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호칭의 정치

낯선 사람을 부르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용어를 찾아서

by 무아과

예전에 러시아에서 누가 길거리에서 ‘젊은이!’라고 부르기에 돌아봤더니 당시 (20대 초반의 내 시각으로) 중년으로 보이는 남자분을 칭하고 있어서 의아했던 적이 있었다. 알고 보니 젊은이, 혹은 숙녀는 나이에 관계없이 러시아에서 낯선 사람을 부르는 일반적인 호칭이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스스로 줄곧 써오던 표현들이 내가 가르쳐주고 물려주고 싶은 관습인지 자문하게 된다.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사람들을 부르는 호칭, 특히 낯선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다. 낯선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 얼마나 정치적인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특히 한국어에서는 상대의 짐작되는 나이, 짐작되는 직업 및 사회적 위치와 나의 나이 및 사회적 위치에서 호칭이 정립되는지라 설명하기도 미묘할뿐더러, 호칭에 섣부른 판단과 편견이 개입되기 쉽다.


당신이 성인 여성이라면 나이에 상관없이 아가씨, 아줌마, 언니, 이모, 이모님, 사모님, 여사님, 할머니 중 길거리에서 낯선 사람에게 어떤 호칭으로 불리고 싶은가. 여성을 특정하는 이 다섯 단어 중 내가 불리고 싶은 정답이 없다. 차라리 ‘저기요’라고 불러주었으면 좋겠다. 유독 우린 여성을 부를 때 쉽게 상대의 나이와 지위를 짐작, 판단하고 표현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낯선 남성을 특정해 부르는 호칭은 아저씨 정도밖에 없는 듯하다.


상대가 나의 나이나 짐작되는 지위 등으로 나를 규정하여 부를 때, 그게 하대일 경우는 모멸감, 우대일 경우는 오만감이 들기가 쉽다. 그래서 우대를 받으며 하대를 하는 게 익숙해진 중년 이상의 어느 정도의 지위에 오른 사람들이 꼰대가 되기 쉬운 게 아닐까. 어린 나이에 미국 대학원을 입학했을 때, 나보다 열 살이 넘는 처음 보는 한국 선배가 보자마자 반말로 한국 학생들 모임에 왜 나오지 않느냐고 물어보는데 당시 어린 마음에 그 어조가 참 부담스러웠다. 바로 그런 이유로 더 안 나가고 싶을 만큼…그 이후 처음 보는 사람이 어려 보인다는 이유로 쉽게 말을 놓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또 반추해 본다. 나는 낯선 사람을 만날 때 얼마나 속으로 판단하고, 존중의 정도를 가감하는가? 상대는 얼마나 그것을 느낄까?


아이에게 낯선 사람을 뭐라고 칭하게 할까 고민하다가 길에서 본 어떤 사람을 3인칭으로 부를 때 ’ 남자분‘ ‘여자분‘이라는 단어를 써본다. 앗, 자신을 생물학적 성별로 규정짓지 않고 they/them이라는 대명사로 불리길 원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2020년대 미국생의 아이에게 이것도 뒤쳐지는 표현 아닌가? 그냥 사람이라고 하자…


특정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성중립적이며 존중의 의미가 담긴 ‘선생님‘이라는 표현을 시도해 보았다. 아파트 건물을 청소하시는 분이나 음식점에서 서빙하시는 분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직업군에 있는 사람들을 다 뭉뚱그려, 의사 선생님이나 학교선생님처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모두 각 분야와 위치에서 우리에게 배움을 주시는 분들 아닐까 하는 존중의 마음으로. 그런데 여기에도 어긋나는 부분이 생겼다. 아이가 그걸 문자 그대로 번역하여 영어로 이야기할 때 teacher라고 부르니 더 혼란을 낳게 된다.


아이 덕에 관습적인 언어를 다시 생각하고 다시 고민하게 되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딸이야 말로 나의 선생님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한국에서 학습된 몸을 탈교육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