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의 그레고르 잠자
부엌에 벌레 한 마리
뒤집혀 있다
등이 둥근 방패 같아서
스스로 일어서기 버겁다
차라리 바람이라도 불면
누군가 건들기라도 하면
그걸 타고 일어설 텐데
거센 바람이나
천적의 위협이
때론 위기에서
일어설 수 있는
동기가 될 수 있지 않나
힘들게 일어선 이후
배부른 천적을 만나면
생명을 보장받을 수 있으나
배고픈 천적을 만나면
결국엔 잡아먹힐 것이다
믿고 있던 지지조차
천적으로 변태해갈 때
죽음보다 생명이
도리어 지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들은 변하지 않았다
원래 그랬던 것이다
가족이라는 미명으로 안심했을 뿐
변신의 그레고르 잠자처럼
*노린재라는 벌레 한 마리가 부엌으로 들어왔다. 나는 벌레를 보면 휴지로 싸서 잡거나 터트리는 건 싫어서, 병뚜껑이나 종이컵 등으로 곧잘 가두곤 했다. 일종의 놀이였다. 종이컵으로 가뒀다 여니까 노린재가 뒤집혔는데, 등이 둥근 방패 같아서 홀로 일어서지 못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앞, 중간 네 다리는 짧아 땅에 안 닿고, 뒤 두 다리는 비교적 길어 땅에 닿긴 하는데, 일어서기엔 역부족이었다. 카프카의 '변신'이란 소설이 생각났다. 잠에서 깨어 출근하려 일어서려는데, 침대 위에서 벌레로 변해 어찌할 줄 모르는 장면이 떠올랐다. 가족들의 생계는 그레고르에게 달려있다. 문을 닫고 출근 못 하는 그레고르를 가족이라는 미명으로 포장해 걱정한다. 하루 아침에 벌레로 변신한 자기를 보고는 외면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리라.
다시 종이컵으로 가뒀다. 그리고 10초쯤 뒤에 다시 열어보니, 종이컵 안 쪽에 붙어있었다. 이 노린재는 자신을 가뒀던 종이컵의 안쪽 벽을 딛고 일어선 것이었다. 노린재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우리는 삶을 살면서 무수한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뒤집힌 삶일수록 차라리 후폭풍 같은 거센 비바람이 때론, 우리를 일어설 수 있게 만드는 힘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다시 일어선 노린재를 보고 생각한다. 그 살고자 하는 버팀이 눈에 선연해 노린재의 삶을 밖으로 다시 보내주었다. 여기까지는 동화 같은 이야기이다.
현실의 어른을 만났다면 파리채로 가차 없이 스매싱당했을 것이다. 외롭고도 처참하게. 뼈가 없어 물컹하며 바스러지는 벌레. 그게 평범한 자들의 가차 없는 삶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