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이당 퇴근길 주역 중산간 괘 후기
최근 1개월 간 유튜브 중독에 빠져있었다. 낮잠도 안 자고 기운이 뻗치는 3살 아이를 기관에 보내지 않으며 육아하며 온전한 내 시간은 가뭄에 콩 나듯이 난다. 새벽 아이 기상 전 일어나 홀로 달리기로 하루를 시작하고, 일주일 한 두 번 아이가 수업에 가거나 아빠와 보내며 생기는 짧은 자유시간 동안 밀린 정리, 공부, 운동을 하는 것이 나의 목표였건만… 휴식을 취하거나 잠을 자야 할 육퇴 후 밤시간, 정리나 공부를 해야 할 낮 자유시간을 스트레스 해소라는 명목으로 유튜브로 채우면서 수면과 깨어있는 삶의 질이 동시에 떨어졌다.
艮其背, 不獲其身, 行其庭, 不見其人, 无咎.
간기백, 불획기신, 행기정, 불견기인, 무구.
등에서 멈추면 몸을 얻지 못해 뜰에 가서 사람을 보지 못해 허물이 없다는 간괘의 괘사는 일단 내게 핸드폰이나 아이패드를 보기도 전에 멈출 것을 말한다.
初六, 艮其趾, 无咎, 利永貞.
초육, 간기지, 무구, 리영정.
발꿈치에서 멈추어 허물이 없으니 오랫동안 올바름을 유지한다는 초육효 역시 내 손이 핸드폰의 유튜브 버튼을 누르려할 때 그 손 역시 멈추어야 한다고 재차 경고한다. 일단 핸드폰의 유튜브 앱을 삭제한다.
六二, 艮其腓, 不拯其隨, 其心不快.
육이, 간기비, 부증기수, 기심불쾌
하나의 중독을 멈추자 온라인 쇼핑 중독이라는 다른 하나가 따라붙는다. 육퇴 후 아이를 위해 사야 하는 물건 및 간식 등등을 인터넷으로 내가 굉장히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며 어둠 속에서 2시간째 후기 검색까지 하며 마구마구 물품들을 장바구니에 무얼 담는 중……앗! 한 순간의 다시 고침으로 장바구니의 30개가 넘는 물품들이 사라져 버렸다. 장딴지에서 멈춰 구제하지 못하고 따르게 되니 마음이 불쾌한 채로 새벽 한 시가 넘어 잠이 들어버린다.
九三, 艮其限, 列其夤, 厲薰心.
구삼, 간기한, 열기인, 려훈심.
긴장과 경직이 과도해진 채로 정신없이 잠이 들어 일어날 때를 놓치고 벌떡 일어나니 허리가 뻑뻑하다. 마땅히 꾸준히 움직이고 단련해야 할 몸의 다른 부위들을 쓰지 않아서 많은 현대인은 허리에 문제가 생긴다. 대부분의 본업을 앉아서 지속해야 하는 직장인이나 학생들에게 구삼효는 ‘공부나 업무, (혹은 게임이나 매체 시청)가 허리의 한계를 시험하기 전에 멈추고 몸을 움직이라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카페에 앉아서 후기를 쓴 지 어느덧 1시간째,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다.
六四, 艮其身, 无咎.
육사, 간기신, 무구.
카페 카운터의 맛있어 보이는 빵들을 한참 바라보다가 따뜻한 강황라테와 작은 쿠키를 시켰다. 몸에서 멈추는 것이 허물이 없다는 육사효의 효사가 지금 내 몸에게 마땅히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바로 멈추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지금 속이 안 좋은데 빵을 시켜야 할까? 조금 피곤하더라도 지금 운동하러 가야 할까?
六五, 艮其輔, 言有序, 悔亡.
육오, 간기보, 언유서, 회망
광대뼈에서 그치라는 육오호의 조언처럼 나는 꼭 필요한 말을 쓰고 있는가? 순서 있게 말을 글로 옮기고 있는가? 글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본다.
上九, 敦艮吉.
상구, 돈간길.
중산간 괘는 나태와 과로의 경계 사이를 왔다 갔다 해오던 그간의 나에게 멈춤의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라고 가르친다. 독실하게 멈추면 길할 것이라는 상구효의 조언을 따라 부단히 멈추는 연습을 하며 중도를 잃었던 일상을 다시 산처럼 견고하게 다져야겠다.
-후기의 후기
이 글을 다듬는 지금, 유튜브 중단 7일 차이다. 자칫 온라인 쇼핑이라는 또 다른 중독으로 이어질 뻔할 때, 마음속으로 중산간 괘의 메시지를 되새겼다. 주역 수업을 들은 지 어느덧 중반부를 넘어서는 중인데, 고국 방문 여행 후 일상의 패턴이 흐트러지면서 잠시 나태해졌던 내게 큰 가르침을 준 괘이다. 일상 속 실천에 옮긴 첫 괘인데, 괘사와 효사를 일관되게 신체 부위로 묘사하는 것은 몸과 마음의 진정한 치유와 연결, 자기 사랑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내 몸이 아니라고 할 때 멈추는 것, 그것이 내가 나를 가장 사랑하는 자기 사랑, 자기 치유가 아닐까? 무더운 8월, 중산간 괘는 축 늘어져버린 수동적 멈춤이 아닌, 온 감각이 깨어있는 적극적인 멈춤으로 우릴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