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릭 맥기(Patrick McGee)의 <애플 인 차이나>
2016년 5월, 팀 쿡 애플 CEO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그를 맞이한 것은 환대가 아닌 냉기였다. 불과 한 달 전, 중국 당국은 예고도 없이 애플의 아이북스와 아이튠즈 무비 서비스를 차단했다. 이는 단순한 검열이 아니었다.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을 향해 중국 공산당이 보낸 명확한 경고장이었다. "우리의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당신들의 정원도 안전하지 않다." 쿡은 이 메시지를 정확히 이해했다. 그는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와 비밀리에 2,750억 달러(약 360조 원) 규모의 투자 협약을 체결한다. 애플이 중국의 기술 생태계 육성과 인재 양성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붓겠다는, 사실상의 '충성 서약'이었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패트릭 맥기가 저술한 <애플 인 차이나>는 이 장면을 현대 기술 산업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 중 하나로 꼽는다. 우리가 막연히 '글로벌 분업'이라 불렀던 것이 실상은 거대한 '상호 포획'의 과정이었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맥기의 분석에 따르면, 애플과 중국의 관계는 단순한 발주처와 하청공장의 관계를 넘어선다. 그것은 생존을 위해 서로의 혈관을 연결해 버린 샴쌍둥이와 같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보자. 애플이 처음부터 중국에 목을 맸던 건 아니다. 1996년, 애플은 '죽음의 절벽' 앞에 서 있었다. 윈도우 PC에 밀려 파산 직전까지 몰렸던 애플에게 제조 효율화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였다. 당시 운영 담당 임원으로 영입된 팀 쿡에게 재고는 "일주일만 지나도 상해버리는 유제품"과 같은 악덕이었다. 그는 창고를 없애고 싶어 했다. 부품이 공장에 들어오자마자 아이폰으로 조립되어 소비자의 손으로 넘어가는, 낭비가 '0'에 수렴하는 시스템. 그 꿈을 실현해 줄 유일한 파트너가 바로 중국이었다.
하지만 이 '효율성의 추구'에는 보이지 않는 대가가 따랐다. 맥기는 이를 '암묵지(Tacit Knowledge)의 대이동'이라고 표현한다. 아이폰과 같은 초정밀 기기는 설계도만 있다고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나사의 조임 강도, 접착제의 도포 각도, 조립 라인의 미세한 리듬 같은 것은 현장에서 수년의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얻어지는 노하우다. 애플은 캘리포니아의 수석 엔지니어들을 중국 공장 라인에 상주시켰다. 그들은 중국 노동자들과 어깨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했다. 이 과정에서 실리콘밸리의 제조 DNA가 고스란히 중국 노동자들의 손끝으로 이식되었다. 애플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중국 전역을 '첨단 제조 사관학교'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 학교의 우등생들이 졸업 후 향한 곳은 어디였을까? 바로 화웨이, 샤오미, 비보와 같은 중국의 토종 기업들이었다. 애플의 까다로운 품질 기준을 맞추며 단련된 부품 공급사들은 낮에는 아이폰 부품을 만들고, 밤에는 중국 브랜드의 부품을 찍어냈다. 애플이 수천억 달러를 들여 구축한 공급망 인프라가, 역설적이게도 애플을 위협하는 경쟁자들을 키워내는 인큐베이터가 된 셈이다. 맥기가 "애플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중국 테크 굴기도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하는 이유다.
더욱 극적인 것은 '붉은 공급망(Red Supply Chain)'의 치밀한 부상 과정이다. 초기 아이폰 제조의 주역은 폭스콘, 페가트론 같은 대만 기업들이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럭스쉐어(Luxshare Precision)' 같은 중국 본토 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했다. 흥미로운 점은 애플 역시 원가 절감을 위해 이를 반겼다는 것이다. 애플은 대만의 폭스콘을 견제하고 단가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럭스쉐어에 에어팟 생산을 맡기고 기술을 전수했다. '늑대(대만 기업)'를 견제하기 위해 '호랑이 새끼(중국 기업)'를 키운 격이다. 이제 럭스쉐어는 아이폰 조립까지 담당하며 폭스콘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다. 애플의 공급망 지도에서 '대만 색'이 옅어지고 '중국 색'이 짙어질수록, 애플의 운명은 중국 공산당의 의지에 더욱 깊이 종속된다.
그러나 맥기의 이러한 도발적인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몇 가지 맹점이 존재한다. 학계와 전문가 그룹, 특히 중국 측 연구자들은 맥기의 분석이 전형적인 '서구 중심적 구세주 서사'에 빠져 있다고 비판한다. 가장 큰 논쟁점은 그가 제시한 '550억 달러 투자'라는 수치의 투명성이다. 맥기는 애플이 중국 공급망에 쏟아부은 돈이 마셜 플랜을 능가한다고 주장하지만, 여기에는 폭스콘이나 럭스쉐어 같은 공급업체들이 자체적으로 단행한 설비 투자가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다. 애플이라는 확실한 구매자가 투자를 유도한 것은 맞지만, 자본의 주체와 리스크를 짊어진 것은 공급업체들이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한, 중국의 기술 발전을 오로지 애플의 '은혜'로만 해석하는 것은 중국 정부의 주체적인 산업 정책을 과소평가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중국은 2000년대 중반부터 '자주혁신'과 '중국제조 2025' 정책을 통해 막대한 국비 보조금을 살포하며 전략적으로 제조업을 고도화했다. 애플은 그 거대한 파도 위에 올라탄 서퍼였을 뿐, 파도 자체를 만든 조물주는 아니었다는 반론이다. 중국의 엔지니어들은 애플이 오기 전부터 이미 기초 체력을 다지고 있었으며, 애플은 그 잠재력을 폭발시킨 촉매제였을지언정 유일한 원인은 아니었다.
비록 수치적 엄밀성이나 인과관계의 일부 과장이 있다 하더라도, 맥기가 포착한 '상호 포획'의 구조적 진실은 여전히 유효하며 강력하다. 애플이 중국을 성장시켰든 중국이 스스로 컸든, 결과적으로 애플이 중국이라는 '단일 실패 지점'에 갇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속성은 단순한 경제적 의존을 넘어 정치적 굴복으로 이어진다. 맥기는 이를 '황금 수갑'이라고 부른다. 중국 시장에서 매년 수백억 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대가로, 애플은 자신의 영혼을 조금씩 내어주어야 했다. 중국 내 데이터센터의 암호화 키 관리 권한을 중국 국영 기업에 넘겨주었고, 홍콩 민주화 시위 당시에는 시위대가 경찰 위치를 공유하던 앱을 스토어에서 삭제했다. 2022년 시위대가 에어드롭(AirDrop)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자, 애플은 중국 내에서만 에어드롭 기능을 제한하는 업데이트를 단행하기도 했다. "프라이버시는 기본 인권"이라던 팀 쿡의 신념이 베이징의 논리 앞에서 무릎 꿇는 순간들이었다. 이는 기업이 아무리 거대해져도 권위주의 국가의 주권 앞에서는 무력한 존재임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이 책 <애플 인 차이나>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바다 건너 남의 일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의 상황은 애플보다 더 위태롭다. 애플은 그나마 설계와 소프트웨어라는 독자적인 생태계를 쥐고 있지만, 한국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는 중국과 제조 영역에서 직접 경쟁해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지난 30년간 중국에 쏟아부은 수십조 원의 투자와 현지 공장 운영은 애플의 궤적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우리는 중국을 거대한 소비 시장이자 생산 기지로 활용한다고 믿었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공정 기술과 인력이 중국으로 흘러들어갔다. LCD 시장을 중국 BOE에 완전히 내어주고 이제 OLED마저 위협받는 디스플레이 산업의 현실은, 애플이 키워준 '붉은 공급망'이 어떻게 원청을 집어삼키는지 보여주는 예고편과 같다. 애플에게 중국은 '대체하기 힘든 파트너' 정도지만, 한국의 중간재 수출 기업들에게 중국의 기술 자립은 곧 '시장의 소멸'을 의미한다.
맥기의 저작은 우리에게 '효율성'이라는 지난 30년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끝났음을 선고한다. 가장 싸게, 가장 빠르게 만드는 것이 미덕이었던 시대는 갔다. 이제는 '어떤 지정학적 충격에도 끊어지지 않는가'를 묻는 '회복탄력성'의 시대다.
애플은 뒤늦게 인도와 베트남으로 눈을 돌리며 탈출을 시도하고 있지만, 맥기는 그 과정이 "고통스럽고 느릴 것"이라고 예견한다. 중국이 구축한 규모의 경제와 행정적 지원 시스템은 다른 국가가 단기간에 복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들 역시 마찬가지다. 당장 중국을 떠날 수도, 계속 머물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딜레마 속에서, 우리는 '탈중국'이라는 구호보다 더 정교한 '디리스킹(De-risking)' 전략이 필요하다. 기술 유출의 구멍을 막고, 공급망의 투명성을 확보하며, 대체 불가능한 초격차 기술을 유지하는 것. 그것만이 황금 수갑의 열쇠를 쥐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효율성의 시대는 갔고, 이제 생존의 시대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