 해 국내 리그에서 한 번도 DRX가 이겨보지 못한, 서머 시즌 우승팀 Gen.G가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Gen.G는 올해 각 포지션별로 최고의 인재를 모아, 롤드컵 우승을 위한 '반지 원정대'를 결성했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강력한 팀이었다. 그런데 막상 경기를 시작하니, 1경기를 내주었지만 2경기부터 연속해서 상대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이며 패승승승, 3:1로 승리를 거두었다. 특히 계속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던 '제카'가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잘하는 선수 중 하나로 손꼽히는 Gen.G의 '쵸비'를 압도하는 장면이 모든 롤 팬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DRX의 동화의 종착지인 결승전. 상대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프로게이머 '페이커'가 이끄는 한국 2 시드 T1이었다. T1은 페이커와 함께 2013년부터 10년간 롤드컵 3회 우승, 1회 준우승을 기록한 롤 최고의 명문구단이다. 이번 롤드컵에서도 쟁쟁한 우승후보들을 모두 꺾어버리고 올라왔으며, 모든 선수들의 기량이 그야말로 만개하고 있었다. 역사를 넘어 신화를 써내려 하는 T1과 동화 같은 스토리로 결승에 오른 DRX의 결승전이라는, 역대급 서사가 있는 결승전이었다.(페이커와 데프트가 마포고등학교 동창이라는 깨알 같은 요소도 있었다) 다만 이번에도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T1의 우승을 예측했다.


그러나 결승전에서 더욱 완벽한 팀의 모습을 보인 쪽은 DRX였다. 특히 1년 내내 팀의 불안요소였던 탑 라인의 '킹겐'은 이날만큼은 상대방을 압도하며 결승전 MVP로 선정될 만큼의 활약을 펼쳤다. T1은 모든 선수들이 절로 미쳤다는 소리가 나올 만큼 슈퍼 플레이를 계속해서 보여줬지만, DRX는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후반 집중력에서 앞서기 시작했다. 5경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우승컵은 DRX의 차지가 되었다.


10년간 허락되지 않았던 롤드컵 트로피를 마침내 들어 올린 데프트는, 쏟아지는 눈물과 함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데뷔 후 하루도 빠짐없이 상상하던 일이 이루어졌다. 언젠가 이 자리에 섰을 때 '내가 제일 잘한다'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막상 서고 나니 내가 잘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닌 팀이 제일 잘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 번도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은 적 없던, 그러나 원팀으로 똘똘 뭉쳐 모두 극복한, DRX의 2022년 롤드컵 우승은 이 게임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결코 잊힐 수 없는 감동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나를 비롯해서 어려움에 처한 많은 이들에게, 그들이 보여준 '꺾이지 않는 마음'은 모두에게 희망이 되어 언제까지나 기억될 것이다.


2022년 DRX의 롤드컵 우승을 다시 한번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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