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주택 확대가 답이 될 수 없는 이유
앞선 글에서 저는 투자와 투기의 차이를 이야기했습니다. 투자는 현재의 만족을 유보하고 미래의 가치를 준비하는 것이고, 투기는 조급하게 시세차익을 노리는 즉각적 베팅이라고 했습니다.
이 구분을 떠올리면, 요즘 부동산 논쟁에서 자주 거론되는 갭투자와 영끌이 왜 사회적 비판을 받는지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세 보증금을 활용하는 갭투자는 세입자를 위험에 노출시키고, 집값과 전세가를 동시에 끌어올립니다. 영끌 역시 과도한 대출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금융 불안을 키우고, 단기간에 집값 거품을 만들며, 세대 간 갈등을 심화시키지요. 개인의 선택으로만 보면 합리적인 전략일 수 있지만, 이런 행위가 누적되면 사회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갭투자를 똑같이 투기로 몰아붙이는 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1주택자가 빌라에 거주하면서 전세를 끼고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하는 경우를 떠올려 봅시다. 이는 현재의 주거 만족을 줄이고 미래를 준비하는 고단한 투자일 수 있습니다. 다주택자가 여러 채를 보유하며 시세차익만 노리는 행위와는 결이 다릅니다.
그래서 저는 ‘갭투자’를 곧바로 ‘갭투기’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모든 갭투자가 투기의 범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 채를 마련하기 위해 주거 만족을 줄이고 미래를 준비하는 경우와, 여러 채를 보유하며 시세차익만 노리는 경우를 같은 이름으로 묶는 것은 부당합니다. 갭투자를 모두 갭투기라고 부르는 순간, 실제로 고단한 투자를 감내하는 개인들의 노력까지 싸잡아 비난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지점을 간과한 채, 주거 불안을 해결할 해법을 오직 공공주택 확대에서만 찾으려는 시각입니다. 경제학적으로 공공재는 비배제성과 비경합성을 가진 재화를 뜻합니다. 국방, 치안, 가로등이 대표적이지요. 그러나 주택과 토지는 누군가 쓰면 다른 사람이 동시에 쓸 수 없는 전형적인 사적재입니다. 주택은 필수재일 수는 있어도 공공재는 아닙니다.
우리의 역사도 이를 잘 보여줍니다. 이승만 정부 시절 농지개혁은 국유화가 아니라 토지의 사유화를 확립한 사건이었습니다. 소작농이 자기 땅의 주인이 되자 생산성이 늘었고, 토지는 자산 축적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한국 사회가 가난을 벗어나고 산업화로 나아간 동력은 바로 이 사유화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만약 국유화나 공공주택 중심 정책만 펼쳤다면 지금처럼 빠른 성장과 자산 축적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주거 문제의 해법은 공공주택 확대라는 일차원적 접근에 있지 않습니다. 시장의 역동성을 유지하면서도 취약계층의 주거 안정을 보장할 수 있는 균형 있는 제도 설계가 필요합니다. 사유화의 성과를 유지하되, 공공성을 보완하는 정책적 지혜가 답입니다.
집을 공공재로 규정하는 구호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시장의 힘과 공공의 역할 사이의 균형입니다. 그 균형 속에서만 지속 가능한 주거 안정이 가능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