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와 도자
약 두 달 전 어느 금요일, 여느 때처럼 아이를 재운 후 어두운 방 안에서 몇 시간째 스마트폰을 하며 불면의 밤을 보내던 중이었다. 검색은 검색을 낳고, 행동에 앞서 머리에 생각만 많아지는 스스로를 보며, 문득 항상 궁금했던 동네 도자 공방을 떠올리게 되었다. 머리를 벗어나기 위해 손을 써서 뭔가를 만들어야겠다! 검색해 보니 바로 다음 주 월요일 아침 시작하는 두 달간의 초보 수업에 아직 자리가 있어 등록 버튼을 누르고 잠에 들었다.
첫 수업 시간 들어서는데 이미 아는 얼굴이 있었다. 4살 아이를 키우며 동네의 육아 커뮤니티를 다른 엄마 몇몇과 개설해 운영해 온 제나였다. 이미 올해 초부터 수업을 들어온 데다 미대에서 도자 수업을 들은 적 있는 경험자이다. 그리고 하나 둘 다른 수강생들이 모였다. 율리시스라는 신화적 이름의 수강생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여성들이었다. 반 이상은 아이들을 유치원이나 학교에 데려다준 후 온 엄마들이었고, 첫 아이를 임신한 수강생도 있었다. 온라인으로 수업 신청 시, 수업에 쓸 흙을 다양한 빛깔 중 고르는 신나는 과정이 있었는데 난 Brooklyn Red라는 이름의 붉은 흙을 선택했다. 선생님이 흙을 나눠주는데 다들 흰색이나 회색이었고 붉은색은 내가 유일했다. 선생님은 흙을 다지고 둥글게 빚어 물레 중간에 탁 올려놓고 손에 물을 묻혀 중심을 잡고 마술사처럼 흙을 아래로 내렸다 위로 올렸다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구멍을 뚫어 안이 빈 원통 모양을 만드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런 마법이 다 있다니! 정작 난 일단 중심 잡는 것에서 헤매었고, 이리저리 움직이던 나의 흙덩이는 물레에서 떨어지거나, 두 동강이 나서 결국 첫 시간 동안 빈 원통 만드는 것은 실패했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왜 이렇게 능숙한지! 알고 보니 물레를 태어나 처음 만져보는 나 같은 진짜 초보 수강생은 두 명 더 있었고 나머지는 이곳이나 타 공방에서 도자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붉은 흙을 왜 나만 선택했는지는 밝은 색 흙을 쓰는 사람들에 비에 배가 드는 뒷정리와 청소를 하며 깨닫게 되었다.
이후의 수업에서 또 반가운 얼굴이 들어왔다. 곱슬머리에 강한 눈빛, 멋진 풍채로 내게 존재감을 각인시킨 사마라 역시 2살과 5살 아이의 엄마로, 친구 레이첼의 친구이다. 아이 둘 키우며 시간 내기 쉽지 않기에 첫 수업 둘은 놓치고, 일주일에 두 번 주어지는 연습시간도 거의 써먹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게 벌써 두 번째 학기란다. 처음에는 혼자 흙을 만지며 헤매기 바빠 다른 사람들의 대화가 귀에 잘 들리지도 않았다. 중심 잡기와 자세가 조금 더 익숙해질 때 즈음 다른 수강생들의 얼굴도 익고, 목소리도 들리게 되었다. 이내 수강생들은 우물가의 아낙네 마냥 육아와 학교, 동네 이야기 등으로 공방을 채운다.
수년 전, 잠시 디지털 제작 공방을 운영 일을 했을 때 3D 프로그램으로 제작한 모델을 3D프린터로 출력하는 강좌를 했었다. 물론 모델링의 미숙, 기계적 오류로 인해 시행착오가 걸리긴 하지만, 그래도 컴퓨터 상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기계로 출력해 내는 일은 예상 안에서 이루어진다. 아이 출산을 전후로 난 이상하게도 10여 년간 걸쳐놓았던 이런 기술 기반의 창작 행위에 흥미가 점점 떨어졌다. 현실 육아는 그런 창작의 과정과는 동떨어져있다. 아이가 아기일 때 읽었던 육아서의 내용은 이제 생각도 나지 않는데, 아무리 그 좋은 육아서라 할지라도 3D 프린터의 사용설명서를 읽듯 매끄럽게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상황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어떤 숭고하고 이상적인 육아철학이라는 3D 모델이라는 입력값이 있다 하더라도 현실육아는 같은 출력값이 나오지 않고 말 그대로 몸으로 부딪치고 우당탕탕 엉망진창이다. 도자가 내게 위안을 준 부분을 바로 여기서 육아와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보여주실 땐 분명 쉬워 보였던, 안이 파인 원통형을 만들기 위해 앞치마와 바지와 신발과 옷과 얼굴에 붉은 흙 범벅을 한 채로 목이 결리게 고군분투를 하는 걸 한 2주 반복하면 그나마 어설프게 비슷한 모양이 나올까 말까 한다. 생각과 현실이 다르며 이상의 입력값을 현실의 출력값으로 가져가는 과정 역시 엉망진창이다. 그 과정에서 멋모르고 원대했던 이상을 적용가능한 현실에 타협한다. 이 모든 게 도자와 육아가 닮은 점이다. 어쩌면 현실세계의 모든 일은 더 자주 이렇게 엉망진창이 아닐까. 한편 화면으로 이루어지는 우리의 기술은 어떤가, 이제 3D 모델링은 AI를 통해 말로만 해도 지니처럼 뚝딱 가능하다. 이렇게 기술이 구현하는 세계가 완벽에 가까운 이상에 가까워질수록, 불완전하고 평범한 몸과 마음으로 부딪쳐야 하는 엉망진창인 messy 한 현실은 더 비루해 보인다. 그래서 한편으론 이렇게 나의 비루한 몸의 불완전한 입력값과 출력값으로 온전히 부딪쳐야 하는 도자 같은 영역을 초보자로 도전하는 것이 내게 묘한 치유가 되었다.
3달간의 수업에서 누가 봐도 엉터리 초보의 투박한 모양인 컵, 접시와 그릇 몇 개가 나왔다. 가장 큰 수확은 나의 밥공기로 쓸 수 있으며 아이의 오트밀이나 시리얼 그릇으로 적당한 크기의 그릇 하나이다.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는 그 시간 동안, 흙을 만지며 나의 마음도 다지고, 물레 위에서 흙의 중심을 잡아가면서 나도 육아로 들쭉 날쭉하던 나의 중심을 찾아갔다. 집에 있는 다른 식기와 달리 아귀가 맞지 않아 서로 겹쳐놓기 힘든 들쭉날쭉한 못난이 컵, 접시와 그릇이 찬장의 한편을 차지한다. 완벽하지 않은 이들을 사랑하며 완벽하지 않은 현실의 나를 사랑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