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되기 위해 몸과 유리되는 법을 배우는 아이들
아파트 뒷마당에서 놀다가 아이가 단지 내 작은 헬스장에 들어가자고 한다. 마침 아무도 없는 헬스장에 아이와 들어선다. 이사 와서 출산, 육아 후 거의 쳐다도 보지 않던 이곳을 나도 최근 몇 주 동안에야 이용하기 시작했다. 한 벽면을 차지한 거울 앞에서 자기는 밸런스 돔 두 개를 깔아달라고 하며 엄마는 트레드밀을 뛰고 있으란다. 아이는 올여름 한국 외갓집의 큰 화면으로 김연아의 스케이팅 영상을 접한 이후 춤추는 것에 흠뻑 빠졌다. 아이를 등지고 트레드밀을 뛰며 흘긋흘긋 아이가 뭐 하나 뒤를 돌아보면 거울을 보고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다가 배워본 적도 없는 발레 비슷한 동작을 해보기도 한다. 이렇게 자신의 몸의 무한한 가능성을 알아간다.
한국에서 여자로 태어나 성인이 되기 전까지 나의 몸과의 관계를 돌이켜본다. 아이를 데리고 항상 공원으로 나도는 지금의 나와 달리 엄마는 주변에 공원 같은 시설이 없던 그 시절 주로 집에서 나를 키웠는데 오죽하면 유모차도 없었다고 한다. 외갓집 사촌남동생들이 항상 뛰어다닐 동안 조용히 앉아 노는 날 더러 외할머니는 이런 아이는 열이라도 키우겠다고 했다. 유치원에서 부채춤을 추는데 동작을 잘 못 따라 해서 선생님에게 머리에 꿀밤을 맞아 혹이 난 채 엉엉 울며 집에 돌아오기도 했다. 외동이라 혼자 책만 보고 커서 아이들과 줄넘기 놀이도 박자를 못 맞춰 못하고, 피구 시간엔 공이 무서워서 피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체육 시간은 항상 빠지고 싶고 피하고 싶은 시간이었는데 특히 이차성징이 한창이던 중학교 1학년, 많은 남성교사들이 그렇듯 비속어, 언어적 신체적 성희롱을 일삼던 체육교사가 반장인 내게 차렷 할 때 가슴 펴라고 등을 두드릴 때면 온몸이 오그라들었다. 체력장에서 달리기는 항상 꼴찌, 윗몸 일으키는 아예 겨우 하나 하는 정도였으며, 자전거는 대학교 1학년이 되어서야 단짝 친구와 그의 남동생에게서 배웠다. 그랬던 내가 나이 사십이 넘어 세 돌 아이를 뒤에 태우고 브루클린의 복잡한 도로를 자전거로 달릴 줄이야….
정도의 차이지만 대부분의 한국의 학창 시절 어른이 학생에게 기대하는 것은 의자에 오랫동안 앉아서 공부하는 것. 엉덩이 힘이 학생의 대학을, 미래를 결정짓기에 학생의 엉덩이는 학교 의자에서 학원 의자로, 학원 의자에서 독서실 의자로, 집의 공부방 의자로 옮겨진다. 이렇게 공부하면 의대에 갈 수 있어! 의사가 되기 위해 몸과 유리되는 법을 일찍부터 배운다. 척추는 경직되고, 관절은 굳어지며, 기혈은 정체되고, 배움은 몸을 통한 체득이 아닌 기계적으로 머리로만 입력된다. 거북목에, 굽은 척추와 뻣뻣해진 허리….
현재 나의 몸은 탈교육의 과정에 있다. 잠시라도 이 탈교육과 자각을 멈추면, 나의 몸이 학습된 경직으로 돌아가는 게 느껴진다. 고개가 숙여지며 어깨는 솟고, 배이 힘은 한 없이 풀려버린다. 이제껏 거쳐간 몸으로 하는 많이 않은 활동들 중 가장 즐기는 움직임은 춤이다. 유치원 이후 집단 안무 트라우마가 생겨서일까, 역시 홀로 추는 막춤이 제일이다. 그냥 음악, 또는 그 순간의 기운에 따라 춤을 추다 보면 내가 춤을 추는지, 춤이 나를 추는지 모를 만큼 내가 잊어지고 춤만 남을 때가 있는데 그때 느끼는 오로지 그 존재 자체의 희열은 잊히지 않는다. 다시 태어나면 그냥 춤을 추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춤이 좋은 시절도 있었다. 그랬던 내가 8월의 한 여름밤 공원 축제에서 처음 만난 여덟 살 아이를 따라다니며 춤추는 세돌박이 딸을 본다. 빨간 두건에 흰 셔츠와 흰 치마를 입은 여덟 살 아이는 팔을 위로 휘저으며 반짝이는 눈으로 빨간 드레스를 입은 딸아이를 바라보고 한 바퀴 돌더니 더 큰 원을 그리며 뛰다가 매끄럽게 풍차 돌리기를 한번 하고, 신이 난 딸아이는 언니가 하는 모든 움직임을 한 박자 느리게 따라 한다. 좀 지쳤는지 돗자리에 누워버린 딸아이에게 빨간 두건 아이는 손을 내밀고 아이는 다시 일어나 언니 손을 잡고 박자에 맞춰 제자리에서 뛰다가 언니를 이끌고 큰 원 한 바퀴 뛰면서 춤춘다. 마지막으로 춤을 춘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어느덧 9월, 오늘 저녁엔 음악을 틀고 혼자 막춤을 추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