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와 커뮤니티가 만들어내는 ‘사회적 할루시네이션’

AI보다 기자들의 기사가 처참한 이유, ‘커뮤니티 받아쓰기 저널리즘’

by 무딘날

최근 뉴스1의 김OO 기자가 보도한 한 유튜버 관련 기사는, 현대 언론이 대중의 시선을 낚아채기 위해 얼마나 노골적으로 커뮤니티 받아쓰기를 하는지 보여준다. 기사는 대중적 영향력이 막강한 인물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으로 포문을 연다.


하지만 정작 기자 본인이 담보해야 할 보도의 무게감은 온데간데없다.


기사의 골조를 이루는 것은 기자의 치열한 취재가 아닌, 익명의 누리꾼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배설하듯 내뱉은 주관적 주장과 파편화된 반응들이다.


이 기사는 특정 인물을 ‘피해자’라는 자극적인 워딩으로 감싸고, 이를 미끼로 커뮤니티의 폭발적인 반응을 유도한다. 이는 저널리즘이 수행해야 할 최소한의 사실 확인 조차 생략한 채, 오로지 ‘이름값’과 ‘조회수’를 교환하는 저질의 트래픽 비즈니스에 불과하다.


이러한 ‘커뮤니티 받아쓰기’ 보도 행태는 단순히 게으른 기자의 일탈이 아니라, 언론사와 대중이 결탁하여 벌이는 기괴한 유희다.


온라인 커뮤니티라는 폐쇄적 공간에서 누군가 던진 의혹이 기성 언론의 활자를 입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개인의 의견이 아닌 ‘사회적 현상’으로 둔갑한다.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자신의 목소리가 대형 포털의 메인을 장식하고 수만 명에게 확산되는 과정에서 강력한 심리적 보상과 효능감을 얻는다. 그들에게 정보의 진위는 부차적인 문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던진 소음이 기사화됨으로써 얻는 ‘확대 재생산의 쾌감’뿐이며, 언론은 이 욕망을 연료 삼아 트래픽이라는 수익을 거두어들인다. 이 과정에서 기자와 대중은 상호작용을 통해 실체 없는 허상을 사회적 진실로 만들어내는 ‘사회적 할루시네이션(Social Hallucination)’의 공범이 된다.


우리는 인공지능(AI)이 내뱉는 할루시네이션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기술의 오류와 비인간성을 우려하지만, 정작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훨씬 더 참혹하다.


AI의 오류는 데이터 학습의 한계에서 기인한 기술적 결함이지만, 기자와 커뮤니티가 합작해내는 사회적 환각은 인간의 의도된 비겁함과 잔혹함에서 비롯된 인식론적 파괴다.


언론이 ‘논란이다’ 혹은 ‘주장했다’라는 무책임한 수사 뒤에 숨어 검증되지 않은 소음을 유포할 때, 우리 사회의 공론장은 이성적 토론이 불가능한 집단적 환각 상태에 빠진다. AI가 거짓을 말할 때는 기술을 탓하면 되지만, 인간 기자가 신뢰라는 권위를 업고 무책임하게 커뮤니티 여론을 유통할 때 우리는 저널리즘이라는 사회적 안전망 자체를 잃게 된다.


결국 이러한 보도 행태는 인간 기자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다. 우리가 알고리즘이나 생성형 AI가 아닌 인간 기자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신뢰를 보내는 이유는, 그가 정보의 나열을 넘어 사실 뒤의 맥락을 짚어내고 진실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지는 ‘주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커뮤니티의 글을 기계적으로 복제하며 사회적 환각을 유도하는 기자는 스스로의 주체성을 포기한 존재다. 기계도 할 수 있는 받아쓰기에 함몰된 기자에게서 우리는 어떤 고유한 가치를 찾을 수 있겠는가. AI의 할루시네이션을 걱정하면서도 스스로가 그보다 더 정교한 환각의 생산자가 되어버린 인간 기자에게 저널리즘의 미래는 없다.


현대 언론이 이 파멸적인 순환을 끊지 못한다면, 머지않아 저널리즘은 알고리즘에 의해 완전히 대체될 것이다.


기자가 스스로를 기계와 차별화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다시 ‘현장의 고독’과 ‘검증의 책임’으로 복귀하는 것뿐이다.


클릭 수에 영혼을 파는 대신, 익명의 아우성 속에서 진실의 뼈대를 추려내고 사회적 맥락을 짚어주는 고유의 역할을 회복해야 한다. 저널리즘의 붕괴는 언론사만의 파멸이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선 진실의 토대 자체가 무너지는 민주주의적 재앙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직접 쌓아올리는 사회적 환각의 탑이 높아질수록, 우리가 돌아가야 할 진실의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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