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웃풋’이라는 조급함 내려놓기 -
우리 집의 네 기둥을 모두 세우고 나니, 마음 한편이 든든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불안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매일같이 영어책을 읽어주고, 노래를 들려주고, 놀이를 하는데… 그래서, ‘결과물’은 언제쯤 나오는 걸까요?
마트에서 외국인을 만났을 때 아이가 “Hello!” 하고 인사하는 상상, 영어 영상의 주인공 대사를 술술 따라 하는 상상. 이런 달콤한 기대를 품고 아이에게 “이거 영어로 뭐야?”라고 물었다가, 묵묵부답인 아이의 모습에 실망하고 조급해진 경험, 저만 있는 건 아니겠죠?
‘혹시 내가 뭔가를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렇게 쏟아붓기만 하는데, 혹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아닐까?’
이처럼 ‘아웃풋’에 대한 집착은, 우리가 정성껏 지은 ‘영어가 스며드는 집’에 살지 못하고, 매일 줄자만 들고 다니며 벽의 높이를 재는 것과 같습니다. 집 안에서 아이와 함께 웃고 뒹구는 행복을 놓친 채 말이죠.
저는 어느 날, ‘밑 빠진 독’이라는 불안한 비유 대신, ‘언어 우물’이라는 새로운 비유를 떠올렸습니다. 아이의 마음속에는 아직 보이지 않는 깊고 투명한 ‘언어 우물’이 하나씩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들려주는 영어 노래 한 곡, 읽어주는 그림책 한 권은 그 우물을 채우는 맑은 물 한 바가지와 같습니다.
우물의 깊이는 아이마다 다릅니다. 어떤 아이는 우물이 얕아 금방 물이 넘쳐흐르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우물이 아주 깊어 한참을 채워야 할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붓는 물이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우물 안에 차곡차곡 쌓여 언젠가 넘쳐흐를 날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조급하게 우물 안을 들여다보며 “왜 물이 안 차오르지?”라고 묻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묵묵히, 그리고 즐겁게 사랑이라는 물을 길어다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아웃풋’을 유창한 영어 문장으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보내는 작은 신호들 역시 소중한 아웃풋입니다.
영어 노래를 들으며 어깨를 들썩이는 몸짓
책 속의 강아지 그림을 보며 “멍멍!” 하고 외치는 소리
엄마가 “Apple”이라고 말했을 때, 사과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행동
이 모든 것이 아이의 우물에 물이 차오르고 있다는 증거이자, 아이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영어를 소화하고 있다는 빛나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이런 작은 신호들을 발견하고, 기뻐하고, 폭풍처럼 칭찬해주는 ‘섬세한 관찰자’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언어는 계단식으로 성장한다고 합니다. 한참을 제자리걸음인 것 같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껑충 뛰어오르는 순간이 찾아온다는 뜻이죠. 그 ‘제자리걸음’처럼 보이는 시간이 바로, 아이의 우물에 물이 가득 차오르는 ‘보이지 않는 시간’입니다.
오늘도 아이가 영어 단어 하나 내뱉지 않았다고 실망하지 마세요. 대신, 아이와 함께 영어책을 보며 웃었던 시간을, 영어 노래에 맞춰 춤췄던 순간을 소중히 여겨주세요. 아이는 침묵 속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세상을 향해 넘쳐흐를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요.
다음 편에서는, 이 ‘보이지 않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게 만드는 또 다른 복병, “엄마, 나 영어 하기 싫어!”라고 아이가 선언했을 때, 우리가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