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는 부담스럽지만 관계가 필요한 호모 사피엔스의 딜레마
"인스타그램과 트위터는 지나치게 자극적이다. 온라인에서 나에 대한 글을 읽다 보면 정신이 혼란해진다", "결국 내 정신 상태에 매우 해롭다. 그래서 한 발 물러나 앱을 삭제하기로 결정했다"
톰 홀랜드와 엘리자베스 올슨의 공통점은? 일단 톱스타고, 마블의 히어로였다. 그리고, 둘 다 공개적으로 인스타그램을 그만하겠다고 선언했다. 셀럽들의 '탈 SNS' 선언이 화제다. 새로운 유행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22년도 들어 이러저러한 이유로 SNS를 그만 두기로 했다 셀럽들의 뉴스가 자주 들린다. 까마귀 날자 떨어진 배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트렌드에 시국까지 겹치면서 META의 주가는 정말... 눈물이 앞을 가려 여기까지 하겠다.
최근 커뮤니티에 '대한민국을 망친 최악의 문화'로 '평균 올려치기'를 주장한 익명의 글이 꽤 화재였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해당 글의 저자는 결혼, 학벌 등 다양한 영역에서 통계적 평균보다 훨씬 높은 수준을 삶의 기준점으로 잡고 자신과 타인의 삶을 평가하는 문화가 만연한 세태를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해당 글을 어느 커뮤니티에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었던 건 많은 이들이 내용에 공감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평균 올려치기'가 실재한다고 가정하면, 사실 어떠한 미디어도 그러한 문화 형성에 기여했다는 원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가장 크게 기여한 건 뭐니 뭐니 해도 SNS일 것이다. 눈뜨고 잠들기 전까지 우리의 시선을 가로챈 SNS 속 사람들의 삶에는 온갖 좋은 음식과 멋있는 공간, 재밌는 경험들로 가득하다. 셀럽이나 인플루언서까지 갈 필요도 없다. 나랑 삶의 궤적이 크게 다르지 않다 생각했던 내 친구들도 얼마 전 명품 백이나 좋은 차를 샀고, 비싼 호텔에서 럭셔리한 휴양을 즐겼으며, 시간 날 때마다 힙한 거리에서 예쁜 음식을 먹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도 아직 활력이 남아 있는 사람이라면 '질 수 없지!'라고 속으로 외치며 어떻게든 차려입고 약속을 만들어 나의 삶도 온라인에 전시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부러워하며 그러한 여유가 없는 자신의 삶을 한탄하곤 한다. 거기서 그치면 다행이지만, 소수의 사람들은 '평균적인' 수준의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스스로의 인생을 부끄러워하며 점점 사회와 멀어지기도 한다.
거 참 문제가 아닐 수 없다. SNS는 너무 해롭기 그지없지 않은가. 당장 SNS를 멀리하고 진짜 삶을 살아야 한다!라고 혀 한번 차고 이야기를 끝낼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런 결론은 효용도 없을뿐더러 옳지도 않다. 페이스북의 시대가 도래하기도 전부터 주류 SNS의 트렌드를 선도했던 싸이월드를 즐겼던 나는 SNS의 악마화에 전적으로 동의하긴 힘들다. 우린 SNS에서 소수 취향을 함께 공유하며 동질감을 얻고, 해외에서 만난 친구와 인연을 이어가고, 전화 한 통 못할 만큼 여유가 없어도 인터넷에서 친구의 소식을 확인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경험한다. 혹자는 디지털로 연결된 관계는 거짓이며 환상이니 벗어나야 하는 덫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수없이 많은 영역에서 Digital Transformation(DX)이 이뤄지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사회적 관계만 DX를 거부하는 것은 조금 이상하다. 직접 만나서만 관계 지어지던 인간들이 편지, 전화로 소통하기 시작한 것처럼 기술과 함께 사회관계 형성 과정은 계속 변해왔다. Social, 그리고 Network. SNS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영위하는 사회관계 형성을 온라인에서 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일 뿐이다.
자, 하지만 분명 눈을 들어 잠깐만 둘러봐도, 아니 그냥 거울만 봐도 SNS의 폐단이 눈에 보이는 게 사실이다. 도구는 죄가 없다면 내가, 우리가, 사회가 잘못한 걸까? SNS가 문제가 아니라 인간, 자본주의 자체가 문제인 건가?(어? 이것도 맞는 말 일수도...?) 하지만 여기서 하나. "도구는 죄가 없다."는 말을 돌아보고 싶다.
693, 34. 이 숫자가 무엇일까? 21년도 미국 내 총기 사고 수, 그중 학교 관련 사건 수이다. 미국에선 매일 2건의 총기 사고가 발생하고, 교내 총기 사고 뉴스를 하나 보고 10일 정도만 지나면 새로운 학생들의 사고 소식을 들을 수 있다는 말이다. 3억 3천만 명 정도의 인구를 가진 미국 내 확인된 총기 수만 4억 정 이상이라고 한다. 필자가 업무 차 LA에 갔을 때, 외쿡의 밤거리를 구경하고 싶어 밖으로 나서려다 어디선가 들린 "빵!" 하는 소리를 듣고 고대로 숙소 문을 잠그고 침대에 누워 오돌오돌 떨었던 적이 있다. 그 소리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는 아직 의문이지만 위협의 '가능성'만으로 내 이동의 '자유'를 빼앗긴 신선한 경험이었다.
대한민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총기 소유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총기 소유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주장도 영 얼토당토않진 않다. "총기는 도구일 뿐이다. 도구의 존재가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나쁜 건 그 도구를 악용하는 사람이다. 공동체가 개입한다면 교육이나 처벌 강화 등 그 나쁜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방향이어야지, 도구의 소유 그 자체를 제한해선 안된다. 그건 구더기 무서워 장을 담그지 못하는, 전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과도한 자유의 침해다."
하지만 치안 강국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조금 황당하다. 도구 사용의 자유를 박탈당함으로써 얻는 이동과 행동의 자유를 너무 과소평가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새벽 3시에 맥주 한 캔 들고 공원에 나가도 총 맞을 걱정 없고 내 자식이 학교에서 총에 맞을까 봐 무장한 경비원을 고용하도록 종용해야 할 필요가 없는 사회에 살 때 누리는 효용과 바꿀 만큼 총기 소유의 자유가 중요한지는 잘 모르겠다. 도구는 죄가 없지만, 도구가 나쁜 사람들의 나쁜 행동을 도와 일반 국민들의 자유를 침해한다면 국가는 해당 도구를 제재할 필요도 있는 것 같다.
그럼 SNS는 어떤가? SNS는 총과 같이 가만히 놔두면 사회적으로 폐단이 심각한 도구인가? SNS를 안 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중년 게이머 김실장'이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학교 교사들을 불러놓고 게임에 대한 이야기하는 에피소드를 본 적이 있다. 거기서 한 교사는 요즘 학생들에게 게임은 그저 재밌게 시간을 보내는 수단이 아니라 SNS이자 교우 관계를 맺는 핵심 커뮤니케이션 도구라는 말을 했다. 생각해보면, 내 유년기도 다르지 않았다. 나에게 게임은 친구를 만드는, 만나는, 친해지는 수단이었고 지금껏 연락하는 학창 시절 친구들은 '단 한 명도 빼놓지 않고' 게임을 함께했던 친구들이다. 나에겐 배틀넷이 메신저고 SNS고 파티장이고 사교모임이었다. 숫기 없고 낯 가리던 나에게도 친구는 필요했고, 게임이 내게 선물해준 친구들은 내 유년기 캔버스를 톤업하는데 너무 큰 기여를 했다.
사회는 너무 많이 변했지만, 우리의 DNA는 30만 년 전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호모 사피엔스, 사회적 동물. 관계 맺음이라는 본능 덕분에 지구상 다른 어떠한 종보다 우위에 선 종족. 생존의 위협을 벗어나기만 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사회적 관계를 갈구하고, 거기서 파생되는 감정들이 한 인간의 인생을 좌지우지한다. 사랑, 우정, 성공, 권력, 명예, 인정, 뭐가 됐든 결국 인간은 관계 속에서 자신을 정의하고 관계의 개선을 목표로 살아간다. 누군가는 오프라인에서, 누군가는 온라인에서. 그리고, 그렇기에 한번 형성된 관계는 쉬이 버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관계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독립적으로 제거할 수도 없다. 관계는 인간의 자아와 강하게 결부되어 있다.
이미 SNS로 관계 맺어진 사람들에게 SNS는 해로우니 하지 마! 라는 말은 공허하다. 일견 무책임하기도 하다. 코로나 등을 겪으며 온라인 관계에 더 깊이 매몰된 현대인에게, 탈 SNS는 선택의 문제가 아닌 시간과 준비가 필요한 고행이다. 심지어 당위도 의심된다. 어떠한 좋은 도구도 부작용은 있게 마련인데, 그런 부작용 때문에 온라인에서 관계 맺는 행위 자체를 포기해야 한단 말인가? 물음에 대한 정답이 이미 문장에 나와 있는 듯하다. SNS가 좋은 도구라면, 부작용을 없애거나 줄이면 되지 않을까. 과도하게 주변 사람들의 인정 리액션에 몰입하고, 예쁘게 꾸며진 타인 삶의 일면을 자신과 비교하며 주눅 들고, 온라인에 전시된 내 계정을 자아와 결부시켜 스스로 부담을 가중시키는 등의 부작용들. 이런 부작용을 없애거나 줄일 방법이 있다면 온라인에서의 관계 맺음 활동이 훨씬 건강하고 효과적으로 사람들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만약 자본의 의지가 그러한 방향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총기를 규제하는 것 처럼 사람들의 멘탈에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하기 위해 공동체가 해야할 행동도 함께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난 지금 IT 스타트업에서 SNS를 만들고 있다. 유저들은 사진, 영상이 아니라 자신이 그린 그림을 기반으로 소통하게 된다. 현실 세계의 배경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관계 맺음에 부담이 적다. 하지만 체리픽은 대안 SNS가 아니다. 인스타, 트위터, 유튜브 등 기존 SNS의 문법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하지만 동시에, 관계 맺음에 '부담'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한 고민도 아주 진지하게 하고 있다. 타인에게 노출되는 정보를 제한하거나, 남과 비교하는 요소보다 자신과 경쟁하는 요소를 소셜 네트워크에 녹여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과몰입을 줄여 초기 서비스의 발전에 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탈SNS가 뉴스가 되는 현대 사회에서, 지속 가능한 온라인 관계 맺음 문화를 위한 고민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게 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