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위기설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반도체 등 주요 부분에 대한 전망 불투명과 기대를 밑는 실적 등으로 국내를 포함한 글로벌 사업장에서의 인력 감축과 주가 폭락 등 악재가 잇달아 터져 나오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실적 부진과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적자 장기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며 주가가 연일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시장에서는 반도체 위기설과 함께 삼성전자 위기설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은 필리핀 칼람바에 있는 삼성전기 생산법인을 찾았다. MLCC(적층세라믹커패시터) 사업을 점검한다는 이유였다.
연일 하락하고 있는 삼성전자 주가와 더불어 삼성전자와 반도체 사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시점에 너무나 여유있는 행보다.
이재용 회장은 MLCC 사업을 맡는 삼성전기 사업장을 가끔씩 찾아 경영진과 미래사업 전략을 논의하고 있다.
MLCC는 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한 만큼 안정적으로 공급, 반도체가 원활하게 동작하도록 하는 부품으로, 최근 자동차와 스마트폰용으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MLCC 시장규모가 2028년 9조5천억 원으로, 2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에 IT용 MLCC가 1천개 가량 탑재되는 데 비해 전기차에는 전장용 MLCC가 최대 2만개가 탑재되고, 가격도 3배 이상 높아 차세대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손꼽힌다.
MLCC는 삼성이 차세대 사업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는 사업이기는 하지만 삼성의 수장인 이재용회장이 전자부문을 제쳐두고 올인할 정도는 아니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분석이다.
삼성전자의 위기론은 시장 반응이 실제보다 많이 과장된 면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8일 발표될 3분기 잠정 실적에서 영업이익 전망치(컨센서스)가 11조2,313억 원으로 한 달 전보다 2조 원 이상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주가가 6만 원대 이하로 떨어졌고, 반도체 사업 부진 전망으로 해외인력 감원 보도가 나오면서 삼성의 반도체 사업 경쟁력에 대한 우려가 회사 전체 위기설로 증폭됐다.
지난해 주력 분야인 메모리 사업이 사상 최악의 불황으로 영업이익이 15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고 올들어서는 본격적인 반등에 성공했지만, 하반기 들어 회사 매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DDR4 등 범용 메모리 부문이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고수익 제품인 HBM(고대역폭메모리)이 SK하이닉스 등 경쟁사에 뒤처졌고 주요 제품의 낮은 수율 문제가 잇달아 터져 나오면서 경영진 리더십과 조직력이 도마 위에 올랐다.
삼성전자는 3나노미터 파운드리 공정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지만 오랜 기간 수율 논란 등으로 일감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세계 1위 TSMC와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지난 4월 삼성 미래사업기획단장을 맡았던 전영현부회장을 긴급 투입, 반도체사업 추스르기에 나섰으나 아직은 가시적인 변화는 나오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용회장의 리더십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회장은 지난해 10월 화성 반도체연구소를 방문, 연구소를 2배로 키우겠다고 발표한 이후 일체 반도체사업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재용회장의 ‘사법리스크’가 회사 경영에 올인하지 못하도록 하는 원인일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삼성그룹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검찰의 항소로 지난 1일 2심 재판이 다시 시작됐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현재로는 위기 상황은 아니지만 주력인 반도체 사업에서 절대적 기술 우위을 빠르게 상실해 가고 있고, 디바이스와 가전부문도 성장률이 떨어지고 있는 등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인 만큼 지금 시점에 이재용회장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면 진짜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